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만난사람] 주경복 건국대 교수
“눈떠라, 교육은 음모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패배의 여진이 아직 마음을 흔들고 있을 게 자명한데도 그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보 세력들의 추대로 나갔던 선거에서 그는 졌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로 점철됐던 그 선거는 단순한 판이 아니었다. 자리는 서울시 교육감이었고, 이 나라에서 교육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가장 좁거나 가장 넓은 통로다.
흐름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어떤 투표행위보다 뼈아팠던 그 선거에서 누구는 강남으로 대변되는 이 나라의 기득권들을 보았다. 또 누구는 진보를 표방한 사람들이 자기 안에 감추고 있는 보수를 만났다. 길이 좁으면 사람은 길 밖을 보지 못하고, 교육은 사회의 문제보다 제 자식의 미래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졌지만 그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서 원래의 자리인 대학으로 돌아온 건국대 주경복(59) 교수다. 이 즈음 진보는 여러 세력으로 갈라져 있다. 보수는 비리 때문에 망하고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 했다. 그의 선거 캠프에서는 정당이나 사회단체들의 노선과 이념에 상관없이 진보는 모두 그냥 진보였다. 분열됐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그는 눈앞에서 지켜봤고, 졌지만 그것이면 족하다 생각한다.
선거야 어쨌거나 상관없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니 이 땅의 진보들에게도 또 기회는 올 것이다. 다만 암담한 게 있다면 교육의 현재다. 공적 자재가 되기를 포기한, 그리하여 배움의 기회가 균등하지 못한 이 나라 교육의 미래는 꿈을 가지고 있는가. 주경복은 교육 양극화의 정점인 서울시 교육감 후보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바람직한 교육을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투사가 됐던 합리적 지식인, 그것이 주경복의 얼굴이다.
“교육운동은 `사회적 빚’ 갚기”
세상이 수상하게 돌아가던 시절, 그는 이 나라에 없었다. 80년 오월부터 시작된 짐승의 시간에 그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다. 지극한 관심이었던 언어를 통한 소통의 문제를 배우기 위해 70년대가 끝나갈 무렵 그는 파리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7년의 유학을 마치고 그가 돌아왔을 때 대학은 최루탄의 매운 연기에 포위돼 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뒤 그는 아팠다. 7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소외된 자들은 여전히 나락의 삶을 살고 있었고, 가진 자는 자기 배 채우기만 급급한 불합리가 사회현상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 걸 느끼는 순간 한국을 떠나 있던 시간들이 죄스러움을 만들었다. 사회적 빚을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했고, 그 마음의 부채 같은 짐을 내려놓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싸움의 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정말 거리마다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자니 심사가 복잡했다. 학사부터 박사까지 전혀 새로운 공부를 다시 하느라 프랑스 생활도 결코 편한 게 아니었는데 그 일이 부끄러워졌다. 남들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동안 나는 먼 나라에서 지적 욕망이나 채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이미 지나간 시간을 탓해 봐야 자책만 밀려올 뿐 남는 건 없다. 중요한 건 앞으로 주어질 순간이다. 그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생각이 같은 여러 교수들과 함께 만들고, 상임의장이 되었다. 그는 단지 양심이 시키는 대로 발언을 했다.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소신을 굽히지 않았을 뿐인데 그는 투사가 돼 있었다. 하긴 그때가 어떤 시대인가. 그의 말대로 “일반 시민들을 투사로 변신시키던 시대”였다.
“교육은 부조리가 반복되는 시지푸스”
교육이 계급이 되는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자기 안의 균열이 커져 나중엔 금가고 무너진다. 이 나라는 어떨까? 자기 밥벌이와 하등 상관없는 연예인들까지 학력을 속여야 대접받는 사회다. 학벌은 무기이며 존재의 가치다. 교육에 따른 계급이 이처럼 선명한 나라도 드물다. 이 불합리를 깨는 것, 주경복의 고민은 오랫동안 이 지점에 닿아 있었다. 교육에 대한 여러 대안들이 나왔다. 그러나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나라 교육의 문제점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일테면 `시지프스 신화’ 같다. 기껏 산 위로 낑낑대며 바위를 올려놓으면 곧바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밀어 올리고 떨어지기의 무한반복이다.
“모든 부조리들이 연쇄적으로 모여 순환하는 게 우리의 교육이다. 기회는 불평등해서 사회양극화가 생기고 학벌에 따른 계급의식이 발생한다. 대학은 서열화되고 그러다 보니 입시과열 경쟁이 일어나고, 공교육은 황폐해진다. 당연히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교육비가 과다하게 지출된다. 어느 하나를 뜯어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근데 사실 또 따지고 보면 의외로 답은 멀리 있지 않다. 공교육의 기본 원리만 회복하면 된다. 교육이 공공의 재료로 기능하면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니 학벌에 따른 계급이 생길 이유가 사라진다. 이 단순한 명제 안에 가장 무서운 음모가 스며있다. 그걸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교육은 다양성이나 경쟁이란 미명 아래 정치논리로 전환되고 있다. 그 음모를 주도하는 세력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실용에 덧씌워진 지배로서의 교육
얼마 전 초·중·고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봤다. 일생 동안 무수히 반복되는 또 한 번의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 시험은 이만큼 달려온 세상을 저만큼 다시 밀치는 시험이었다. 기본 개념은 경쟁인데, 학교와 학교 사이의 싸움이다. 엄밀히 말해 죽이지 않으면 죽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학생들의 성적은 학교의 능력이고, 전부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 안에서 실용을 내세운다. 교육정책 전반에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를 개입시킨다. 경쟁의 이름 안에 있는 명분은 다양화와 자율화인데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게 무엇인지 알면 우리의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보인다. 그 반대 면에는 사회적 진보의 배경이 되는 공공성과 평준화가 있다. 결코 교육을 공공재로 두지 않겠다는 게 재벌 출신 대통령의 신념이다.
“교육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반영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지금은 똑똑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많은 돈을 투자해 사교육을 시켜야 공부도 잘 한다. 출발선이 다른데 도달하는 시간이 같을 수 없다. 기득권이 그 기득권을 연장하기 위해 교육을 이용하면 못 가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자기 자식만 생각하지 말고 이제 권력의 음모를 알아야 한다.”
이 나라 교육현실은 실제로 매우 암울하다. 교육운동의 조건도 어렵고, 전망 또한 어둡다. 인간이 집단을 이룬 다음 단 한 번도 민중은 권력집단과 싸워 승리한 적이 없다. 권력을 잡은 민중은 더 이상 민중이 아니었다. 주경복은 전복의 개혁보다 밀면서 밀려 올라가는 변화를 더 믿는 편이다. 그는 말했다. “당신의 시선이 변하지 않으면 교육도 제 자리다.” 글=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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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라 교육은 음모다-광주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