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성경험 묻는 `넋나간’ 설문
성폭행·부모 이혼 등 실명 응답 요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광주지역 전문계고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성경험과 성폭행 가담 여부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말썽이 일고 있다.
특히 부모의 이혼과 관련된 사항이나 휴대폰, 이메일 주소까지 기록하도록 요구해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 논란마저 제기되고 있다. 말썽이 일자 광주시교육청은 직업능력개발원의 설문을 전면 거부키로 하고, 일선 학교에 해당 공문을 내려 보내지 않도록 했다.
17일 시교육청과 일선학교에 따르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청년층의 교육 효과 분석을 위해 지난달 전문계고 50여 개교 등 전국 100여 개 고교에 `한국교육고용 패널 조사’ 협조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는 학교별 조사대상 학생 명단을 요구하며, 학생·학부모·교사·교무담당 설문 문항을 함께 보냈다. 설문조사에 응한 광주·전남지역 학교는 ㅈ고를 포함해 5곳으로 알려졌으며, 전국적으로 모두 1만3700여 명이다.
학생 설문조사 항목 130개 가운데는 성적이나 징계, 보호자와 관계, 성경험 등 사적인 질문이 많아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학년 반 번호 이름’, 응답자 및 보호자 휴대폰과 주소, 단짝 친구 2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신상과 관련된 내용을 적도록 한 것도 `사생활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의 질문은 `2006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 성관계 경험이 있읍니까’, `성폭행을 하거나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2학기 성적을 9등급으로 나눈다면 몇 등급에 해당합니까’ 등이다. 또 교사 설문지에는 학생의 결석과 지각을 비롯해 경제적 수준, 성적, 징계까지 기록하도록 했다.
학부모 대상 설문 문항은 이보다 더 심각했다. 자녀의 이름을 반드시 적도록 한 뒤 가족 중 장애인 존재 여부와 재산규모, 일자리 형태, 수입, 이혼 여부 등을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설문 조사를 진행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교육부의 공문에 따라 지난달 말까지 설문 내용과 학생의 명단을 직업능력개발원에 제출한 것. 학생들도 이러한 조사에 응해야 한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ㅈ고 한 교사는 “설문 조사 내용 가운데 성경험을 묻는 등 미성년자에게 맞지 않는 지저분한 질문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공적인 기관에서 정식적으로 허가 받은 것이라 할 수 없이 설문조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설문 목적과 문항이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연관되는지 모르겠다”며 “지나치게 개인적인 질문이 많고 정보 수집에 불과해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직능원 담당자는 “한국교육고용 패널 설문은 계속 진행되는 연구이기 때문에 중단을 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권단체와 상의해 문제가 있는 부분은 통계에 처리하지 않고 데이터를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석호 기자 observer@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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