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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벽오동 심은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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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3-04-03 19:53 조회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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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동 심은 뜻은....
박병희(역사모)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나는 봉황과는 견줄 수도 없는 작은 멧새를 보고자 회초리 같은 살구나무 묘목을 심었던가? 내가 작년 봄에 제주시 나무시장에 가서 살구나무 묘목을 사다 심은 까닭은… 무엇을 보잤는가?

답은 이 시에 있다.

춘신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중 2, 열네 살 국어시간에 이 시를 처음 읽으면서 머릿속에 환하게 그려지던 놀라운 영상이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까지도 시시때때로 재생되고 있다. 언제나 머릿속으로 만 보던 영상을 실제로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되었던 것은 제주에 오게 되면서다. 작지만 마당이 있으니 살구나무를 심으면 되지 않나.
​ 그래서 작년 이맘때 나무시장에 가서 굵기가 2cm도 안되는 기다란 회초리 같은 살구나무 묘목을 하나 샀다. 판매하는 분이 위쪽의 1/3 이상을 잘라버렸다. 집으로 가져오니 심을 곳이 마땅찮다. 우리 집은 남서향인데 대지가 동서로 길게 생겨서 마당이 집의 오른쪽 옆구리에 붙어있다. 살구꽃 꽃등이 창 앞에 피어오르려면 창문 앞에 심어야 하는데… 창에서 돌담까지의 공간이 2미터가 채 안 된다. 나중에 나무가 크게 자라면 창문에서 손에 닿을 테고 담너머로 옆집 들어가는 진입로로도 가지가 넘어갈 텐데….

염려되는 점을 짐짓 모르는체하고서 안방 창문 앞에 심어버렸다. 회초리 같던 묘목에서 작년에 가지가 다섯 개 자라났다. 봄이 되어 언제나 새잎이 나려나 하고 지날 때마다 살펴봐도 잎이 자라날 기미가 안 보였다.

 아이쿠 놀래라~~~! 꽃망울 생긴 것도 못 봤는데 어느새 작은 꽃이 몇 송이 피어있다(3월 19일). 그전 날도 없었는데. 잎이 나나 하고서 겨울눈을 몇 차례 살피기도 했는데 … 꽃눈이 생겼을 것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안 보였을까? 작년에 묘목을 살 때의 모습은 옆에 난 작은 가지 하나 없이 그냥 회초리였다.. 그러니까 1 년 만에 잘 자란 맹아지 같았는데 … 그 아래에 접을 붙인 대목이 상태가 좋은 것이어서 접붙인 부분이 그렇게도 잘 자라난 것일까?

10 년쯤은 지나야 춘신에서 묘사한 꽃등 비슷하게라도 될까 바랐는데 벌써 꽃이 피어주니 욕심이 생긴다. 5년쯤 후에는 아담한 꽃등이 될 수 있을까? 작은 멧새도 하나 찾아올까? 걱정할 것 없다 일단 살구나무를 심었으니. 환한 꽃등 아래서 열네 살 그때 마음으로 춘신을 읊조릴 수 있는 그날이 언젠가는 오고야 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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