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가입실적 올리기 ‘막무가내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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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컴퓨터 사용실태 등 불문 ‘학급당 70%’ 목표 할당

교사들이 공인인증서 발급 대행 등 편법가입 판쳐

실제 접속 이용률은 ‘뚝’…“도·농 상황맞게 바꿔야”


대구의 한 중학교 교사 ㄱ씨는 여름방학 전까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의 학부모 서비스 ‘가입 대행 업무’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는 일방적으로 학급당 가입률 70%를 목표로 제시했다. 이 목표는 학부모 대부분이 나이스 가입을 번거롭게 생각하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목표 달성 압박에 내몰린 교사들은 결국 학부모들의 가입을 대행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담임 교사들은 학생들로부터 학부모 신분증을 받아 나이스 가입에 필요한 공인인증서까지 대신 발급받았다.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으려면 전자우편으로 인증번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계정이 없는 학부모인 경우는 전자우편까지 대신 만들어야 했다.

ㄱ교사는 “지역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컴퓨터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르는 학부모들에게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서비스에 가입하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교사가 대행해서 가입시키더라도 정작 부모들은 서비스 이용은커녕 접속조차 해보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ㄱ교사는 “교사가 학부모의 개인정보를 입력한 뒤 본인인증용 공인인증서의 비밀번호까지 대신 지정해 발급받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뭘 배우겠느냐”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처럼 전국의 교사들이 해마다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의 가입률을 높이려고 학부모를 대신해 서비스에 가입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나이스 가입 때 사용한 공인인증서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새로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해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차세대 나이스 도입 뒤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할 수 있는 방법도 도입됐다.

하지만 학교생활기록부와 학생건강기록부 등 학생 관련 주요 정보에 접근하려면 인터넷상에서 주민번호를 대신해 쓸 수 있는 아이핀이나 공인인증서로 접속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들의 ‘가입 대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나이스 가입을 유도하려고 집에 성적표를 보내지 않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지난 4월 각 학교에 보낸 나이스 관련 공문에서 과도한 학부모 서비스 가입 권유로 학부모의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특히 인터넷 이용률이 낮은 농·어촌 지역 학교에서는 이런 가입 대행이 더 심각하다. 전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금융거래용 인증서가 없는 학부모들에게 나이스 가입용 공인인증서를 발급받도록 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학교에서 학생을 통해 학부모의 전자우편을 만들도록 한 뒤 인증번호를 받아서 대리 가입을 해주고 있다”고 털어놨다. 교사들이 학부모를 대신해 서비스에 가입하는 등 편법으로 가입률은 높여놓았지만, 실제로 서비스 이용까지 유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초등 5학년생 딸을 둔 박아무개(44·대구시 수성구)씨는 “3년 전 학교에서 여러차례 가입을 권유해 등록은 했지만, 실제로 접속해서 이용할 필요가 없어서 갱신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 정책실장은 “교원능력개발평가를 하려면 학부모들이 서비스에 가입한 뒤 접속을 해야 하므로 가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학부모 대부분이 부담스러워한다”며 “일방적으로 가입을 밀어붙일 게 아니라 도시와 농촌 지역의 인터넷 활용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비스 접속 방법을 새로 고민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이스를 관리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대외홍보부 쪽은 “공인인증서로 승인신청을 하고 인증한 건수만 집계하고 있어 대리가입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 광주 청주/박주희 정대하 오윤주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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