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족쇄같은 생활규정
승인받고… 허가받고… 금지되고…
‘이성 간의 단 둘의 만남은 개방된 장소를 이용하도록 한다.’<이성교제>
‘교내에서 학생이 회합을 하고자 할 때는 담임교사 또는 담당교사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기타 교내생활>
‘본교 이외의 단체 및 대회에 참가, 또는 방문을 하고자 할 때는 학교장 승인 또는 허가를 얻어야 한다.’<교외생활>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42) 씨는 최근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생생활규정(안)을 보고 놀랐다. 초등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이 교우관계, 이성교제 장소는 물론 학생 개인의 생각과 정신세계까지 통제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초등학교 교사들도 “이런 규정이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체벌 대신 상벌점제를 부여하는 ‘그린마일리지제’ 시행에 따른 학생생활규정 예시 안을 마련, 각 학교에 맞게 개정하라는 지침을 시·도 교육청에 내려 보냈다. 2009학년도 학생생활규정 개정(안)은 학부모·학생·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이 달까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개정하도록 돼 있다. 교과부의 예시안은 크게 총칙, 학생생활, 학생지도, 징계, 상벌점제, 개정방법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일선 초등학교는 각 학교별로 ‘학생생활규정’을 마련해 학교홈페이지를 통해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규정의 문구가 법조문처럼 어렵고 중·고등학교 학생생활규정을 도입해 초등학생에게는 맞지 않다는 점이다. 광주시내 모든 초등학교가 교과부 예시안을 사실상 그대로 채택하고 있다.
교내생활을 보면 교내에서 외부인과 면담을 하고자 할 때는 담당교사의 허가를 얻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입장지도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시상도 투철한 국가관과 애교심이 있어 뛰어난 지도력으로 학교발전에 기여한 공이 있다고 인정되면 공로상을 주도록 했다.
징계도 학생의 평소 품행과 교육적인 측면을 판단해 하도록 했고, 선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른 학교로 전학을 권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런 규정과 관련, 초등학교 교사들은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본 적도 없고, 교과부 안을 각 초등학교에 맞게 수정·보완해야 하지만 무성의하게 그대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이대로 지키다가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억제하는 규정이 될 것 같다”며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족쇄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중학교 내용을 초등학교에 적용하다보니 문제가 생겼다”면서 “이왕 만들려면 초등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로 만들어 하고, 아이들의 창의성과 꿈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해봤어야 했다”고 아쉬워 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교육위원회 장휘국 위원은 “교과부가 체벌 대신 상벌제를 도입하라고 해서 학교마다 학생생활규정을 개정중”이라며 “초등학교 학생생활규정 예시안은 초등학교에 맞는 내용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석호 기자 observer@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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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족쇄같은 생활규정-광주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