'세계 153위 대학'은 그 입 다물라
[고태진 칼럼] 최소한 '국립 서울대'는 달라야 하지 않는가
▲ 서울대 정문
ⓒ2002 안현주
서울대의 김완진 입학관리본부장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교 등급제와 관련하여 "서울대는 고교 등급제를 하지 못하다보니 좋은 학생들을 선발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교육부에 (고교 학력차를 반영하는 방안을) 계속 요구해 왔고, 2008학년도에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며 서울대가 고교 학력 격차를 입시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또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는 고교 등급제를 실시하지 않았지만 다른 대학들은 내신과 수능만으로는 변별력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일부 사립대학들의 고교등급제 주장에 편을 들고,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서울대도 수능 변별력이 낮아지는 2008년부터 본고사를 도입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까지 밝혔다. 고교 등급제·본고사까지 검토한다는 서울대 알다시피 서울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며 또한 국립대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은 그동안 어떻게 만들어져 왔나? 전국의 고교생들을 줄 세워서 앞에서부터 골라 뽑아왔다. 그렇게 뽑힌 학생들은 졸업 후 서울대생이라는 번쩍이는 학벌로 사회에 나와서도 많은 특혜를 받아온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지배하는 우리 학벌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변별력을 얻어 더 나은 학벌을 얻기 위해 유치원, 심지어 유아 때부터 사교육으로 무장되고 단련 받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아이들이다. 또한 사교육비로 재산을 탕진해 가면서도 학벌을 위한 경쟁에서 처지지 않기 위해 사교육의 행진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 또한 그 아이 부모들의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까다로운 변별력으로 최고의 학생들을 뽑아 가르치는 서울대의 경쟁력은 과연 어떠한가? 최근 중국의 상하이자오퉁(上海交通) 대학이 자연과학연구논문성과 21개 분야별 고급연구원 확보율·과학논문인용색인(SCI) 성과(20%)·대학 규모 대비 학문성과(10%)·졸업자수상경력·교수수상경력 등의 기준으로 전 세계 500위권 대학의 순위를 매긴 결과 서울대를 153∼201위권 대학 중 하나로 선정했다. 또한 서울대는 이미 거대한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의 평균 논문 출판 횟수는 미국 하버드대나 일본 도쿄대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서울대생들의 70%가 하루 2시간도 공부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울대는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고, 서울대 출신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신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른 대학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서울대조차도 국제경쟁력에서는 한참 뒤처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바로 대학의 경쟁력이다. 고교가 아니라 대학의 경쟁력이 앞서야 나라의 경쟁력이 앞설 수 있다. 변별력? 좋은 말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변별력은 어떻게 높일 수 있나? 지금껏 대학 간판이 변별력이 되어오지 않았나? 그래서 오로지 우리나라는 대학 간판에 목숨을 거는 사회가 되어 왔다. 우물안 개구리들이다. 거대 대학들이 자신들의 학벌주의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고교생들의 차별과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우수한 고교생들을 까다로운 변별력으로 골라간 우리 대학들의 국제 경쟁력은 정작 초라할 정도이다. 대학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들이 학벌주의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고교등급제도 모든 고교에다 서열을 매겨놓고 손쉽게 학생들을 뽑겠다는 발상이다. 게으른 대학들, 학벌주의에 안주하는 대학 고교간 서열에 이은 대학간 서열이 굳어진 사회에서 대학간 경쟁이나 대학생들의 경쟁력이 오를 수가 없다. 고교등급제는 대학 서열화에 이은 고교 서열화를 위한 전주곡이다. 과거의 명문고등학교, 나아가 명문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다 부자 동네인 강남 지역의 학교에 특혜를 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퇴행적이라 할 만하다. 적어도 서울대는 이런 논란에서 달라야 했다. 명색이 국립대학이고 최고의 대학이라면 다른 사립대학들과는 다른, 우리 교육 전체를 고민하고 통찰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심각한 학벌주의의 타파를 위해 '서울대 폐지론'까지 나오는 현실에서 '대학 이기주의'보다는 고교 교육의 정상화와 대학 입시 사교육의 병폐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어야 하는 것이 국립 서울대의 모습이었다. 후하게 쳐주어서 세계 153위 대학인 국립 서울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그동안 하지 못했다. 서울대는 고교 등급제 논란에서 일부 사립대학의 장단에 맞추는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서울대가 변해야 우리 대학들이 변할 수 있고, 우리 대학들이 변해야 우리 교육이 바뀔 수 있으련만, 오히려 서울대는 학벌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기 이기주의에 덩달아 춤추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고교 성적이 좋은 신입생을 받아들이는데서 나오는가? 아니면 실력 있고 경쟁력 있는 대학생을 길러내는 데에서 나오는가? 안타깝게도 우리 대학들의 경쟁력은 성적 높은 신입생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멈추고 있다. 그것이 우리 대학이 국제경쟁력에서 뒤처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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