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물러나서 보는 여유갖자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시원한 소식은 없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학교를 구성하는 3대 주체로 학생ㆍ교사ㆍ학부모를 꼽겠는데, 누구라 할 것 없이 수렁에 빠진 꼴입니다. 학생은 대학입시와 경쟁의 늪에, 교사는 그 경쟁을 조장해야 하는 악역과 차등성과급이라는 자괴심의 늪에, 학부모는 치솟는 학원비와 대화가 단절된 가정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교육을 신분상승 내지 부의 세습 수단으로 여기면서 마치 경주마처럼 옆도 뒤도 돌아볼 수 없도록 내몰기만 합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라는 요구를 하면서요. 그런데 당사자인 아이들은 머나먼 미래를 실감하고 있을까요? 불과 1년 앞을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5년 10년도 아니고 20년 30년 뒤의 인생을 위해서라며 밤늦게 학원을 순례하도록 몰아대는 부모와 사회, 학교에 대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요.
희망과 소질, 적성을 생각하며 미래를 얘기하면 어른들은 한마디로 잘라버리지요.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면서 “경쟁에 지면 도태된다”고 아이와 부모를 으르고 협박 합니다.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는 부모들과 함께, 온 나라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습니다.길이 안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산길이 생각납니다. 깊은 산길을 가다 보면 발밑을 조심하느라 아래만 보고 걷게 되는데, 가끔 길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흙길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지만, 바위가 잇닿아 있는 곳은 아무런 흔적도 없거든요. 이런 경우 길을 찾는 방법이 몇 가지 있겠지요. 제가 아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멀리 보기요 둘은 앞서 간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입니다. 바위로만 얽혀 있는 산이 없듯이 흙으로만 쌓인 산도 없는 법이니, 눈앞의 바위에서 발길의 흔적이 없어졌더라도 조금 멀리 바라보면 흙길이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그 흙길과 지금 서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를 이어 보면 안 보이던 길이 나타납니다. 두 번째, 앞서 간 흔적은 땅이 아니라 머리 위에도 있습니다. 산길에서 헷갈릴 만한 곳에는 친절하게도, 먼저 지났던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리본을 매달아 두었습니다. 대개는 산악회 같은 곳에서 자기 모임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거나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지시하느라 남긴 것들이겠지만, 정말 순수하게 나중 사람들을 위해 길을 안내해 주려는 배려도 많이 있겠지요.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길을 잃었다가 이런 리본을 보게 되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런 이정표, 길안내가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지요.
학교에서 학생부 일을 하다 보니 사고를 치고 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우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묻게 되지요. 취조하듯 추궁하고 조사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려면 아이가 말을 많이 하도록, 많이 들어주는 것이 좋지요. 대화를 하다 보면 대부분 성적에 대한 좌절감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 해도 안 되는 공부, 풀 길 없는 스트레스와 짜증, 누구든 좋으니까 걸리기만 해 봐라 하는 독기 서린 마음, 그러니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지요. 이해하고 위로해 주면 대개는 마음을 열어 줍니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한 반 40명 중에 공부로 성공할 수 있는 학생은 많아야 서너 명뿐이라고. 인생에서 성공의 가장 큰 조건은 노력이고, 그 노력은 끈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혹 공부를 할 마음이 든다면,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인간관계야말로 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바둑이든 장기든 두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더 잘 보듯이, 한 걸음 물러나서 보라고. 눈앞의 성적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조금 멀리 바라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1년이 지날 때마다 아이들이 거칠어지고 사고가 확연히 늘어가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에 해 보는 생각입니다.
이동철 <광주치평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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