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운영을 구성원 합의로… 주목받는 경희대 소통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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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머리 맞댄 학생·교수·교직원 “존경받는 대학 만들자”

“요즘 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만 매몰돼 자기 성찰이 부족하고 이기주의가 심합니다.” “교수님들도 연구실적에만 급급해 학생들의 멘토 되기를 포기한 것 아닌가요.”

지난 1일 경희대 본관 대회의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학생과 교수, 교직원 대표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서로의 모습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학내 위계질서와 관습 때문에 평소라면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허심탄회한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와 스스로 놀랐다”고 털어놨다.

이날 회의는 경희대가 만들 ‘경희미래협약’(가칭)의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바람직한 대학의 조건이 무엇인지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미래협약 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교직원 서병식씨(42)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학생들이 점차 마음을 열고, 교수들도 견고한 기득권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져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윤호 총학생회장은 “모든 구성원들이 터놓고 평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모아 협약을 만든다니 기대된다”며 “서로 소통하면서 다른 학교와 사회 전체에 모범이 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고액 등록금 논란과 비리재단 복귀 등의 문제로 상당수 대학에서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구성원 간 소통과 상호 존중을 강조하는 경희대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단초는 지난 3월 등록금 책정 합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희대는 사상 최초로 구성원 합의를 통해 1학기 등록금을 동결했다. 학생들이 이미 낸 3% 인상분 중 2%는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나머지 1%는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와 차상위계층 학생들에게 지원키로 해 관심을 모았다.

미래협약 추진위 관계자는 “등록금 문제 논의 과정에서 학교 당국과 학생 사이에 불신이 심했지만 꾸준한 토론을 통해 결국 합의를 이뤄냈다”며 “그때의 자신감과 경험을 살려 구성원 간 민주적이고 성숙한 소통문화를 정착시키자는 논의가 생겨났고 미래협약 추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협약의 방향은 대학 본연의 사명을 되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 발전기금과 적립금을 많이 모으고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좇는 대신, 인간과 사회의 보편 문제를 고민하는 대학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경희대가 올해부터 학생들의 인문 소양 강화를 위해 신설한 교양과정 ‘후마니타스칼리지’의 문제의식과도 상통한다.

미래협약 추진위 사무총장 김양균 교수(44)는 “교육과 연구 등 모든 분야에서 대학다운 모습을 되찾는 것은 물론 비정규직, 장애인 등 소수자까지 껴안아 구성원 스스로 자랑스럽고 사회로부터도 존경받는 경희대만의 정신과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도정일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70)은 “학교 운영의 대원칙이 숙의와 소통, 그리고 합의”라며 “앞으로도 대학의 모든 주요 문제를 학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논의해서 합의에 이르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추구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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