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글 나눔 | 남의 편과 살기
페이지 정보
고양지회 작성일22-05-02 12:46 조회119회 댓글0건본문
남의 편과 살기
박병희(역사모)
언젠가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너무나 불가사의한 남편의 언행에 대한 수수께끼가 조금은 풀리는 듯도 했다. 또한 남편을 옆에 두고서도, 아니 남편이 옆에 있으므로 더욱 아리게 느껴지곤 했던 외로움도 약간이나마 덜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싶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른 사건이 있다. 결혼 후 5년 정도 되었을까? 갈현동에 살고 있을 때였다. 시댁에서 처음으로 살림을 나갔던 개포동 주공아파트에서 갈현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갈현동에는 나의 큰언니가 살고 있고 또 남편의 대학 선배 한 분이 살고 있어서 이사를 가는 마음이 전혀 불안하지 않고 든든하기까지 했었다. 이사 후 나는 약국을 하는 여동생을 도와주고 있어서 낮에는 거의 약국에 있었는데 그 약국은 연신내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연신내역에 가려면 지나가는 곳이다. 그래서 큰언니와 형부는 오며 가며 자주 들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편 선배의 부인은 6개월이 되도록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의 여러 친구팀 중에서도 남편이 아주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좀 의아했다.
남편이 그 친구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중동에서 근무할 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인당 한 개씩만 살 수 있어서 그 친구들에게 줄 파카만년필을 사려고 회사 직원들을 거의 열 명 가까이 동원해서 줄을 서게 해서 샀다고 했다. 반면 내 선물은 하나도 사온 것이 없었다. 왜 내 선물은 없냐고 했더니 자기가 온 게 선물 아니냐고. 참 나! 남편이 그렇게나 믿고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나도 내심 든든했는데 이사 온 직후(약국 하기 전) 이사 온 집에 한번 인사 온 것이 다다. 6 개월이나 기다리다가 어느 날 남편에게 섭섭함을 하소연했다. 듣자마자 남편이 하는 말은 “당신이 뭐 섭섭하게 한 게 있겠지.” 였다. 그때까지도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기를 기대했던 나는 아연실색했다. 맞다. ‘남의 편’이 아니고서야 어찌 남의 편을 먼저 들겠나? 그 사건이 시작에 불과한 것인 줄도 그때는 물론 알 턱이 없었다.
이런 ‘남의 편’과 그럭저럭 40년이 넘게 살았다. 가끔은 ‘내 편’ 같은 때도 있는데 제주로 이사 온 후에는 조금씩 ‘ 한편’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체력도 안 되면서 농사짓기를 좋아하는데 남편의 도움이 없다면 백 평도 넘는 밭농사를 엄두나 내겠나. 남편은 농사에 관심이 없고 그냥 노동에 불과하다. 나의 중장비다. 지시만 하란다. 삽으로 뒤집어엎고 고랑을 만들고 다 잘 한다. 그런데 어느 때는 가만 보면 밭의 여기저기 사진도 찍는다. 또 어떤 날은 자기가 삽질하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디에다 쓰는지 모른다. 농사일에 관심이 생기나? 보람을 좀 느끼나 기대가 생기려고 한다.
나와 한편이 되어가는 남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식물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데 쓸 데 없이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작물인지, 잡초인지, 꽃인지 거의 구분을 못한다. 그래서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려고 미리 당부를 한다. 현장에서 식물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이건 절대로 뽑거나 밟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당부를 하면 뭐 하나? 불상사가 예방 안 된다. 남편이 뽑아 던지고 뜯어버린 작물, 나무, 꽃이 어디 한두 개인가? 열 손가락이 부족하지만 최근에 일어난 사건 두 가지만 공개한다.
줄 세워서 14 포기의 양귀비를 심어놓았는데 어찌 그 줄이 안 보이는지? 현장에서 보여주었건만 그중 두 포기를 뽑아버리다니! 본인이 그랬는 줄도 모른다니! 얼마 전에 다녀간 아들 내외가 두고 간 폰 충전기를 보내주려고 택배 비닐포장지에 담아서 포장해 두었더니 낼름 폐비닐 수거함에 넣어서 송당리 재활용함에 버리고 오는 부지런함은 또 뭔가?
하는 수 없다. 사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포장한 충전기는 내 책상 위에 갖다뒀어야 했다. 줄 세워 심어놓은 꽃을 뽑아버린 것은 내가 아쉬워 말고 포기해야 한다. 뽑힌 자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면 나만 손해다. 그래도 앉아서 남편 손에 아침식사를 받아 먹는 팔자는 보통이 아니지 않나. 밥은 아니지만 청국장, 견과류, 보리빵, 과일, 두유, 달걀을 차려준다. 나는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즐긴다. 설거지도 남편이 한다. 빨래를 돌리면 빨래 건조대를 마당에 내다 놓고 무거운 돌이나 화분으로 눌러준다. 덜 마른 빨래를 건조대 채로 실내로 들여놓는 것도 남편 담당이다.
남편이 안 하거나 못 하는 것이 있다. 밥(요리)을 못 한다. 전기밥솥에도 밥을 해본 적이 없다. 또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없다. 빨래를 널거나 걷거나 개는 것을 질색한다. 집안일이 적절하게 분담되어 있어서 만족해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에게 더 의지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같이 나이 든 부부의 삶은 상대방의 보폭에 배려를 해야 하는 2인삼각 경주가 아닐까? 언젠가 함께 묶인 두 다리 중 하나가 없어지면 묶였던 다리는 목발을 짚는 것 같을까? 아무려면 목발을 짚는 것보다는 이인삼각 경주가 더 낫지 않을까? 호흡만 잘 맞춘다면.....
박병희(역사모)
언젠가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너무나 불가사의한 남편의 언행에 대한 수수께끼가 조금은 풀리는 듯도 했다. 또한 남편을 옆에 두고서도, 아니 남편이 옆에 있으므로 더욱 아리게 느껴지곤 했던 외로움도 약간이나마 덜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싶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른 사건이 있다. 결혼 후 5년 정도 되었을까? 갈현동에 살고 있을 때였다. 시댁에서 처음으로 살림을 나갔던 개포동 주공아파트에서 갈현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갈현동에는 나의 큰언니가 살고 있고 또 남편의 대학 선배 한 분이 살고 있어서 이사를 가는 마음이 전혀 불안하지 않고 든든하기까지 했었다. 이사 후 나는 약국을 하는 여동생을 도와주고 있어서 낮에는 거의 약국에 있었는데 그 약국은 연신내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연신내역에 가려면 지나가는 곳이다. 그래서 큰언니와 형부는 오며 가며 자주 들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편 선배의 부인은 6개월이 되도록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의 여러 친구팀 중에서도 남편이 아주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좀 의아했다.
남편이 그 친구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중동에서 근무할 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인당 한 개씩만 살 수 있어서 그 친구들에게 줄 파카만년필을 사려고 회사 직원들을 거의 열 명 가까이 동원해서 줄을 서게 해서 샀다고 했다. 반면 내 선물은 하나도 사온 것이 없었다. 왜 내 선물은 없냐고 했더니 자기가 온 게 선물 아니냐고. 참 나! 남편이 그렇게나 믿고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나도 내심 든든했는데 이사 온 직후(약국 하기 전) 이사 온 집에 한번 인사 온 것이 다다. 6 개월이나 기다리다가 어느 날 남편에게 섭섭함을 하소연했다. 듣자마자 남편이 하는 말은 “당신이 뭐 섭섭하게 한 게 있겠지.” 였다. 그때까지도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기를 기대했던 나는 아연실색했다. 맞다. ‘남의 편’이 아니고서야 어찌 남의 편을 먼저 들겠나? 그 사건이 시작에 불과한 것인 줄도 그때는 물론 알 턱이 없었다.
이런 ‘남의 편’과 그럭저럭 40년이 넘게 살았다. 가끔은 ‘내 편’ 같은 때도 있는데 제주로 이사 온 후에는 조금씩 ‘ 한편’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체력도 안 되면서 농사짓기를 좋아하는데 남편의 도움이 없다면 백 평도 넘는 밭농사를 엄두나 내겠나. 남편은 농사에 관심이 없고 그냥 노동에 불과하다. 나의 중장비다. 지시만 하란다. 삽으로 뒤집어엎고 고랑을 만들고 다 잘 한다. 그런데 어느 때는 가만 보면 밭의 여기저기 사진도 찍는다. 또 어떤 날은 자기가 삽질하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디에다 쓰는지 모른다. 농사일에 관심이 생기나? 보람을 좀 느끼나 기대가 생기려고 한다.
나와 한편이 되어가는 남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식물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데 쓸 데 없이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작물인지, 잡초인지, 꽃인지 거의 구분을 못한다. 그래서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려고 미리 당부를 한다. 현장에서 식물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이건 절대로 뽑거나 밟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당부를 하면 뭐 하나? 불상사가 예방 안 된다. 남편이 뽑아 던지고 뜯어버린 작물, 나무, 꽃이 어디 한두 개인가? 열 손가락이 부족하지만 최근에 일어난 사건 두 가지만 공개한다.
줄 세워서 14 포기의 양귀비를 심어놓았는데 어찌 그 줄이 안 보이는지? 현장에서 보여주었건만 그중 두 포기를 뽑아버리다니! 본인이 그랬는 줄도 모른다니! 얼마 전에 다녀간 아들 내외가 두고 간 폰 충전기를 보내주려고 택배 비닐포장지에 담아서 포장해 두었더니 낼름 폐비닐 수거함에 넣어서 송당리 재활용함에 버리고 오는 부지런함은 또 뭔가?
하는 수 없다. 사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포장한 충전기는 내 책상 위에 갖다뒀어야 했다. 줄 세워 심어놓은 꽃을 뽑아버린 것은 내가 아쉬워 말고 포기해야 한다. 뽑힌 자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면 나만 손해다. 그래도 앉아서 남편 손에 아침식사를 받아 먹는 팔자는 보통이 아니지 않나. 밥은 아니지만 청국장, 견과류, 보리빵, 과일, 두유, 달걀을 차려준다. 나는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즐긴다. 설거지도 남편이 한다. 빨래를 돌리면 빨래 건조대를 마당에 내다 놓고 무거운 돌이나 화분으로 눌러준다. 덜 마른 빨래를 건조대 채로 실내로 들여놓는 것도 남편 담당이다.
남편이 안 하거나 못 하는 것이 있다. 밥(요리)을 못 한다. 전기밥솥에도 밥을 해본 적이 없다. 또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없다. 빨래를 널거나 걷거나 개는 것을 질색한다. 집안일이 적절하게 분담되어 있어서 만족해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에게 더 의지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같이 나이 든 부부의 삶은 상대방의 보폭에 배려를 해야 하는 2인삼각 경주가 아닐까? 언젠가 함께 묶인 두 다리 중 하나가 없어지면 묶였던 다리는 목발을 짚는 것 같을까? 아무려면 목발을 짚는 것보다는 이인삼각 경주가 더 낫지 않을까? 호흡만 잘 맞춘다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