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흔히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학교 문제는 제쳐 두고서라도 첨단을 달리는 학생과 구습에 머물러 있는 교사 사이의 부조화를 잘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20세기 교사이기를 거부하고 정년퇴임 이후에도 사재를 털어 끊임없이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선생'이 있다. 지난 99년 서울 성동고등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윤한탁(69) 선생이 그 주인공.
|  | | | | △교육문화공간 '향' 대표 윤한탁 선생ⓒ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 |
윤 선생은 뜻이 맞는 동료 퇴직교사들과 사재를 털어 서울 혜화동에 15평 남짓의 교육문화공간 '향'(www.hyang.or.kr)을 세웠다. '향'이란 이름에는 방향을 뜻하는 향(向), 향기를 뜻하는 향(香), 울림을 뜻하는 향(響), 고향을 뜻하는 향(鄕) 등 4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향이 지향하고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으며 윤 선생 스스로 "퇴직, 현직, 예비 교사 및 그 외에 학부모, 제자 등 교육에 관심있는 이들이 교육 현안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 하고 토론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교육은 역사적 산물이다. 해방 후 60년을 살아온 원로선생의 과거 교육과 현장에서의 현재 교육, 그리고 사범대 예비교사들의 미래 교육이 만나 이 시대의 한 부분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교육사적으로 연속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과거 선생들은 해방 직후부터 수없는 반공교육에 엄청난 제약을 받은 이들이고 현재 교사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쟁 체제에 제약을 받는다. 반공교육의 단순한 폭력이 이제는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완전히 변종돼 버린 것이다. 특히, 입시 경쟁과 결합된 무서운 폭력으로 됐다"
"앞으로 예비교사들은 이런 맥락에서 미래의 우리 교육을 어떻게 비춰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내 세대는 과거 반공교육에 대해 참회해야"
자연스럽게 윤 선생 세대에 극에 달했던 반공교육 이야기로 넘어갔다.
"반공법, 보안법은 사회를 억압하는 군사독재의 무기이면서 학교에서는 교사를 통제하는 무시무시한 법이었다. 심지어 선생이 수업중에 통일, 민족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방첩대에 불려가고, 굉장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예전에는 정보과 형사가 학교에 수시로 들낙날락 하면서 평교사들은 감히 넘보지도 못하는 교감 옆에 다리를 얹고 앉아 감시를 했다"
"그 살벌한 교육은 군사교육 찬양이었고, 공산당을 무찔러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자는 맹세였으며, 수없는 반공 글짓기, 반공 포스터 대회로 이어졌다"
 | | |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그러나 윤 선생 본인도 어쩔 수 없이 반공교육의 한 주체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선생은 지난 해 9월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한창일 때, 동료 원로 교사들과 함께 '참회'라는 이름으로 '20세기 교사'라는 꼬리표를 때어냈다.
"나도 반공교육의 한 가운데 있었다. 이제는 거기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자기 참회하고, 처절한 자기 비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내 앞 세대는 일재 교육에 부역했던 것을 반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세대는 반공 교육에 대해 참회를 해야 한다고 본다"
|  | | | |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 |
참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앞으로 그런 반공교육이 다시는 이 사회에 반복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이 사회의 변혁을 위해 투쟁하기 위함이다. 투쟁을 하는데 과거를 안고 갈 수는 없다. 이제는 참회했기 때문에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사실, 전교조 1세대이기도 한 윤 선생은 그다지 참회할 게 없어 보였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남과 북은 같은 민족으로, 언젠가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가 3일 동안 고초를 겪기도 했던 피해자이기도 하다.
기자는 선생의 이같은 참회가 새로운 소통공간을 마련하고 올바른 교육을 고민하기에 앞서 마음을 다지고 목욕 재개를 한 것으로 이해됐다.
물론, 6.15공동선언이 나온 이후 학교에서의 통일 교육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과 같은 적개심이나 북에 대한 저주, 혐오감을 유발하는 왜곡 과장된 내용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나이 많은 선생들은 앞서가는 역사를 쫓아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윤 선생은 "보안법이 살아 있다 보니 반공교육의 폭력적 요소는 유령처럼 학교를 배회한다"라며 "이제는 교육이 앞장서야 한다. 반공교육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으면 선생들 속에 잠재돼 있는 폭력이나 파쇼적 요서도 청산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교육은 사회 변혁의 주체를 세우는 것, 교육자가 먼저 변혁 운동에 나서야"
최근, 서울대의 통합형 논술고사니, 자립형 사립고니, 입시 경쟁 압박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자살이니 교육계의 고질적이면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윤 선생이 생각하는 교육의 개념과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내가 서울대 교수니 뭐니 각종 전문가들이 말하는 교육에 대해서 들어 봤지만, 결국 교육이라는 것은 사회의 주체를 세우는 것이라 본다. 원래 교육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변혁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결국 "교육은 인간을 사회주체로서 인간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은 사회 변혁의 주체를 세워야 하며, 교육자가 먼저 사회 변혁운동에 당당히 나서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 교육이 원래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윤 선생은 이에 대해 해방 이후 미군정이 우리 교육을 장악해서 기본적인 교육 방향을 정하고 그것을 군사독재가 반공교육으로 이어받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청소년 스스로도 현실 인식 기르고 자기 권리 적극 찾아야"
존경하는 교육자로 윤 선생은 조선시대 남명 조식 선생을 꼽았다. 실천을 중시한 남명 선생 밑에서 배웠던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56명이나 의병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 | |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 | |
"정의를 위해 사람이 바로 서고 항상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주체의식을 깨우치게 한 것이 남명의 사상이라 본다. 그 사상이 결국, 역사가 혼란에 빠졌을 때 제자들로 하여금 비분강개하게 하고 정의를 위해 의병장으로 나서게 했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는 분단의 시대이고 자주권을 빼앗긴 지 100년이 됐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육자는 남명처럼 제자들이 이 현실을 깨닫게 하고 통일과 전쟁을 막아내는데 나설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끝으로 최근, 청소년들이 과도한 경쟁에 의한 입시정책을 비관하며 자살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과 관련, "그 만큼 우리 교육이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쟁 시대를 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인 개선 노력과 함께 청소년들 스스로 사회 현실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스스로 동아리나 학생회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의 사회 활동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나 사회는 이를 보장해 줘야 한다. 청소년들의 민주적인 정치역량을 길러내야 앞으로 이들이 사회의 주인이 됐을 때, 우리 사회의 민주화도 발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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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사회진보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