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대안문화공간에서 꿈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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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소년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독서토론, 인문학 강좌 풍부

공부와 휴식공간으로도 활용


청소년들이 즐길 만한 문화가 마땅치 않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면 게임방과 노래방 등을 찾는다.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꿈을 찾고 진로를 고민해보고 싶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 하지만 색다른 문화공간에서 자신의 꿈을 찾고 성장을 꾀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이들은 자율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다. 울산의 대안문화공간 ‘품&페다고지’, 서울의 청소년 극단 ‘마루’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아하! 한겨레> 학생수습기자들이 찾아가 봤다.

스스로 배움을 알아가는 공간 ‘품&페다고지’

“청소년 시기에는 입시 공부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죠. 하지만 여기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공부를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모임을 꾸리고 정기적으로 토론을 합니다. 최근엔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해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쓴 <소금꽃나무>를 읽은 뒤 현장에 가기도 했죠.”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 이재랑(19·성공회대 사회학)씨는 울산의 대안문화공간인 ‘품&페다고지’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았다. 탈학교 청소년이었던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

“학교 밖에서 길을 잃기보단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진짜 원하는 일을 찾고 싶었죠.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들러 독서토론을 하거나 연극반에 참여했어요. ‘품’이라는 소극장이 지하에 따로 있거든요.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어 무척 좋았어요. 대학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울산 중구 성남동에 위치한 ‘품&페다고지’는 2008년 10월에 4층짜리 건물 2층과 지하에 둥지를 틀었다. 노동자, 여성, 청소년 등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4개월간 노동자 60여명이 힘을 보탰고 공간을 꾸미는 작업도 함께 했다. 2층 책마을은 울산 현대자동차의 한 노조원이 기증한 1300여권의 책으로 가득했다. 각종 모임, 세미나, 토론 등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정기적으로 여는 ‘열린 강좌’에 청소년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책마을 ‘페다고지’는 파울루 프레이리의 교육이론이 담긴 책 <페다고지>에서 따왔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식,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자는 의미에서 정했다고 한다.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에 지친 청소년들이 새로운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해요. 다양한 강좌를 들으며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보는 거죠. 교사와 학생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게 구분되어 있지도 않죠.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우면서 배우는 평등한 관계를 지향합니다.” ‘페다고지’ 운영위원인 최수미(43)씨는 ‘대안문화공간’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페다고지’에서는 청소년 예술인문학교인 ‘다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내 안의 ‘다름’을 키우다, 내 밖의 ‘다양’에 물들다’를 프로젝트 목표로 내걸었다. ‘다다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독서토론, 인문학 강좌, 글쓰기반, 연극반 등을 운영한다. 박성미(17·울산 삼산고 2학년)양은 ‘다다 프로젝트’ 1, 2기 모두에 참여했다. “1기는 글쓰기반에, 2기는 영상반 활동에 참여했어요. 꿈이 소설가인데 활동을 통해 다양한 글쓰기를 할 수 있어 좋았어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보기도 했죠. 제 꿈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꿈이 현실이 되는 곳 청소년 극단 ‘마루’


이명선(17·국립전통예술고 2학년)양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청소년 극단 ‘마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강료도 비싸고 대입을 통과하기 위해 형식적인 것만을 가르치는 학원이 싫었어요. 여기선 자유롭게 연습을 하며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어볼 수 있죠. 선배들이 직접 연기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학원에 갈 필요도 없고요.” 청소년 극단 ‘마루’는 서울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와이틴(Y-teen) 소속으로 ‘마루’라는 소극장이 생기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서울 와이더블유시에이의 후원으로 연 2회 정기공연과 청소년 연극제, 초청 공연 등을 하고 있다. 주로 연극과 뮤지컬 등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이 활동하고 있다.

전혜리(17·성남 늘푸른고 2학년)양도 극단 ‘마루’ 활동을 통해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고등학생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죠. 하지만 여기선 연습할 공간도 있고 직접 무대에 올라갈 수 있어 경험을 쌓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꿈을 이루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자극도 받죠.” 200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마루’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아홉살 인생’ ‘사천의 선인’ 등 수십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마루의 단원이 되려면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만 단원 신청을 받는다. 매주 토요일 극단에 모여 기초 연기교육을 받고 연습을 한다. 입시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인 훈련을 기대해선 안 된다. 청소년들이 무대라는 큰 공간을 느끼고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우해빈(17·서울 양재고 2학년)양은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연습을 하다 보니 나만의 연기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다”며 “이런 문화공간이 많아져 청소년들이 꿈을 현실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네 아이들의 쉼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던 중 ‘헌책방’을 열게 됐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하 ‘이상북’)의 윤성근(35)씨는 자신이 읽은 책만 파는 ‘이상한’ 헌책방의 주인장이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골목길에 있는 ‘이상북’에서는 고전읽기 모임도 하고 고전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음료수 한잔을 주문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오래 머물 수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장난감도 있다. 소규모 공연과 전시회도 열린다.

‘이상북’은 청소년을 위한 대안공간 구실도 한다.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반겨준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에겐 또다른 공부의 장소이자 놀이터이다. “이상북을 수식하는 말이 ‘청소년 대안공간’이죠. 원래 청소년들과 꿈꾸는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책도 읽으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특히 지역 청소년들과 연계한 프로그램 운영이 활발한 편이다. 지난해에는 월별로 주제를 정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솔직한 그림책’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책으로도 나왔다. 올해는 대안학교인 은평씨앗학교 학생들과 함께 ‘청소년 문화제’를 연다. 일반학교에서 하는 학예회와는 분명 다르다. 평소에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해왔던 것을 전시하기 때문에 문화제 자체가 수업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곳을 찾았다는 김주희(12·서울 녹번초 6학년)양은 “또래 친구들의 공연과 전시회를 볼 수 있어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며 “공부도 주로 이곳에서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장한슬(부산국제외고 2학년) 학생기자

이기쁨(울산 다운고 3학년), 이종은(고양외고 2학년) 한지흔(안법고 2학년) 학생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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