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만난사람] 5·18인정교과서 대표집필한 장용준 교사
“역사? 즐겁게 그리고 쉽게”
해가 저물기 직전 나라가 시끄러웠다. 좌와 우, 어느 한쪽으로의 치우침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언제나 그랬듯 생각이 극단으로 갈렸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오른쪽을 지지했고, 다른 한쪽은 왜곡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다.
권력이 역사를 자기 정당성의 근거로 해석할 때 나머지 국가 구성원들은 그림자가 된다. 과거와 현재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수술대에 오른 역사가 교과서라는 것이다. 그냥 역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배우는 책 속의 역사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나 바뀐 교과서로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 이 땅의 역사 교사들은 미래의 암담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역사교사다. 20년을 넘게 그 일을 했으며 단 한 번도 회의를 가져본 적이 없다. 어릴 적 꿈이 그랬고, 그 꿈을 지금껏 자기 삶 안에서 밀어 올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장콩’이라고 부른다. 스스로도 본명 장용준(48·함평고)보다 장콩이 더 익숙하다. 작은 키를 콩에 빗대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건네듯 역사를 가르치며 그는 말한다. 시간과 그 속에서 인간이 그려낸 삶의 모습들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적 관점에서 역사 바라보자”고. 역사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사건과 사건 사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 공부다. 때문에 역사교과서 수정은 의도가 너무 뻔한 권력의 음모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에 맞게 수업하자”
역사를 만나는 일은 과거 속에서 현재와 닮은 작은 구멍을 찾아내는 일이다. 쉽지 않다. 방법은 현재의 내가 과거 속으로 들어가거나 과거를 현재의 내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중심은 항상 ‘나’다. 주체적 관점에서 사고했을 때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역사는 개념부터가 어렵다. 그러나 배움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겁게 그리고 쉽게’가 그의 역사교육 철학이다. 외워서 아는 건 진짜가 아니다. 무엇보다 흐름을 알면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머리에 들어와 박힌다. 그는 흐름의 역사를 가르친다. 교과서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기존 교과서를 재편성해 만든 일종의 워크북(배움책)인데 그가 만든 책은 많은 역사교사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다.
배움책을 사용해도 현대의 교육 체계에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7년 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듯이 글을 썼다. 수업시간에 다하지 못한 역사이야기였다. 근데 어느 출판사에서 그 글을 보고 출판 의뢰를 해왔다. 시골에 박혀 사는 교사에게 날아온 뜻하지 않은 연락이 가당치 않게 느껴져 그는 거절했다. 출판사는 거의 3개월 동안 연락을 해왔다.
결국 2004년 책을 냈다.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는 목적에 맞게” 글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는 우리 역사이야기’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출판 의뢰 자체가 의외였던 책이 출판된 뒤 독자들의 반응도 의외였다. 팔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책은 역시 의외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금껏 25쇄를 찍었다.
“책이 팔린다는 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의 반증이고, 아이들이 제도권 역사교육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역사는 자기 삶과 관련돼 있고, 아주 재미있는 과목인데 수업이 외우기 위주로 진행되면서 아이들과 멀어졌다.”
사상 첫 5·18인정교과서 대표 집필
그는 진도에서 자랐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됐다. 집에서 외할머니 댁을 다니러 가는 길에서 만난 고인돌을 통해서였다. 이제 열두 살인 그가 아는 건 고인돌은 옛사람들의 무덤이라는 것뿐, 근데 언젠가는 자기 손으로 저 오래된 무덤의 밑을 파보고 싶었다.
발굴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대신 역사교사가 됐다. 그는 직접 땅 밑의 역사와 대면하는 일보다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역사가 더 즐겁다. 사실 처음 교사가 됐을 때만 해도 교과서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변화는 ‘전국역사교사모임’에 가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역사의 현장들을 제 발로 밟는 답사를 진행하면서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역사서적이 그에게 던져준 것이 막연한 지식이라면 현장은 시간의 떨림을 몸으로 느끼게 했다.
지치지 않고 가르치면서 멈추지 않고 썼다. 2006년 그에게 어떤 제의가 하나 왔다.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5·18민중항쟁’ 인정교과서의 대표집필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2년6개월을 매달렸다. 80년 오월을 공교육 안으로 처음으로 들여오는 일이다. 생각과 사실을 글로 엮어내는 일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컸다.
80년 오월 그는 광주에 있었다. 그때 그는 송원고에 다녔다. 사실 잘 몰랐다. 의식 있는 학생도 아니었고, 학살의 상처를 피부로 겪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광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80년 오월에 대한 부채를 어깨 위의 소금 짐처럼 짊어지고 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 저 안쪽이 시려온다.
“인정교과서 집필은 아주 부담스러우면서 즐거운 작업이었다. 어떤 교과서를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사실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쉽게 접근했다. 오월을 다룬 인정교과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공교육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많은 학교들이 그 교과서를 선택하면 다른 지역의 오월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역사교과서 수정, 두고두고 비판받을 일”
국가가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 반대의 여론이 거세지만 일단 무시다. 역사적 사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수정할 부분까지 조목조목 찍어내고, 거슬리는 부분은 무조건 삭제다. 교과서 집필진은 수정을 거부했지만 소용없었다. 대통령과 교육과학기술부가 직접 나서 해당 출판사를 압박했다.
그는 역사교과서 왜곡을 지켜보며 분노를 떠올렸다. 논란이 된 교과서는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다. 특히 정권의 표적이 된 것은 금성출판사의 것이었다. 가장 많은 학교가 선택하고 있는 교과서다.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사실 친절하지 못하다. 탐구활동이 특화돼 있어 약간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역사학습의 목적에 가장 충실한 교과서다.
“금성출판서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이전 정부에서 검·인정을 무난히 통과했다. 이미 국가가 사용을 승인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고, 이전 정권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교과서를 수정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는 꼴인데 두고두고 비판받을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다음이다. 2011년이면 교과서 수시개편에 따라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없어지고 ‘역사’로 전환된다. 2년만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교과서를 현 정부는 국민적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정했다. 많은 역사교사들은 이 부분에 더 큰 우려를 표한다. 결국 새롭게 만들어질 역사과목 교과서를 정권이 의도대로 기술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다.
“현재 많은 출판사들이 새로운 역사 과목 교과서에 대한 집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권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검·인정을 통과시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시점에서 역사를 자기 식대로 해석한 세력들의 끝이 어떠했는가를 국민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싶다.”
글=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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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인정교과서 대표집필한 장용준 교사-광주드림이 만난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