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학살’ 초등 영어학습게임 논란

송현숙 기자

무기로 죽이면 단어 튀어나와… 시범학교에 보급

교육청 “내용 빼고 써라” 교사들 “당장 그만둬야”

정부가 초등학교에 제공한 학습용 컴퓨터게임에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는 등 비교육적 요소가 많아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청 시범학교로 지정돼 이 게임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던 일부 학교 교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2일 강원지역 ㄴ초등학교에 따르면 이 학교는 지난달 교장·교사 33명 전원이 도교육청에 ‘게임기반 교육콘텐츠 활용 교육을 통한 학력신장 방안’ 교육방법 연구 시범학교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영어 교과에 적용하는 게임기반 교육콘텐츠 활용을 통한 연구학교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공한 교육용 컴퓨터게임은 동물 10~20마리를 무기로 죽이면 그 동물의 영어 단어가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또 많이 공격할수록 강한 무기를 얻을 수 있어 사실상 더 많은 동물을 살해하도록 유도했다. 영어 교과용 프로그램임에도 듣고 말할 수 있는 기능은 없고 클릭과 효과음뿐이어서 교육적 효과도 의심스러웠다.

학교 측은 게임 공급업체에 콘텐츠 교체를 요구했지만 게임 공급처에서는 무기를 꽃과 채소 등으로만 바꿔놓은 상태다. 교사들은 의견서에서 “프로그램이 폭력적이며 비교육적이다. 한 시간 동안 게임을 한다고 창의력이나 문제해결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몰입이 아닌 중독을 낳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은 답변 형태의 권고문에서 “심의 결과 교직원이 제기한 문제점이 인정됨에 따라 교수 학습 적용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주관적 판단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만큼 내용을 최소화해 발췌 사용하고, 학습 부진이나 학업에 흥미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과후수업에 운영하라”고 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시범학교 지정 당시엔 콘텐츠가 공급되지 않은 상태였고, 이후 운영과정에서 학교 측 입장이 바뀐 것으로 안다”면서 “연구학교 시범운영 도중 취소한 전례가 한 번도 없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게임 콘텐츠 개발과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사단법인 콘텐츠경영연구소는 “충분한 감수를 거쳐 도입했다. 미국에까지 수출하는 프로그램으로 해당 교육청의 요청을 받고 선정했다”면서 “원하지 않는 학교는 제외하면 된다고 판단해 이미 지난 주말 해당 학교를 시범학교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게임기반 교육콘텐츠 활용 시범학교 운영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시·도교육청과 협력해 진행하는 것으로 2009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시범학교는 8곳이었으며 올해는 서울 2곳 등 4곳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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