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잘보면 교사 성과급 유리… 벌써 들볶이는 초등생들

정유진 기자

7월 시험 대비 곳곳 파행… 0교시에 야간 학습까지

‘놀토’에도 등교 문제풀이, 감독할 교육청 오히려 독촉

경북 포항의 ㄱ초등학교 6학년생 4명은 지난달 초부터 매일 밤 9시까지 국·영·수 위주의 야간 보충수업을 받고 있다.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학교 측은 오는 7월 치러지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에게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학력향상형 창의경영학교로 지정돼 얼마 전 지원금 4200만원을 받았다. 이 학교 교사는 “고교생의 야간자율학습도 밤 10시로 제한하는 마당에 초등학생을 밤 9시까지 학교에 잡아두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일제고사에 대비한 ‘0교시’ 및 야간 보충수업, ‘놀토 수업’ 등 학교 현장의 파행이 지난달부터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예년에는 5~6월쯤 문제풀이 교육이 이뤄졌으나 그 시기가 일러지고, 정도도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지급되는 성과급 평가요소에 올해부터 일제고사 성적 향상도가 포함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어린 초등학생 대상의 야간보충수업은 학부모 동의나 학생들의 학습부진 여부를 떠나 ‘아동인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포항 ㄱ초 외에도 충북 음성의 ㅇ초 역시 오후 8시30분까지 학생들을 학교에 남겨 저녁을 먹여가며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충북 제천의 ㅇ초와 경남 거제의 ㄴ초는 지난 4월부터 6학년생을 대상으로 0교시 수업과 7~8교시를 진행해 사실상 ‘온종일 수업’을 하고 있다. 0교시 수업이 오전 8시10분쯤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초등학생들이 늦어도 오전 7시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충북 제천 ㄴ초와 음성의 ㄴ초는 일제고사를 치르는 6학년생들을 학교가 쉬는 1·3주 토요일에 등교시켜 문제풀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충남 논산의 ㅅ초도 오후 8시까지 야간학습을 진행해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이를 감독해야 할 교육청은 파행을 눈감거나 오히려 독려하고 있다. 충북 영동교육청은 지난달 초 관내 학교 교감들을 모아놓고 비공식적으로 관내 자체 모의고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들이 돌아가면서 일제고사 대비 문제를 개발하면 이를 바탕으로 영동교육청 차원의 별도 모의고사를 7월까지 다달이 치르자는 것이었다. 교사들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지금도 장학관·장학사들이 불시에 학교를 방문해 일제고사 대비 상황을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충북지부의 조종현 정책실장은 “(교육청에서) 학교를 직접 돌아다니며 일제고사 담당 교사와 교감을 불러 앉혀놓고 구두로 보고받은 뒤 지시를 내린다는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충남지부의 안광진 정책실장은 “교육청이 ‘100일 전략’ 이란 말을 써가면서 학교별 준비 상황을 보고서로 올리라고 독촉한다. 일제고사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현장의 압박감이 예년보다 2~3배는 더 강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지난해 일제고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학교와 교육청이 아이들의 학력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교조 부산지부 한경숙 정책실장은 “결국 어른들의 경쟁을 위해 아이들이 들볶이는 꼴”이라며 “일제고사 결과가 성과급에까지 연동되면서, 학교 현장의 파행은 7월이 다가올수록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Today`s HOT
홍수 피해로 진흙 퍼내는 아프간 주민들 총선 5단계 투표 진행중인 인도 대만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 라이시 대통령 무사 기원 기도
이라크 밀 수확 안개 자욱한 이란 헬기 추락 사고 현장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폭풍우가 휩쓸고 간 휴스턴
연막탄 들고 시위하는 파리 소방관 노조 총통 취임식 앞두고 국기 게양한 대만 공군 영국 찰스 3세의 붉은 초상화 개혁법안 놓고 몸싸움하는 대만 의원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