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계급사회 속 빛나는 모난돌
학벌없는사회 모임 활동가 박고형준(24)
오윤미 기자tiamo@siminsori.com
▲ 청소년 인권현장에서 만난 박고형준씨는 “현 정권의 교육 정책을 일방적인 주입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비판한다. 그는 학교의 진정한 주인이 ‘학생’이 되는 그날까지 인권활동가를 자처한다.
올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현장에서 만난 한 청년을 기억한다. 20대 중반쯤이나 됐을까. 청년은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기타연주에 몰입했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약간 동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그는 얼핏 보기에도 남달라 보였다. 그는 연주 중간 중간 손팻말을 들고 시민들과 교감했다. ‘학교 서열화 NO’. 모두들 광우병 손에 분노할 때 외로이 교육인권을 부르짖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후 그 청년이 광주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인사임을 알게 됐다.
올해 나이 스물넷, 박고형준씨는 우리지역의 대표적 청소년 인권활동가이다. 남들보다 일찍 ‘인권’에 눈 뜬 덕에 20대 초반나이임에도 불구 햇수로 7년차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궁금했다. 목적을 잃은 채 오로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해야 했던 여타의 청소년과 달리 교육현장의 사라진 학생인권을 사회에 고발하던 당찬 고등학생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인권활동가이기 앞서 평범했던 어린 시절도.
형준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금지옥엽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공부도 곧잘했다. 형준씨는 “부족함을 몰랐기에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당연한 줄 알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당시를 “평범한 시절”이라고 불렀다.
그의 평범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각지 못했던 아버지의 교통사고. 불의의 사고는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는 ‘가난’을 접했다. 정작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들 외면했다. 부모님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밤낮 일을 하셨다. 하지만 끝끝내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루 한 끼 입에 풀칠하기도 힘겨웠던 그 시절, 부모님은 어렵게 모은 돈을 형준씨 학비로 쏟아 부었다.
그는 “차마 공부를 할 수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가난이 부끄럽진 않았지만 거추장스러웠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답답했다. 그는 “우리집 형편을 직시하고 나자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며 “학교는 더 이상 울타리가 돼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3 무렵,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실업계를 희망했지만 부모님과 학교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중학교까지 촉망받는 인재였다. 부모님의 뜻을 꺾지 못하고 인문계에 진학했다. 억지로 끌려가듯 간 학교였다.
▲ 형준씨가 활동하고 있는 학벌없는사회(준)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일제고사 체험학습, 대학평준화 릴레이 시위 등을 통해 목소리를 높인다.
시시때때로 그는 학교와 충돌했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시작한 신문배달이 화근이 됐다. 신문배달을 끝내고 학교에 가면 8시 반, 7시 10분에 시작하는 0교시 자율학습은 자의반 타의반 ‘땡땡이’였던 것. 선생님은 ‘학생의 본분’을 이유로 그를 몰아세웠다.
“0교시를 하고 말뿐인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것만이 학생의 본분인 것이냐”고 그는 반문했다. 소통의 단절. 선생님은 ‘사랑의 매’로 그를 다스렸다. 현준씨의 주장은 ‘말대답’이자 ‘반항’ 쯤으로 여겨졌다. 그곳에 인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결국 신문배달을 그만둬야 했다. 대신 그는 거리로 나왔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전국 중고등학생 연합을 알게 됐다”며 “학교에서 묵살당하는 인권을 우리 스스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16살(고1)때다.
그의 얘길 듣고 있노라니 야무진 그의 뚝심이 놀랍기도 하고 우리의 교육현실이 씁쓸해졌다. 딴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그가 이야길 재촉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다 보니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우리지역에서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2001년 광주전남 중고등학생 연합 출범을 주도했다. 학교는 곧장 그를 징계했다. 학교 퇴학을 종용했다. “마치 경찰서 조서를 받는 듯 했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청소년들의 올바른 인권외침에 학교는 회초리를 들었다.
그는 “反학교 운동이 아니었는데, 선생님들은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단체가 퇴화하게 된 것은 학교의 무차별적인 인권모독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렇게 수능날이 됐다. 그는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시험장이 아닌 시교육청으로 갔다. 그의 손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팻말이 들려있었다. 그는 “내가 겪은 학교 교육은 일방적인 주입식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며 “학교를 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종학력이 고등학교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결함’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내린 결정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혹는 무모할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그는 그 어떤 활동가보다도 몸소 ‘언행일치’를 실천했다.
청소년 졸업과 활동이 뜸했던 그가 지난 2006년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여전히 교육현장에서 소외된 인권찾기에 목소리를 높인다. 획일화된 교육현장에서 짓밟힌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그는 오늘도 그곳에 있다.
|
|
|
자유게시판
132
7
6
신 계급사회 속 빛나는 모난돌-시민의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