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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0-03-31 15:53 조회3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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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이혼소송 중에 부부가 겪게 되는 것들

송미강(역사모)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노아 바움벡 감독의 결혼이야기는 '이혼이야기'로 제목을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남편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회고하는 스칼렛 요한슨(니콜)의  독백이 이어질 때는 ' 이렇게 행복했던 결혼생활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보여주려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곧 이혼을 결심한 니콜의 단호한 행보와  원치않는 이혼소송에 휘말린 찰리의 분투로 채워진다.

​ 니콜은 이혼을 결심하고 아들과 함께 뉴욕을 떠나 LA 친정집으로 이주한다. 일자리도 있고 아이의 학교도 옮겼고 친정식구과의 유대도 좋다.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 착착 이혼준비에 돌입한다. 한편 부인이 잠깐 고향에 가있기로 한 정도로 알고 일시 별거를 받아들인 찰리는 이혼소장을 받고 혼란에 빠진다. 이혼법정이 뉴욕이 아닌 LA인 것부터 그에겐 불리하다. 아이도 엄마를 더 좋아하고 LA 에서의 생활을 좋아한다. ' 공기도 좋고 집도 넓은' LA 에서 부인과 아이는 더 행복하게 살 준비를 마쳤다.

​ 대개의 경우, 이혼소송의 원고는 능동적으로 결혼생활을 끝내려고 다짐하고 준비해 온 사람들이라면 피고는 불행했지만 견디려 애쓰다가 한발 늦어 이혼을 당하게 된 피해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혼에 돌입한다. 이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피고의 혼란은 뉴욕과 LA를 오가며 이혼재판을 준비하는 찰리의 고달픔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혼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실감하고, 아이양육권 마저  빼앗길 위기에 놓이자 변호사를 알아보고 아이와 어럽게 만나 시간을 보내느라 쩔쩔매는 찰리의 모습을 보노라면, 니콜은 왜 굳이 이혼을 하려는건가 싶고 찰리가 불쌍해진다.   
 니콜의 이야기를 통해 결혼생활의 고통을 들었을 때는 왜 이혼까지 왔어야 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찰리가 이혼소송을 준비하고 부인과 아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이 부부가 어디에서 막혀있었는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찰리는 자수성가한 연극연출가이고 니콜은 남편의 무대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다. 찰리는 자신의 취향과 플랜대로 부인이 따라와 줄 것을 요구하고, 니콜의 연기에 날카로운 비평을 날린다. 부인의 좌절을 이해하려들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모습, 부인과 아이를 질리게 하는 경직되고 강박적인 태도에 갇혀있다. LA에서 살고 싶어했던 니콜의 바램은 자신의 판단과 필요에 근거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고, 자신의 계획과 비전을 따라오면 다 행복해 질 거라는 신념을 내려놓질 못한다. 

​ 니콜과 찰리는 서로에 대한 연민과 존중을 지키고 싶어하고, 무엇보다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 역할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양육권 쟁탈을 둘러싸고 이혼전문변호사들이 개입하면서 소송은 진흙탕 싸움이 되기 시작한다. 이기기 위한 전략과 전술들, 상대를 깍아내려야 하는 비열한 전쟁에 휘말려든다. 연민과 고통의 언어들은 약점이 되어 반격으로 돌아와 배신감에 떨게 되고, 양육권 쟁탈에 자존심을 걸게 된다.

​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부부싸움 장면은 아무리 애쓰고 이해해 보려해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리고 끔찍한 블랙홀에 빠져버리고야 마는 부부싸움의 처절함을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똑같은 문제로 수백 번 싸우고 좌절하고 고통받는 부부싸움의 시뮬레이션을 숨막히며 체험하게 된다.

 니콜은  상처를 줄이고 이혼을 마무리하고 싶어하지만, 찰리는 한꺼번에 몰려온 좌절과 상실을 감당할 수 없어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파트를 급조하고 꾸미며 애를 쓴다. 부부싸움 끝에 구멍을 낸 벽을 양육심사원에게 들키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앞뒤 안맞은 행동을 하다  손에 상처를 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휴지로 쥐어싸고 쓰러져 흐느끼는 찰리의 모습은 너무 딱하고 가슴아프다. 

 영화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영화 제목은 결혼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이혼하는 과정도 결혼생활의 한 부분이고 결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노아 바움벡 감독은 '오징어와 고래' 에서 이혼가정의 아이였던 자신의 아픔을 자전적으로 그린 바 있다. 한 가정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지난한 과정에서  각각의 구성원들이 겪는 혼란과 좌절을 차분하고 정교하게 연민어린 시선으로 그려내는 그의 능력은 '결혼이야기'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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