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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부모따돌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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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2-05-02 12:43 조회2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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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따돌림의 비극: 부모를 미워해야만 아는 아이들

                                                      송미강 (역사모)

 이번 가족이야기에는 제가 상담사로 일하며 만난 가슴 아프고 슬픈 가족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고양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놀이치료사로 일하던 2009년, 이혼 중 양육권분쟁이 심한 이혼사건을 다루는 가사상담위원을 제안받았습니다. 이혼을 상상할 땐 두렵기만 했던 법원에 누군가의 이혼을 도와주는 일로 가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발을 내디뎠지요.

 이혼은 1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숱한 갈등과 불화 끝에 도달한 해결책입니다. 지칠대로 지쳐 심신이 황폐해져 있는 부부를 만나는 일은 힘겨웠고, 그 속에서 불안을 견뎌오다 법원에까지 불려온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늘 긴장이 맴돌았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가정의 해체를 겪는 아이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는지를 털어놓는 아이들은 그래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는구나 싶어 다행스러웠습니다. 가장 충격적이고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은 아주 단호하게 한쪽 부모를 경멸하고 저주하고 공격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존감의 근원인 부모를 필요 없고 나쁜 대상으로 여기는 아이들의 정신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내몰게 한 걸까? 고민하며 증오에 찬 아이들을 품어보려는 마음으로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에 대한 경멸의 시선에 한 치의 흔들림도 허용하지 않고, 그 부모의 안타까움을 전하려는 저에게 간담이 서늘해지도록 비난하며 쏘아보는 아이들을 대하는 동안 오금이 저리기도 했습니다. 

 재혼한 아버지와 친엄마의 갈등 때문에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고 집이 반파되는 악몽에 시달리던 청소년, 아버지의 집을 방문한 날 옷장에 있는 아버지의 양복과 셔츠를 가위로 난도질한 자매들, 아빠는 필요 없고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돼서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겠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어린 남매들, 아버지랑 법원에 가서 엄마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고발하겠다는 중학생, 그 사람은 나를 납치해 가서 콩밥을 먹인 사람이라고 아버지란 말 하지 말라고 매섭게 쏘아부친 여고생, 엄마한테 가서 돈이 없다고 용돈을 받아오고는 아빠한테는 절대로 엄마를 보지 않을 거라며 부모와 상담사까지도 속이려 한 초등생...

 아이들에게 거부된 부모들은 학대나 방치력이 있어서 자녀에게 이런 비난과 두려움의 대상이 될 만큼 나쁜 부모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자녀에게 왜곡된 생각과 적대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부모가 양육자로 지정된다면 이런 상태가 고착화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아이들에게 나쁘고 불필요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부모를 양육자로 고려하는 것은 아이도, 양육하고 있는 부모도, 법원도 용납하지 않을 것 또한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부모(자녀가 선호하는 부모)가 자녀를 조종하여 다른 부모(따돌려지는 부모)에게 등을 돌리게끔 하고 자녀 역시 그 부모를 적대시하며 거부하기에 이르는 현상’은 '부모따돌림증후군(Parental Alienation Syndrome)'으로 불리우는 가족병리현상임을 알게 되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딜레마를 마음에 품고 있던 중 전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비난받고 모든 접촉이 거부된 상태로 이혼소송 중이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삶이 무너지고 목숨만 겨우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부모따돌림증후군이라는,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자신의 고통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희망을 되살리게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아이들과 연결을 시도해 보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찾는 동안 어머니의 삶도 생기를 찾게 되었고 자녀들에게서 아주 작은 변화가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카톡이 안읽씹에서 읽씹으로 바뀌는 것, 선물이 반환되지 않는 것, 사촌들 근황소식에 반응이 오는 것 등..

 ‘부모따돌림증후군’ 혹은 ‘부모따돌림’에 대한 해외의 연구들은 이 문제의 해결이 상당히 어렵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지만, 이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알리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박사학위논문으로 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많은 가족들을 만나 본 결과 부모따돌림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미권보다 부모따돌림을 주도하는 부모와 원가족의 개입, 의존도가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가정에서 부모따돌림이 지속되면 아이와 따돌림된 부모와의 관계는 단절되기에 이르며, 그 과정을 겪는 동안 아이를 만날 수 없는 비양육부모들은 울화와 불면증, 절망과 상실감, 굴욕감, 우울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4년 전부터 제 논문을 검색하고 하나 둘 찾아오신 부모님들과 자조모임을 꾸려오고 있습니다. 블로그와 카페(면접교섭방해피해모임)도 만들고 홈페이지(parentalalienation.co.kr)도 만들어서 이 현상을 알리고 피해부모님과 연대하며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되찾고, 훼손된 부모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족을 통합하는 운동을 해보려 합니다. 가족의 달 5월이 어떤 부모에게는 절망과 상실이 되새김질되는 시간임을, 어떤 아이의 마음에서는 미워해야만 했던 엄마, 아빠를 몰래 그리워하는 시간일수도 있음에 가슴이 시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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