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과잉복지 비난하며 시장직 사퇴

입력
수정2011.08.26. 오후 2:35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겨레] “아름다운 서울 만들어달라” 출사표같은 사퇴의 변…10월26일 보선

 오세훈 서울시장은 ‘확신범’의 면모를 각인했다.

 26일 오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것은 주민투표 결과와 과정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 군색한 자기변명 뿐이었다.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215만명의 투표 참여자인 ‘든든한 우군’에게 고개 숙여 감사하고 미안해 했을 뿐,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623만명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애초 내걸었던 ‘무상복지 포퓰리즘과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과잉복지’로 단순화하면서 ‘차차기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215만의 민심을 유독 강조했다. 기자회견 모두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215만 시민 여러분께서 투표장을 찾아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는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며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고, 마지막에는 “ 저는 오늘 물러서지만 215만 유권자의 민의는 사장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215만의 선택’을 강조하는 오 시장에게 이번 주민투표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다. 623만명의 서울시민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음은 외면한 채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15만 시민들이 이뤄낸 ‘역사의 상징’이라고 의미 부여하는 데 급급했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는 제가 제안했지만 시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으로 시작되었고 81만 서울시민은 최초의 주민청구형 주민투표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만들었다”며 “그 분들의 열정과 애국심은 주민투표의 결과로 희생되지 않고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스스로를 ‘무상복지 포퓰리즘’ 과 고통스럽게 싸워온 ‘투사’로 묘사했다. 그는 “과잉 복지는 반드시 증세를 가져오거나 미래세대에게 무거운 빚을 지운다”며 “증세와 미래의 빚, 또는 그 둘을 책임지게 될 최대의 희생자는 그 누구도 아닌 ‘평범한 시민, 바로 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저는 이 점을 경고하기 위해 지난 1년간 과잉복지와 그토록 고통스러운 싸움을 전개해왔다”며 ‘평범한 시민’에게 과잉복지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싸우다가 시장 사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스스로가 조장한 갈등과 분열을 반성하는 대신 ‘갈등과 분열을 담론의 정치로 바꾸겠다’는 묘한 다짐을 내놓기도 했다. 오 시장은 “자신의 투표의지를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차마 투표장에 오지 못한 분이 계셨다는 소식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라며 “우리 사회에 만연된 편 가르기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길을 막지 않았는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자성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갈등과 분열의 정치문화를 건강한 담론의 정치문화로 바꿔 나가는 것이 앞으로 제게 주어진 또 하나의 책무라는 것도 통감했습니다”라고 이번 주민투표가 갈등·분열로 얼룩졌다며 비판했다. 오 시장의 이런 발언은 정작 시의회와의 협의, 서울시교육청과의 협조 등을 통해 풀어야 할 정책을 주민투표라는 수단을 통해 ‘찬성-반대’로 편가르기 한 스스로의 과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디자인 서울’에 대한 소신은 여전했다. 오 시장은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서울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하여 충언을 드린다”며 5년간 ‘디자인 서울’ 기치를 내걸고 진행해온 사업들의 중요성 또한 강조했다. 오 시장은 “21세기 도시 흥망은 ‘아름다움’으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며 “‘아름다움의 가치’를 전시행정으로 폄하하는 한 서울은 초일류도시, 품격 있는 세계 도시로 성장해 나갈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보편적 복지보다 한강르네상스사업·디자인 서울 사업 등 도시 환경 가꾸기를 위해 그가 벌여온 사업이 더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오 시장은 “어려운 분부터 보듬어가는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같은 액수의 복지혜택을 모든 계층에게 현금 분배식으로 나눠주는 복지를 추구하는 한, 어려운 분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다리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무상급식을 나눠먹기식 복지로 깎아내렸다.

 오 시장의 이번 기자회견에 화답이라도 하듯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26일 성명서를 내고 “금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장직 사퇴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도 존재한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라며 “야권의 투표불참이라는 초유의 반민주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단계적 무상급식을 원하는 한편의 시민들만으로 25.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사실상 오시장의 고독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누리꾼들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트위터 이용자 오정윤씨(@nurhachi)는 “오세훈 사퇴 기자회견은 한마디로 시민 기만행위이다. 25.7% 215만 참가자에 대한 인사만 있고, 오세훈식 토건, 외화내빈 시정에 반대하여 투표 거부한 74.3% 민의는 과잉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정말 어이없다”고 말했다.   

  포털 다음 댓글에 글을 올린 누리꾼 ‘사티’는 “생각하는 게 쓰레기네. 복지에 과잉이 어디있냐? 우리가 그럴 수준이나 돼?”라고 비판했다. 누리꾼 ‘바다’는 “끝까지 오만하고 버릇없기가 정말 못된 놈입니다. 아름다운 서울?? 뭐가 아름다운건데요?? 겉데기 화장만 화면 아름다운건가요?? 그러다가 홍수나서 여기저기 차가 둥둥 떠다니고, 산사태가 나서 사람이 죽고, 그게 아름다운건가요.? 잘사는애들 밥주는거 그렇게 아까웠으면 잘사는노인네들전철비버스요금도내라구하지요. 그동안 시장자리하면서 저질렀던 일들로 법정에 섰을때도 그렇게 오만하고 거만할수 있는지 두고 봅시다”라고 별렀다.

  노현승씨는 “끝까지 자기가 잘했다고 하고 가네. 정말.. 정떨어지는 정치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 많은 돈을 한강에 쏟아 부었냐? 이제 시장끝났으니 어디 한번 탈탈 털어보자 먼지가 얼마나 나는지”라고 비난했다.

   “오세훈의 사퇴연설은 그만두겠다는 말만 빼면 취임연설이었다”(@juniuson), 서울시청 직원 여러분. 오세훈씨 그냥 보내지 마시고 점심은 먹이고 보내세요. 무상으로.” (@mediamongu)

  디지털뉴스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 연설문 전문

시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는 시민여러분

 저는 주민투표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오늘 시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저의 거취로 인한 정치권의 논란과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즉각적인 사퇴로 저의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215만 시민여러분께서

 투표장을 찾아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민투표는 그 결실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복지방향에 대한 서울시민의 뜻이 어디 있는지

 결국 확인하지 못하고 아쉽게 투표함을 닫게 된 점,

 매우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투표에 모아주신 민의의 씨앗들을

 꽃피우지 못한 것은 저의 책임입니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시작은

 우리시대 복지이정표를 세우겠다는 신념이었지만

 제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 또한 오늘의 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민여러분.

 이번 주민투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새로운 지평(地平)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제가 제안했지만

 시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으로 시작되었고,

 81만 서울시민은

 최초의 주민청구형 주민투표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드셨습니다.

 그 서명의 발아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민주주의가 열리는 계기였습니다.

 독재시대를 넘긴 민주주의는

 인기영합주의를 극복해야 한 단계 더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의 열정과 애국심은

 주민투표의 결과로 희생되지 않고,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으로

 민주주의의 새 전기를 만들 것이라 믿습니다.

 한나라당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음을 모아 한나라당다운 가치,

 민주주의와 미래가치를 실현하는데

 기꺼이 나서 주셨습니다.

 다만, 자신의 투표의지를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차마 투표장에 오지 못한 분이 계셨다는 소식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편 가르기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길을 막지 않았는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자성하게 되었습니다.

 갈등과 분열의 정치문화를

 건강한 담론의 정치문화로 바꿔 나가는 것이

 앞으로 제게 주어진 또 하나의 책무라는 것도 통감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강조됩니다.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복지방향을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토론해온 지난 몇 개월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과잉복지는 반드시 증세를 가져오거나

 미래세대에게 무거운 빚을 지웁니다.

 또는 그 둘을 한꺼번에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저는 표 앞에 장사 없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드렸습니다.

 유권자가 막지 않는다면 총선과 대선에서

 선심성 복지공약이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증세와 미래세대의 빚

 또는 그 둘을 책임지게 될 최대의 희생자는

 그 누구도 아닌 “평범한 시민, 바로 나”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경고하기 위해

 지난 1년간 과잉복지와

 그토록 고통스러운 싸움을 전개해 왔습니다.

 저의 사퇴를 계기로

 과잉복지에 대한 토론은

 더욱 치열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길 바라며

 그 재정의 피해는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

 저는 지난 5년간 서울시정을 이끌면서

 지금껏 걸어온 정치인으로서 일생 중

 가장 역동적이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 재선의 영광을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임기를 완수하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저는 오늘 물러서지만

 주민투표에 참여해 용기 있게 소신을 밝혀주신

 215만 유권자의 민의(民意)는 사장(死藏)되지 않도록,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모두가 존중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서울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하여 충언을 드립니다.

 21세기 도시 흥망은

 ‘아름다움’으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전시행정으로 폄하하는 한

 서울은 초일류도시, 품격 있는 세계 도시로

 성장해 나갈 수 없습니다.

 삶의 휴식공간을 늘려가고 다듬는 일을

 토목건축이란 이름으로 깎아내린다면

 서울 시민의 안전과 삶의 질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어려운 분부터 보듬어가는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같은 액수의 복지혜택을 모든 계층에게

 현금 분배식으로 나눠주는 복지를 추구하는 한,

 어려운 분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다리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 서울이

 아름다운 품격을 갖춘 존경받는 세계도시,

 어려운 분들이 먼저 배려 받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동안 시민여러분께서 베풀어주신 성원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8월 26일

 서울특별시장 오 세 훈

 

 디지털뉴스팀



<한겨레 인기기사>

투표안한 강남 50대 주부의 항변

홍준표 “오세훈은 오늘로 끝난 거다” 맹비난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한명숙 1위, 나경원 2위

오세훈 ‘강행 사업’ 줄줄이 제동 걸릴듯

서울시장 10월 보선, 야권통합에 득? 독?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