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무슨 반?
저는 참 낙천적인 사람인데, 한 달 전부터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교육문제에 대한 글을 쓰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교육문제가 대체 어떤 문제입니까. 모든 국민이 학생이었거나 학생이거나 학생이 될 것이고, 거의 모든 국민이 학부모였거나 학부모이거나 학부모가 될 것이니, 국민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니던가요. 게다가 교육부는 또 어떻습니까. 정책 하나 내 놓으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대책을 내 놓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 최고 문제부처 아니던가요. 하도 오랜 세월 동안 그러다 보니 이제 웬만한 학부형이면 웬만한 교사보다 더 높은 경지의 교육문제 전문가를 자처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중학교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교육 문제에 관한 글을 쓰라니 부담 백배일 밖에요. ‘오린쥐’ 소동과 전과목 영어몰입교육 파문도 시간이 꽤 지난 데다 대통령이 직접 “오해”라고 해명하면서, 사회적인 공감대가 큰 소재꺼리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또 하나의 ‘쓰나미’를 일으켜줘 다행이었습니다. 대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만요.
예, 그렇습니다. 지난 주, 바로 4월 15일에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교자율화 3단계 추진계획’ 얘깁니다. 시험 점수를 바탕으로 평균 90점 반, 80점 반, 50점 반으로 우열반을 편성하라는군요. 효율적이고 실용적이랍니다. 그런데 80점 반 학생이 90점 반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그걸 위해 학원에 가야겠군요. 90점 반 학생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또 학원에 가야겠구요. 50점 반에 배정된 학생들은 앞뒤양옆을 둘러봐도 그만그만한 아이들이니 동질감을 느끼며 편안하게 지낼까요? 어떤 선생님이 50점 반 담임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읽고 계시는 독자님의 아이는 무슨 반이 될까요?
새벽에 등교해 -1교시 0교시로 수업을 시작해 깊은 밤 심야보충수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전에 논란이 됐다가 백지화됐지만, 학원 24시간 교습을 허용하자면서 “공부 많이 해서 죽은 학생은 없다”던 서울시 정아무개 의원의 말에 힘을 얻었을까요? “집에서는 잠만 재우십시오”라는 학원 광고문구가 이제는 학교 안내문에도 올라올 모양입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의 36%가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한국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결과는 알고나 있는지요? 잠이 부족할 때 통계수치는 49.6%까지 뛰어오릅니다. 교육은 어릴 때부터 해야 효과적이라더니 초등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도 방과 후 국영수 수업을 하게 생겼습니다.
학교를 유명 학원의 분원(分院)으로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목은 또 어떻습니까? 유명 강사를 초빙해 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유명 강사님들이 학교에서는 예고편만 보여주는 것이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게다가 그런 기회는 90점 우등반에게만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방과후 우등반이 되려면 또 학원에서 공부를 해야 되겠지요. 도대체 어디에서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할까요?
그나저나 여섯 번쯤 글을 쓰게 될 텐데 뭔가 밝은 전망이 아니라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만 이야기하게 될 듯해 죄송합니다. 그래도 부담(?)이 조금 덜 한 것이 주제 걱정만은 하지 않도록 교육부와 각급 시도교육청에서 적극 도와줄 것 같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주로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해야겠지요? 아니, 인터넷 댓글도 여론이냐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니까 피켓도 못 읽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이것 참, 아이들 말로 “안습”올시다.
이동철 <치평중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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