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레이스’를 멈춰야 한다
박우기 wkpark@gjdream.com
지난 주 2009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로서 결과를 떠나 홀가분하다. 밤 늦도록 책과 씨름하던 아이는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쉬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외출했다가도 금세 되돌아온다. 휴일에 친구들 만나 영화도 보고, 밥도 함께 먹으라고 권하지만 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수년간 이어져 온 ‘입시 전쟁’의 틀이 너무 견고해 당장 깨뜨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폭넓게 용인되는 ‘자유의 시간’에 곧 적응할 것이다. 아니 머지않아 과도한 방임으로 부모를 걱정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들도 아이 뒷바라지에서 벗어나 모처럼만에 편안한 일상으로 되돌아 왔다. 아이 못지 않게 정신적·육체적 고생에 시달렸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야만 비로소 잠을 청했고 아이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깨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등교준비를 도왔다. 이 땅의 부모들은 정말 위대하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돼있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시키려는 열망과 집념은 부모를 선생님이나 카운셀러, 때론 무서운 훈육선생님으로 만들기도 했다. ‘입시 전쟁’을 치러낸 수험생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고생한 부모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쯤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이런 ‘부모의 역할’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것인가를.
수능이 치러지던 날 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곧장 출근했다. 텅 빈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앞에 앉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졌다. 도대체 지금까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아이 이야기는 듣지 않고, 아이 뜻은 묻지도 않고 그저 강요하고 타박만 했다. 아이는 일정 선의 능력을 갖고 있을텐데, 나는 내 아이가 전능한 아이라 믿고 똑같은 목표와 방법으로 58만여명이 경쟁하는 ‘레이스’ 속으로 밀어넣지 않았던가. 적성에도 맞지 않는 레이스를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모 마음 상하지 않게 하려고 또 아이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말로, 때론 글로 ‘피 터지는 경쟁의 시대를 증오한다’고 지껄여놓고 나 또한 그 진흙탕 경쟁에 합류해 함께 고함치고 채찍질하지 않았던가. 아이는 경주마였고 부모는 기수였다. 온 가족이 이 무자비한 레이스의 공범이었던 것이다. 새삼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가 한없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로 인해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발견해내지 못했고, 아이의 정서와 전인의 기회를 죽였다. 레이스에 합류한 이유는 오직 하나, 부모의 집착과 욕심, 체면과 자존심이었다.
지난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 쌍둥이가 성적을 비관해 투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그런데 올해도 이 불운한 소식은 또 전해졌다. 수능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다. 어린 학생의 죽음에 필자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부모들도 일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입시제도와 사회환경을 탓하지만 진정 아이를 입시의 지옥에서 해방시키려면 부모가 먼저 깨달아야 한다. 내 아이가 무엇을 가장 잘 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그리고 학업성적과 성취도는 어느 수준인지를 먼저 파악해서 아이의 적성에 가장 적합한 진로를 찾아 안내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레이스’에 뛰어든다면 내년에도 우리는 또 다시 같은 류의 비보를 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공범이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무모한 레이스는 멈춰야 한다. 아이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하면서까지 되지도 않는 게임에 올인하는 이 무자비하고 대책없는 행태를 중단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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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레이스를 멈춰야 한다-광주드림 생각나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