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학생 두발 자유화 선언'···내년 2학기부터 서울 중고생 머리 자율로

노도현 기자
두발 규제를 다룬 2006년 4월11일자 경향신문 보도.

두발 규제를 다룬 2006년 4월11일자 경향신문 보도.

내년 2학기부터 서울의 중·고등학생들은 마음대로 머리를 기를 수 있다. 펌이나 염색도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로워진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7일 오전 종로구 시교육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중·고교생 두발 자유화 선언’을 발표했다. 조 교육감은 학교별로 자체적으로 공론화를 해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의 뜻을 모은 뒤 내년 1학기 안에 학생생활규정(학칙)을 개정하고, 2학기부터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머리카락 ‘길이 규제’는 모두 없애라고 했다. 펌이나 염색은 학교별 공론화로 정하되, 제한하지 않는 쪽으로 검토하라는 ‘가이드라인’도 내놨다. 시교육청은 이날 오전 이런 내용의 서신을 각 학교에 보냈다.

두발·복장자유화는 학생들 민원이 가장 많은 사안이다. 조 교육감은 “머리 모양을 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하며 기본권으로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선언문에서 “두발 자유화는 단순히 수동적인 피학습자로서 학교의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는 학생이 아니라, ‘교복입은 시민’으로서의 자기결정권과 자유, 자율을 두발에서 부여하는 것”이라며 “개인의 주체성을 실현해가는 출발점이 학생들 몸의 일부인 두발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들은 공론화 결과에 따라 두발을 제한하는 규정을 그대로 둘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몸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조 교육감은 강조했다. 그는 “설령 두발상태에 대한 학교의 규제가 있더라도 ‘협의적’ 규제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교육감이 (공론화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고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두발규제는 중·고교 ‘생활지도’의 핵심처럼 여겨져온 해묵은 이슈였으나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2005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전국 중·고등학교 90% 이상이 머리 길이나 모양을 규제했다. 이발기나 가위로 등굣길 학생들 머리를 강제로 자르는 일도 있었다.

▶[오래전 ‘이날’]4월11일 ‘바리깡’ 폭력

교육청에 따르면 지금은 서울 시내 중·고교 708곳 중 84.3%인 597곳이 두발 길이를 규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펌이나 염색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학교는 많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가 올해 6∼7월 전국 200개 중·고교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39.5%인 79곳은 머리카락 길이를 규제했고 88.0%인 176곳은 염색·탈색이나 펌을 제한했다.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상담실장은 “이번 선언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며 “주로 사립학교들이 옛날 방식으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는데 철옹성 같은 이 학교들이 얼마나 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학교들이 두발 규제의 근거로 내세워온 것은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이다. 제9조 ‘학교규칙의 기재사항 등’에는 학칙에 수업연한과 휴업일, 학급 편제와 정원 등과 함께 ‘학생 포상, 징계, 징계 외의 지도방법, 두발ㆍ복장 등 용모, 교육목적상 필요한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 및 학교 내 교육ㆍ연구활동 보호와 질서 유지에 관한 사항 등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적도록 해놨다. 올해 초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포진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이 조항을 삭제하려 하자 보수성향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학생 지도에 지장이 올 것”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두발 규제 근거인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시교육청은 두발 규제가 전근대적인 기본권 침해라고 보고 ‘서울시학생인권조례’ 12조 ‘교복 입은 시민의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 이번 ‘자유화 선언’을 내놨다. 교육계 보수 진영이 이번에도 반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학생들의 요구가 강했던 사안이어서 시교육청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유화 조치들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인권위원회 “학생두발자유 기본권으로 인정되어야 ”

두발 자유화 목소리는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해 2000년대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대거 터져나왔고, 두발 규제는 교사들의 ‘교권’과 학생인권이 맞붙는 최전선이 됐다. 하지만 두발 자유화가 학생들의 ‘방종’을 부를 것이라는 시각은 힘을 잃는 추세다. 이미 2005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들의 진정을 받아들여 “학생 두발 자유는 기본권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교육부 장관과 시도교육감들에게 ‘교육 목적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두발을 제한하도록’ 권고했다.

두발 규제의 당사자였던 학생들은 이번 선언을 반기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선우군(18)은 “그동안 학교는 규정을 통해 학생들 몸을 과도하게 통제해왔다. 요즘 교육은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두발 규제는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찍어낸듯 획일화시킨다”며 “두발 자유화를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선언 취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고등학교 교사 조영선씨는 “우리 학교의 경우 3년 전 모든 두발 규제가 사라진 이후에도 생활지도의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두발 자유화를 해도 문제 없는 것으로 검증됐다”며 “이런 흐름들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교사는 “요즘 다문화 가정 학생이 많이 늘고 있어 머리카락 색이나 형태를 확인한다는 자체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교사 이봉수씨는 “두발 규제가 심한 학교일수록 단정한 학교, 아이들에게 신경쓰는 학교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면서 “학교 구성원들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학교 외적인 요건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지난 6월 조 교육감이 내세운 2기 공약에 따라 몸에 딱 붙는 불편한 교복을 ‘편안한 교복’으로 바꾸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를 위한 공론화 과정을 연내 마무리 짓고, 일선 학교에 제시할 가이드라인을 정한 뒤 학교별 공론화를 추진하게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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