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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2-12-31 21:09 조회110회 댓글0건본문
오랜만에 일산에 갔습니다
장은정(역사모)
“나는 **에서 20년 넘게 살았어도, 내가 **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들어.”
얼마 전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 친구는 어느 지방 도시의 대학 교수가 되어 거기서 아이들도 낳고 대학 선생 일을 하면서 오래 살았으면서도, 자신이 그 곳 사람이라는 느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타지에서 온 사람에 대해 은근히 배타적인 분위기도 있었을테고, 같은 대학 교수들과 친하게 지내는 듯해도 입단속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학교 내 계파싸움 등에 휘말릴 위험 등도 있으니, 마음 놓고 지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친구는, 어느 날 모처럼 남편도 아이들고 없는 자유부인이 되었는데, ‘맥주 한 잔하자’고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일산에 다녀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3호선 전철로 따지면 일산에서 극과 극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사는 곳에서 일산까지 전철을 타고 가는데 엉덩이가 아파서 중간에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전철로 일산을 들어가기는,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이었습니다. 그 간 고양시 근처로 갈 일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 지축역을 지나면서 보니 예전의 허허벌판은 간데없고 번화한 도심이 되어버려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이 날 일산으로 오랜만에 발걸음을 한 것은, 고양지회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릴 일이 있어서이기도 했고.... 박이선씨 회갑이 올해였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어서이기도 했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역사모에서 이야기할 때 내년인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로 만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어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같이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올해를 넘기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몇 주전에 날짜를 잡았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흙마음의 김양완, 조난주, 최윤정, 이효영, 박이선, 취직해서 얼굴 보기 힘든 이순정, 글나누리의 김인숙, 황명숙, 백석도서관에서 근무 중 점심시간을 틈타 외출한 한경희, 때마침 구례에서 일산으로 올라와 계신 이현숙, 이제 평택댁이 된 박채우까지... 총회할 때보다 더 많이 모였다며 웃었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이 없는 것 아시죠. 우리도 만나자마자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조심할 필요 없고, 내 마음 가는대로 편하게 이야기해도 거슬리는 것 없는 편안한 수다 상대를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은 아실 겁니다.
점심 먹고, 자리를 옮겨 차 마시고, 한 세 시간 정도 떠들었지만. 사실 충분치는 않았습니다. 이런 수다는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쯤은 해 줘야 몸과 마음에 보약이 되는데 말이죠.
일산을 떠난지, 따져보니 벌써 꼬박 3년이 지났더군요. 일산에 가면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로 예전 살던 마두동을 잠시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 동네가 반가우면서도, 더 이상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너무 이상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해서 어느 한 부분은 일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일산이 무슨 고향이라도 된 것 같이 말이죠. 이 동네에서 어디 외식이라도 가게 되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일산에서 갔던 어느 가게랑 비교합니다. 물론 결론은 거의 항상 일산이 더 좋았다 입니다. 작은 아이는 저녁 먹고 혼자 산책을 나가면서, 일산에서는 호수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는데, 여기는 여의치가 않다고 불평입니다. 어제 저녁에 김훈씨의 책을 읽는데, 호수공원 이야기가 나오니 괜히 우쭐해졌습니다. ‘나 여기 알아’하는 마음이었달까요.
서울의 남쪽 끝으로 이사하고 보니, 자유부인이 되어도 맥주 먹자고 번개 칠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번개는 못 쳐도 아주 외롭지는 않습니다. 생각나면 언제든지 반가운 얼굴로 만날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겠지요. 코로나도 이제는 그리 무섭지 않으니까요. 오랜만에 일산에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장은정(역사모)
“나는 **에서 20년 넘게 살았어도, 내가 **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들어.”
얼마 전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 친구는 어느 지방 도시의 대학 교수가 되어 거기서 아이들도 낳고 대학 선생 일을 하면서 오래 살았으면서도, 자신이 그 곳 사람이라는 느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타지에서 온 사람에 대해 은근히 배타적인 분위기도 있었을테고, 같은 대학 교수들과 친하게 지내는 듯해도 입단속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학교 내 계파싸움 등에 휘말릴 위험 등도 있으니, 마음 놓고 지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친구는, 어느 날 모처럼 남편도 아이들고 없는 자유부인이 되었는데, ‘맥주 한 잔하자’고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일산에 다녀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3호선 전철로 따지면 일산에서 극과 극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사는 곳에서 일산까지 전철을 타고 가는데 엉덩이가 아파서 중간에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전철로 일산을 들어가기는,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이었습니다. 그 간 고양시 근처로 갈 일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 지축역을 지나면서 보니 예전의 허허벌판은 간데없고 번화한 도심이 되어버려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이 날 일산으로 오랜만에 발걸음을 한 것은, 고양지회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릴 일이 있어서이기도 했고.... 박이선씨 회갑이 올해였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어서이기도 했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역사모에서 이야기할 때 내년인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로 만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어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같이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올해를 넘기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몇 주전에 날짜를 잡았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흙마음의 김양완, 조난주, 최윤정, 이효영, 박이선, 취직해서 얼굴 보기 힘든 이순정, 글나누리의 김인숙, 황명숙, 백석도서관에서 근무 중 점심시간을 틈타 외출한 한경희, 때마침 구례에서 일산으로 올라와 계신 이현숙, 이제 평택댁이 된 박채우까지... 총회할 때보다 더 많이 모였다며 웃었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이 없는 것 아시죠. 우리도 만나자마자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조심할 필요 없고, 내 마음 가는대로 편하게 이야기해도 거슬리는 것 없는 편안한 수다 상대를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은 아실 겁니다.
점심 먹고, 자리를 옮겨 차 마시고, 한 세 시간 정도 떠들었지만. 사실 충분치는 않았습니다. 이런 수다는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쯤은 해 줘야 몸과 마음에 보약이 되는데 말이죠.
일산을 떠난지, 따져보니 벌써 꼬박 3년이 지났더군요. 일산에 가면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로 예전 살던 마두동을 잠시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 동네가 반가우면서도, 더 이상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너무 이상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해서 어느 한 부분은 일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일산이 무슨 고향이라도 된 것 같이 말이죠. 이 동네에서 어디 외식이라도 가게 되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일산에서 갔던 어느 가게랑 비교합니다. 물론 결론은 거의 항상 일산이 더 좋았다 입니다. 작은 아이는 저녁 먹고 혼자 산책을 나가면서, 일산에서는 호수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는데, 여기는 여의치가 않다고 불평입니다. 어제 저녁에 김훈씨의 책을 읽는데, 호수공원 이야기가 나오니 괜히 우쭐해졌습니다. ‘나 여기 알아’하는 마음이었달까요.
서울의 남쪽 끝으로 이사하고 보니, 자유부인이 되어도 맥주 먹자고 번개 칠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번개는 못 쳐도 아주 외롭지는 않습니다. 생각나면 언제든지 반가운 얼굴로 만날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겠지요. 코로나도 이제는 그리 무섭지 않으니까요. 오랜만에 일산에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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