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대신 자연 만나 행복해요”
[체험학습 동행취재]
담양습지서 고라니 만나고
장성 IC에서 굴참나무 심고
48명의 학생들이 강둑으로 난 흙길을 걷는다. 다른 친구들은 한참 학교에서 일제고사를 보고 있을 시간이다. 마음의 부담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금방 친해진 새로운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영산강 습지를 살피는 학생들의 표정이 밝다. 담양습지, 지난 2004년 하천 습지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시험보다 중요한 삶의 경험들이 거기 있었다.
31일 전국의 초등학교 4·5·6학년과 중학생들이 진단평가를 보는 날, 담양습지를 찾은 학생들은 고라니와 영산강 상류에 서식하는 새들을 만났다. 담양습지에는 내버들과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참수리와 댕기물떼새가 살고, 말조개와 각시붕어 등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한다. 보호종인 삵과 황조롱이도 살고 있다.
찾아온 학생들을 반기는 것일까? 낮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고라니 한 마리가 습지 주변을 서성인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고라니에게로 향한다. 습지는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온갖 생명들을 아이들에게 꺼내 보여준다.
체험학습에 참여한 ㄱ(16) 군은 “시험이 싫은 것은 아니고, 똑같은 시험을 전국의 학생들이 보고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싫어요. 시험 대신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 행복해요. 내 판단을 존중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구요. 시험보다 중요한 게 많은데, 여기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고라니를 만날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걸음은 강둑을 넘어 대숲 길을 거치고, 자운영이 심어진 논둑을 넘는다. 저 멀리 새들의 날갯짓이 희미하게 보인다. 길가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새를 관찰한다. 댕기물떼새 몇 마리가 물 위에 떠 있다. 사실 요즘은 새들을 만나기에 적합한 계절이 아니다. 번식기에 접어든 새들이 갈대 숲 사이에 몸을 숨기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계절이다.
두 자녀와 함께 체험학습에 참여한 학부모 ㅇ(43) 씨는 “솔직히 버스를 타고 담양습지로 향하는 동안에도 내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시험을 거부하고 아이들과 여기 오는 게 정말 잘한 일인지 고민이 됐다. 그런데 담양습지를 둘러보고 난 후 나도 아이들도 편안해졌다. 친구와 경쟁하는 시험보다 삶의 근원인 습지에서 보낸 하루가 훨씬 의미 있다”고 말했다.
1시간30분 동안 담양습지를 체험하는 동안 점심시간이 됐다. 점심은 김밥이다. 아이들은 금세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짝을 이뤄 대숲 아래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 일정은 장성 IC 입구에서 진행됐다. 도로공사와 (사)생명의 숲이 공동으로 `저탄소 녹색도로 나무심기행사’를 진행했다. 도로공사가 굴참나무 묘목 1000그루를 준비했고, 생명의 숲이 잣나무와 산수유나무, 은행나무 등 1200그루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나무 심는 방법을 전수 받은 학생들이 묘목을 나눠 받는다. 역할도 분업이다. 어떤 아이들을 삽을 들고 구덩이를 판다. 어떤 아이들은 나무가 반듯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붙잡고, 누구는 거름을 준비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난생 처음 삽질을 경험했고, 처음으로 나무 한 그루를 땅에 심었다. 그 나무가 땅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만큼 아이들의 꿈도 커질 하루였다.
나무심기를 끝낸 ㅂ(15) 군은 “지난해 10월 학업성취도 평가 때는 학교에 가긴 했지만 답안지를 백지로 냈어요. 이번에는 뭔가 제대로 느끼고 싶어 체험학습 참가를 결정했는데 부모님도 제 생각을 존중해 줬어요. 담양습지와 나무를 심으며 보낸 오늘 하루는 사는 동안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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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대신 자연 만나 행복해요-광주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