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책임질 자격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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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의 70% 이상이 연계 출제되는 <교육방송>(EBS)의 외국어영역 교재 1권에서 64건의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돼 부랴부랴 수정본이 발간됐다고 한다. 지난 4월에는 언어영역 연계교재에서 30여건의 오류가 드러나 수정본이 나온 적이 있으니, 올 들어 비슷한 일이 두 번이나 발생했다. 이런 오류투성이 교재에 목을 매고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70만 수험생과 학부모들로선 황당하고 분통이 터질 일이다.

오류의 일차적 책임은 엉터리 교재를 만든 교육방송에 있지만,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부터 수능과 교육방송 교재의 직접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평가원 감수를 1회에서 2회로 늘린다고 요란하게 발표해 놓고 정작 실질적인 감수에는 뒷짐만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가원에는 교재를 감수할 별도 조직이나 인력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평가원은 무더기 오류가 확인되자 “평가원은 감수가 아니라 문제의 난이도나 교육과정 반영 여부 등을 검토한다”는 되지 않을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평가원이 이렇게 감수조차 담당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수능은 교육방송이라는 문제집 회사에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평가원이 수능 출제 과정에서 얼마나 무책임하고 주먹구구식인지는 지난달 감사원 감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08~2010년 3년 동안 11명의 출제·검토위원이 자녀가 그해 수능시험을 치는데도 문제 출제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시험에 응시하는 자녀가 없다’는 허위 각서를 쓰고 출제에 참여했는데, 평가원은 각서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학부모 출제·검토위원들이 시험문제를 사전에 유출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평가원은 또 지난해 12월 실시된 초등 임용고사 제2차 시험에서 일부 문제가 유출돼 김성열 당시 평가원장이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수능은 국가가 치르는 어떤 시험보다 이해관계자가 많아 조그마한 실수도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와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평가원은 교재 오류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더욱 꼼꼼한 교재 집필·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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