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오리"의 오리농장을 찾아가다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대화'한다? 둘은 얼마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너를 '이해'한다는 것은 당췌 가능하기나 한가? 철들기 시작하면서 갖기 시작한 물음이다. 여전히 답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주로 말하고, 가끔 듣는다.
'소통'이라는 열쇠말을 가운데 놓고 엮어보기로 한 야무zine 창간호. 이번 호에서 <생활의 참견>은 이른바 '기성세대 당원'과 '신세대 당원', 젊은이와 어르신의 '소통'을 푯대로 세웠다. 나는 '신세대 당원', 쉰셋 잡수신 이규남 당원은 '기성세대 당원'? 나이 서른에 '신세대' 소리 듣기 좀 낯뜨겁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소통'은, 뭣에 쓰는 물건인고? 어이쿠, 된통 걸렸다. 일단, '귓구녕 팍 열고' 듣고 보자. 듣기만 하는 게, 그게 뭔 '세대 간의 소통'이냐고? 그럼, 담번 호엔 '진짜 신세대 당원' 하나 붙잡고 앉아 또 '귓구녕 팍 열고' 듣지 뭐. 내맘대로 대~충 이리 정리하고, '날으는오리'의 오리농장을 찾아갔다.
농장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규남 당원은 전기밥솥부터 연다. "읏츠츠!" 꺼내는 것은, 따끈따끈 '데파놓은' 쌍화탕. 감격도 잠시, 인터뷰 따러 온 쪽은 낸데, 되려 내를 인터뷰하겠다며 나선다. "난 옹기종지를 인터뷰해야겠다, 여개(진보신당)는 어째 시작하게 됐노?" 에고고! 이분 '페이쓰'에 말리면 오늘 인터뷰 쫑난다. 푸르륵, 긴장 추스르고 인터뷰 시이작!
<따끈따끈 '데파놓은' 쌍화탕>
'야자' 대신 복싱장 가는 아들, 학교와 '다이다이' 붙는 아부지
-촛불집회서 만날 때마다 반가웠다. 언론에서 '운동권, 주사파가 배후'라며 왜곡보도 일삼는 와중에, 넥타이 맨 회사원이나 나이지긋한 어르신들이 나와서 자유발언하면 젊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던 게 사실이다.
"젊은 사람들만 얘기하믄 젊은 사람들만 하는 것처럼 보이고, 젊은 학생들이 조직하다보니 언론에서도 왜곡되고 해서, 나이많은 내가 좀 나서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랬지. 자유발언? 할 사람이 잘 없으니, 가믄 또 할 말이 있을 것 같고. 뭘 담아놓고 앉아있질 못하는 성미이기도 하고. 담아놓음 잠이 잘 안 와.
쇠고기보단 교육 문제를 주로 얘기했어. 쇠고기는 다들 얘기 많이 하니까. 우리 애들이 지금 이 시간까지 여 나와 앉아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리고 일제고사, 우열반, 공교육 포기, 이런 거에 대해서 싸워야 된다고. 우리 아이들 위해서 싸워야 된다 그랬지.
우리 막둥이는 '야자(야간자율학습)'을 안 시켜. 대신 복싱장엘 보내. 몸이 튼튼해야 뭣이든 한다고, 선생하고 다이다이 붙었어. 담임이 "아버님 저 좀 도와주세요" 하더라고. 난 "선상님이 낼 좀 도와주이소" 그랬지.
아들래미 중1 때부터 학운(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 4년째야. 학교에선 내가 웬수같은 존재지. 민노당 있을 때 학운에 대대적으로 들어갈려고 했는데, 투표과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학교 측에서 우쨌든동 막을라 카고 해서, 많이는 몬 들어갔어.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사공모, 수업시수, 교복, 교과서 선정까지 손 안 대는 게 없어. 복마전이라, 복마전. 의자를 한해에 세번 네번 구입하는데 업체마다 가격이 다 달라. 기를 쓰고 교장 될라고 하는 기 이해가 되는기라. 돈이 되거든.
참학(참교육학부모회)? 참학엔 공부하러 들어간 거야.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그라다 보이 임원도 맡게 되고. 울 집사람도 참학이야. 뿌리에서부터 바뀌야 되는데. 학교를 바꿔야 세상이 바뀌지. 이 나라 교육은 미쳤어. 미친 교육인기라."
왜 맞는지 이유나 알고 맞자 대들던 아들
- 같은 나이대의, 중장년층 경상도 남성을 기준으로 보자면 저윽이 '왼쪽'에 있는 셈인데, 어떤 결정적인 '계기' 같은 게 있었나?
"난 태생적으로 '반골'이라. 어렸을 땐, 울엄마한테 맞으면서도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서 울엄마가 학을 띴지. "왜 맞는지 이유는 알고 맞자" 이라고 달기드니 때리는 사람 안 미치겠나. 고1 때는, 그땐 선생한테 대든다는 걸 상상도 못할 시절이었는데, 친구놈 둘이랑 선생한테 또록또록 문제제기를 했다가 징계를 먹었고. 민가협 엄마들처럼 아들한테 일 생기면서 그래 되는 수도 있지만, 난 타고난 반골이었어.
임수경이가 북한 갔을 때, 택시기사 하고 있을 때였거든. 신부 하나가 택시를 탔는데, 임수경이 그 빨갱이는 가톨릭 신자도 아니라고, 막 욕을 하드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내한테 딸이 하나 있는데, 항상 '수경이 언니같은 예쁜 꽃이 되라'고 한다고. 그랬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내리뿌데. 그땐 그러고 다녔어. 데모하는 대학생들 누가 욕하믄, 느그 아들딸래미가 대학가서 갱찰한테 맞아죽어봐야 당신들이 정신차린다 카고.
택시기사? 3년 2개월 19일 했는데, 거의 남의 일을 했지. 기사연합회서 노동법 상담해주고, 해고자 나오믄 꽹가리 치고 파업하고. 교육선전부장 하면서 언론에 창구 역할도 했고. '광주 비디오'도 그때 몰래 구해다 봤어. 그게 노동운동의 시작이었고, 이른바 '의식화'가 된거지."
<바쁘다 바뻐! 인터뷰 도중에도 연신 울리는 이규남 당원의 핸드폰.>
신당이든 헌당이든, 재미가 있어야 돼, 재미가.
"92년 대선 때는 DJ 선거운동 해서 울 아부지가 미칠라 캤지. 울 아부지가 동네 유지인데, 내가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으로 투표소에 떠억 앉아있었드만 아부지가 학을 띠더라고. 88년 국회위원 뽑을 땐 노무현 선거운동을 했고. '야당' 하는 기이 잼있더라고. 2002년 총선 때 민노당엘 들어갔어. 노회찬이가 토론회 나왔는데 야 저거 잼있겠다 싶더라고.
그땐 민주노동당이 114에도 안 나왔어. 집에 컴터도 없고. 울산노총 가서 울산민노당 소개받고, 울산민노당에서 부산민노당 소개받아서 갔지. 쫌 있으니깐 신입당원 교육한다고 오라더라고. 초등학교 4학년 짜리 울 아들 손 잡고 쭐레쭐레 갔지. 아 근데, 이기이기 장난이 아인기라. 당헌이 어떻고 당 강령이 어떻고, 세 시간을 붙들어 놓는데, 아따 내가 이 짓을 머하러 왔노 싶은기라. 근데 강서지역 모임을 가니까, 이기 잼나더라고. 젊은 사램들하고 얘기하는 재미, 술묵는 재미, 젊은 사램들이 운제 내같은 늙은이하고 놀아주겠노.
난 NL도 모리고 PD도 몰라. 언놈이 나쁜 놈이라 캤는지, 어느 한 놈은 나쁜 놈이라 캤는데 머리가 나빠서 쫌 지나믄 까묵어. 내 하나만 어느 한 군데 소속이 안 된 사람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믄 내가 참 바보같았지. 이쪽에서 한 마디 하는데 맞는 소리 같으믄 끄덕끄덕, 또 저쪽에서 한 마디 하는데 또 끄덕끄덕. 저그들은 안 답답했겠나. 저 문디같은 늙은이가 똥인지 된장인지 모리고 설친다 캤겄지.
북구 준비위원장? 그거, 나이 많다고 박수로 뽑힌 거야. 화장실 갔다 왔드만 내가 위원장 되있더라고. 참나 어이가 없어서. 내같이 뭣 모르는 늙은이 우원장 시키놓고 즈그는 헤게모니 쌈질하고 하니, 당 쪼개지고 나서는 암것도 안 할끼다 캤는데. 박양수 선거 도와주고 나서 우찌우찌 하다보이 그래 됐다. 근데 내 그랬어, 신당이든 헌당이든, 재미가 있어야 된다고, 재미가. 재미없으믄 난 안할끼다 캤다.
민노당 때는 회의가 저녁 일곱시에 시작해서 밤 열두시에 끝나. 참 미치고 환장하겠더라고. 토씨 하나 물고 늘어지고. 밤을 새아서 피를 토해 가매 싸워. 연제구 사는 장귀석이는 회의 끝나믄 막차 타러 우두두 뛰어나가기 바뻐. 근데 나는 집이 북구잖아. 운영위만 가믄 택시타고 집에 가니 미치뿌겠는기라. 두 번까지는 참았지. 그담부턴, 안 참아. 진보신당 확대위 회의할 땐, 회의시간 길어지기 시작하모 내가 인상을 쓰지. 두 시간 안에 안 끝나믄 보따리 싸고 나가뿐다고 으름장을 놔. 그래서 요샌 버스 타고 집에 가. 지난 번 회의 땐 술 한 잔 하고도 버스타고 갔어. 억수로 나아진 거지."
<사모님과 함께>
같이 손 잡고 뛰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장갑만 손에 들려 있고
-이번 야무zine 창간호 열쇠말이 '소통'이다. 젊은 사람들과 진보신당에서 함께 만나 활동하면서 어땠나. 얼마전 진보신당 홈페이지에서 '댓글' 때문에 마음 상하신 일도 있었는데.
"젊은 사램들, 난 다 이쁘고 다 좋아. 열심히들 활동하니 너무 좋지. 이게 돈이 생기는 일이야, 밥이 생기는 일이야. 근데, 너무 '진보'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까칠하게 얘기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게 난 안 맞아. 같이 손 잡고 뛰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믄 장갑만 손에 들려 있고. 난 글커든. 예배당에서 야유횔 가도 유행가 부를 수 있는 거고.
내같은 사램이 좋은 예잖아. 재미삼아 왔다가 어느날 보니 '우원장'이 되있는 기라. 함 왔다가 흰소리만 삑삑 하고 가고, 또 왔다가 흰소리 삑삑 하고 가고. 그러다가 '진보적 가치'가 우떤긴고 궁금하모 또 공부도 하고. 구서, 호포까지 가서 강의 듣고 오고, 어느 날 보니, 내가 미친 거라, 안 한다 캐놓고 내가 여까지 마러 와있노 싶어.
좀 재미나게 했음 좋겠어. 모임이 기다려지도록. 어떤 반가운 사람들이 또 올까, 또 어떤 잼있는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면 얼마나 좋아.
*** 인터뷰를 마치고 ***
이규남 당원은 퍽 '재미난' 사람이다. 마주앉아 이야기하다 나 혼자 웃기엔 아깝다 싶어, 이규남 당원의 입담을 그대로 옮겨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렇게 술술 써내려갔다.
진보신당과 '연애'라도 하는 기분으로, 반쯤은 미친 듯 뛰어다니다 어느 순간 제풀에 꺾이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그런 이야길 했다. 내가 재미있고 내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니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규남 당원은 재주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재미를 찾고, 또 옆에 손잡고 뛰는 사람들까지도 '재미지게' 만드는 재주. 그것이 '어떤' 재미인가 하는 데서는 또 여러 갈래로 갈리겠지만.
'진보적 가치'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그는 '상식이 지켜지고 원칙이 바로 서는 것'이라 대답한다. 이번엔 겨울방학 보충수업 갖고 학교운영위원회와 싸워볼 생각이라는 말과 함께. <서울부부와 경상도부부>를 일러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그의 해석엔 동의할 수 없지만, 설문조사도 없이 방학보충수업을 일괄적으로 실시하려는 학교측과 '다이다이' 붙는 그에겐 지지의 뜻을 보낸다. '어르신들'에게 '느그 아들딸래미가 갱찰한테 맞아죽어봐야 당신들이 정신차린다' 호통치는 그에게선 고마움마저 느낀다. 그와 나의 '가치'가 만나고 겹치는 그 지점, 그 교집합만큼, '통하였느냐?' '통하였니라!'
노정 기자 zongz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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