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그 깊은 상처
#1. 초등학교 동창 모임. 누구나 그렇겠지만 섬에서 초등시절과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터라 그 감회는 특별하다.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얼굴에 쓰여 있는 지나간 시간들을 읽어내느라 분주하다.
“웜메! 중학교 때, 공포의 수학선생 기억나냐?”
“시험만 보고나면 틀린 개수만큼 뿔자로 손등을 때리면서 시험지를 나누어주던….”
“아니, 써먹지도 못할 것을 가지고.”
“우짠다고 그라고 기를 죽였쓰까 잉!”
중2 때 서울로 아주 가출해버렸다가 이제 나타난 영호가 거든다.
“그런데도 머시 좋다고 정근가실 때마다 선창에 줄서서 손을 흔들어줬으까.”
뭉텅이 돈을 기금으로 내놓은 선덕이가 말한다.
“야, 너 6학년 때 연애했다고 칠판에 머리 박쳤을 때 얼마나 아프디?”
`큰배’ 타서 돈벌었다가 몽땅 말아먹고 `신불자’가 된 호열이.“아야, 술이나 묵자” “추억이 밥먹여 주냐?” “그나저나 미술 선생 기억나냐? 바다를 빨갛게 칠했다고 인목이 너 뒈지게 맞았지?” “허허, 얼척이 없지…. 빨가니까 빨갛게 칠했는데….”
#2. 지옥 같은 `밴드부’ 폭력. 광주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 시절의 관성으로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가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멋진 인생을 꿈꾸던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장면은 다름 아닌 멋진 `밴드부’였다. 공부에 음악까지 더한다면 삶은 더욱 풍요롭게 되리라는 기대 속에 나의 고교시절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봄과 함께 시작된 나의 설렘과 희망은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소위 `밴드부’는 아름다운 음악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폭력을 가르치고 배우는 `조직’이었다.
금관악기에 끼워 소리 내는 쇳덩이 피스는 우리의 머리를 내리치는 무기였고 드럼을 치는 스틱은 보조 무기에 지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배우는 악기에 어눌할 수밖에 없는 신참들을 못한다며 무참히 때리고 욕하는 게 일상이었다.
`밴드부’에 들어가던 날부터 나의 생각과 살은 공포로 떨었고 영혼은 공황을 맞았다. 당연히 시험은 엉망이 되었고 선생님은 성적이 높은 사람부터 차례대로 통지표를 나누어주며 공개적인 망신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나락과 절망을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나 교사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내밀한 폭력의 속성을 잘 모른다.
`밴드부’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와 거부가 이어졌다. 그러자 `밴드부’를 지휘하는 선배가 동년배들을 시켜 나를 잡아오게 했다. 사방이 꽉 막힌 `밴드실’에서 지휘자는 가죽장갑을 낀 채 한 시간여 동안 턱을 때리기 시작했다.
턱관절이 이탈하고, 치아가 부정교합되어 얼굴이 변형되고 한 달 이상을 신음했지만 이미 학교에서 허가가 난 듯 `밴드부’의 폭력은 일상화되었다.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었던 이 일로 인해 내게 정신적 후유증인 트라우마(Trauma)가 있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수학시험 못 봤다고 때리고, 이성교제 했다고 공개적으로 머리 박치고, 바다를 빨갛게 칠했다고 때리고 성적순으로 출석을 부르는….
이 멀쩡한 날 멀쩡한 장소에서 멀쩡한 교장과 교사들이 일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학교폭력’의 속성은 전쟁이나 인민재판장에서 겪는 두려움이나 충격보다 크며 그 상처는 깊고 멀리 간다.
양인목 <빛고을 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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