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로 가는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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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종 작성일16-05-05 10:28 조회3,153회 댓글0건본문
진도로 떠나는 역사 기행
기억과 행동을 위한 다짐문화제
최기종(목포참교육학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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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
1.진도는
1) 진도아리랑의 고장
2) 진도개의 고장,
3) 일년 농사지으면 3년을 먹는다는 기름진 땅의 고장.
4) 서, 화, 창에 능해서 예향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고장
5) 고려 삼별초의 항쟁과 이순신의 명량해전과 동학항쟁에 빛나는 충절의 고장
2. 현재의 진도
1) 대한민국 남단의 섬 진도 ~ 목포 56km. 광주 132km, 서울 452km
2) 면적: 430.6km, 1읍 6면(세번째 섬)
3) 인구: 32,357명(2016년도 기준)
4) 도서수: 230개(유인도: 45, 무인도: 185)
3. 용장산성
고려 원종 때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반대한 삼별초군은 원종의 육촌인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내려와 항거했던 곳이다. 고려의 장군 배중손(裵仲孫)이 이끈 삼별초군은 이 성을 대몽항쟁(1270~1271)의 근거지로 삼아 고려 관군과 몽고군에 항전을 하다가 패퇴했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38, 741척(尺), 높이 5척이라고 하였다.
4. 운림산방(雲林山房)
운림산방은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첨찰산 아래 소재한다. 운림산방은 첨찰산 깊은 골에 운림(雲林)이 가득한 곳에 앉은 산방(山房)이란 뜻이니 그 이름에서부터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다. 전통남화(南畵)의 성지라 할 운림산방은 조선말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말년에 거처한 화실의 당호이다. 소치는 그의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붙여준 것이라 한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두륜산방(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보며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 때 초의 선사의 소개로 추사선생의 제자로서 서화수업을 본격적으로 익히게 되었다.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詩書畵에 능하게 된 40세 때, 1847년 7월 낙선제에서 헌종을 만나게 되고, 헌종의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다. 이어 흥선대원군 등의 신분 높은 사람들과 교류하다가, 추사가 세상을 뜨자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쌍계사아래 운림산방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특이한 점은 소치이래로 그 가계(家系)에서만 4대(소치 허련 - 미산 허형 - 남농 허건 - 임전 허문)를 이어가며 남종화의 맥을 지켜가고 있으며 모두 남화의 대가라 할만하다.
현재는 소치가 말년에 기거하던 운림산방 및 거처지, 소치기념관, 진도역사박물관이 함께 건물을 나란히 하고 있다.
5. 신비의 바닷길
세상에 알려진 신비의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약 2.8 Km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수심이 낮아질때 바닷길이 드러나는 조수 현상으로 40여m의 폭으로 똑같은 너비의 바닷길이 바닷속에 만들어 진다는 데 신비로움이 있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랑디씨가 진도에 관광을 왔다가 프랑스신문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아려지게 되었다. 바닷길이 드러나는 현상이 가장 두드러질 때가 5월초이며 이때 진도에서는 “영등제”라는 축제를 열고 진도의 민속을 공연한다. 현재는 바닷길입구에 뽕할머니 사당과 뽕할머니와 호랑이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6. 남도석성(남도진성)
남도석성은 고려 원종 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성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 고종 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이 연해 지방을 노략질해서 충정왕 2년 (1350)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돌아와 축성하였다. 축성연대는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성종 - 연산군 연간에 이 성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도진성 본래의 규모는 그 둘레가 1,233자, 높이가 8자,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 현재는 성지가 거의 원형적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동문, 서문, 남문터가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 높이는 5.1m다. 이 성은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남도진성에 있는 쌍교와 홍교는 성의 외곽을 건너 다니기 위하여 축조한 것인데, 편마암의 자연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7. 세방낙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진도군 지산면 세방마을의 낙조는 다도해 경관의 압권이다. 진도의 해안도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낙조는 정말 환상적이다. 떨어지는 해와 수평선이 만나면 바다는 일대가 붉은 빛으로 물드는데 그 모습은 거의 슬프고 비장할 정도이다. 그리고 주변에 뿌려진 섬 들 손가락섬, 발가락섬, 가사도, 사자도 등등... 오죽하면 중앙 기상대가 한반도 최남단의 제일 낙조 전망지로 선정했을 정도이다. 많은 숲들과 청정해역에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를 여행한다면 육체의 피로함이나 근심 걱정이 모두 다도해의 푸른 물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8. 기억의 숲, 기억의 벽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의 희생자를 영원히 기억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성되었다. 배우 오드리 햅번의 첫째 아들인 선헵번 페러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오드리 햅번 가족, 416가족 협의회, 사회혁신기업 트리플래닛이 전국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함께 조성하였다.
기억의 숲은 총 면적 3,200제곱미터이며 은행나무 304 그루가 자란다. 은행나무는 장수 수종으로 가을 노랗게 물드는 잎은 희생자를 오래도록 추모하고 기억한다는 의미의 노란 리본을 상징한다.
기억의 벽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한 추모와 위로의 공간이다. 기억의 벽 구조물 외부에는 304번 접힌 면이 형성되어 있다. 주름에 의해서 형성된 실재하지 않는 304개의 선은 각각 한 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며 추모한다.
9. 팽목항(진도항)
팽목항은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로, 1996년 12월 해양수산부에 연안항 지정 신청을 내어 1998년 2월 해양수산부로부터 연안항 지정고시를 받았다. 이후 연안항으로서 해양수산부로부터 관리를 받게 되어 진도군의 항만건설에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동안 진도군은 섬에 걸맞은 항구를 갖추지 못하였으나 팽목항이 연안항으로 지정, 개발 되면서 항구다운 항구를 갖추게 되었다. 과거에는 목포에서 팽목을 걸쳐 제주도를 연결하는 항구였으며, 현재는 진도 근해에 있는 섬, 특히 팽목과 조도를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지 역할을 하고 있다.
10. 세월호 참사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급변침을 하며 침몰했다. 배가 침몰돼가고 있음에도 세월호에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만 흘러나왔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해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던 선원들이 먼저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했다. 배가 침몰한 이후 구조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발표했지만, 참사 발생원인과 사고 수습과정 등에 대한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같은 의문점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2014년 11월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나 아직까지도 밝혀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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