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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2021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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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1-12-01 17:02 조회1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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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보내며

● 불친절한 레시피 - 박채우(역사모)

 내게 주말농장이란 허리 아픈 봄 날 삽질, 모종 가게에서 설레는 쇼핑, 흙을 뚫고 나오는 생명에 대한 잠시의 경외, 장마와 더위로 외면한 발걸음, 정글로 변한 밭의 경계를 찾지 못하는 황망함... 이런 것들이었다.
올해 처음 남편과 봄부터 가을걷이까지 오롯이 시간과 땀을 들여 텃밭을 일궜다.
내 땅은 아니지만 이전의 나처럼 모종만 심어 놓고 멀어져간 다른 이들을 대신해 제법 넓은 면적의 텃밭에서 밭농사를 체험할 수 있었다. (체험 수준이 맞다) 김장거리 수확까지 마치고 나니 일 년을 잘 마무리 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그 간 돌이켜 보니 드는 생각 몇 가지.

 참 생명은 무섭게 질기다. 뽑아도 뽑아도 그 자리에서 비집고 나오는 잡초를 보면 약이 오르다가도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기려 기를 쓰면 내가 쓰러진다. 포기할 수도 없고 적당한 선에서 공존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워도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수박 두 개를 키웠다. 수확을 앞두고 하나는 잦은 비에 물러 썩고, 그걸 보고 놀라서 재빨리 딴 나머지는 덜 익었다. 수박은 글렀구나 포기했는데 뒤늦게 달린 작은 열매 하나가 제대로 익은게 아닌가? 성공과 실패를 쉽게 단정하지 말자.  늦었다고 해서 작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니.
관찰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주변 농부들의 말은 귀담아 들어야한다. 툭 던지고 가는 말을 무시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쉬운 건 어디에도 없구나. 내년엔 잘할 것 같지만 만만의 콩떡이겠지? 그래도 내가 키운 작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은 귀하다. 버릴 수가 없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먹어내야 한다. 이제 올해 키워서 맛있게 먹은 것들 자랑 시간. 갓 캔 감자 쪄먹는 맛 알랑가 몰라.
 날이 더워지면 주렁주렁 달리는 가지를 빨리 없애기 위해 튀김반죽 뭍혀 가지 튀김을 한다.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 꿀맛.
그래도 못 먹는 가지, 호박, 토마토는 그릇 밑에 토마토소스를 깔고 둥글게 썰어 삥 둘러 담아 치즈 뿌리고 오븐에 구워 먹는 라따뚜이를 해먹는다. (미안하지만 친절한 레시피 따위는 없어요. 유튜브에 더 잘 나와요.)
 방울토마토도 다 못먹겠지. 건조기에 말려서 썬 드라이드 토마토를 만든다.(진짜 썬 드라이드는 아니지만...)  말린 토마토는 올리브유에 소금, 바질가루와 재워 놓고 빵이랑 먹으면 찰떡이다. 여러 병 만들어 텃밭 이웃과 나눠 먹었다. 깻잎 장아찌는 성공했지만 부각은 풀 농도를 잘 못 맞춰 실패!
내가 농사지은 건 아니지만 최근에 만든 밤쨈은 밤이 안 팔려 남아돌 때 추천한다. 우유와 설탕을 넣고 졸여 고소하고도 달콤하다.
코로나로 만남도 모임도 없는 시간에 위안이 되어준 텃밭이 새삼 고맙지만, 그래도 사람이 정말 그립다.
직접 만든 음식을 도시락 싸서 나눠 먹고, 소소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우리들의 모임이 지금처럼 간절할 수가 없다.
 
  ● 송미강(역사모)

 돌이켜보니 올 한해는 다 큰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밥을 해준 한 해였다. 코로나 때문에 뉴욕에서 피신 와 공부에 매달려 있는 큰딸과 인턴하며 취업준비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움직이며 긴장 속에 살아가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다 컸으니 알아서 살겠지 하던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애들이 커서 사회에 나가니 갑질도 당하고 억울한 쿠사리도 듣고 와 울먹이고, 때로는 능력이 딸려 풀이 죽어서 초조해 하기도 한다. 귀한 자식한테 함부로 구냐고 같이 욕을 해대기도 하지만 마음 다쳤을 걸 생각하면 속이 아려왔다. 세상이 다 그러니 참고 견디라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고 영혼없는 위로일 것 같았다. 갑질과 열등감으로 다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사랑에서 나오고, 그 사랑은 엄마가 정성 다해 차려주는 밥에서 시작된다.!

 여름이 지나며 두 아이 모두 관문을 통과하고 자기 자리를 찾았다. 이제 다시 알아서 먹고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다. 열심히 장보고 밥해줬던 엄마의 애절함을 애들은 알까? 몰라도 상관없다. 내 마음이 꽉 차고 뿌듯했으니..

● 김양완(흙마음)

 올해는 코로나가 물러가고 일상의 삶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었는데 이렇게 한 해가 저물고 있네요. 그래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어찌어찌 살아진 날들이 보입니다. 확진자가 조금만 더 줄면 이걸 해 봐야지, 저기로 여행을 가 봐야지 다짐해 놓고는 하나도 못했던 한 해였습니다. 물론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없는 상황이긴 했으나 지금 돌아보니 게으른 변명같아 보이네요. 그래도 백신도 맞고 이제 희망이 보이나 생각했는데 또 다른 코로나 변이로 세상이 출렁입니다. 흠.. 정말 공상과학 소설에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고 있는걸까요?
 그래도 가끔씩이라도 만나서 밥 한끼 먹고 커피 마시며 수다 떨 수 있는 지인들이 옆에 있어서 올 한해도 행복했습니다. 아들도 수능을 치르고, 내년에는 집에 없겠네요. 20년만에 오는 자유를 어떻게 누릴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 육아, 그 험난 한 길 - 김인숙(글나누리)

 손녀가 이제 21개월로 들어섰다. 대학 때 배운 아동학을 더듬으며 육아서도 가끔 본다.요즘은 훈육에 관심이 간다. 마음 약한 내 모습이 보인다. 되도록 해달라는 건 들어주지만 이상한 고집을 막지 못해서 고민 중이다..어제도 이 닦이려다가 도망 다니고 입을 안열어서 잠시 화가 났다.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 비디오를 보여줘도 소용없네! 더 커서 아파봐야 알려나! 얼집 선배 할매가 내년이면 훨씬 편해질거라 하신다. ㅎㅎ
 며칠 전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꾸 컴방에서 이것저것 만지길래 비타민 주며 나오게 했는데 기분좋아 달리다 넘어졌다. 부딪힌 곳이 아프다고 말하다 사탕이 꼴깍 삼켜진게다. 토하려하다, 울다, 가슴 움켜쥐고 괴로워한다. 애가 죽을 거 같았다. 하늘이 노래진다.
 내복 입고 응급실로 달리나? 일단 안아주고 애 엄마에게 전화하다. 얼굴색이 파래졌냐며 일단 물을 먹여보랜다. 유리컵에 물을 주니 입밖으로 물이 줄줄 나온다. 에그머니!!! 다시 조금씩 먹여보니 서 너 모금 삼킨다.
"가슴 아퍼?" 물어보고 등만 계속 토닥토닥하니 잠들어버렸다.. 자는 거 보며 숨 쉬나 안 쉬나 지켜 봤다. 이런 일 겪고 나니 내 몸이 몸살로 접어든다. 기도로 들어가면 문제인데 다행이 식도로 간 듯....멍청한 할매라며 자책하다. 사탕이기 망정이지 건전지 같은 거였음 어쩔 뻔 했는지...상상만 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손녀키우며 제일 큰 관심은 먹는 거다. 감기로 입맛이 없어 김만 먹는 게 안스러워 볶음밥해주다. 감자가 약간 싹이 나서 신경 쓰였는데 다 도려내고 중심부만 넣고 양파랑 새우 넣고 해주다. 잘 먹는다. 그래도 열 숟가락쯤 먹이고 포기.. 혹시 아기라 쏠라닌 식중독 걸릴까봐...세상에 쉬운 일이 없네.
손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나는 그만큼 늙어간다. 어느 만큼 도와 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데 까진 해봐야지!!
하루를 잘 보내면 일생을 잘 지낸거야...

● 2021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 김상례 (역사모)

 올해는 어떻게 지나갔지?
저는 지금 남편과 단둘이 충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다시 돌아갑니다. 언제부터인지 연말이 되면 남편의 은퇴를 떠올리며 인생 2막을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2021년도 그렇게 시작했는데...
아직도 남편이 치열한 현실 속에 있어서 올해도 그 옆에서 여전히 1막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올해 인생 2막 연착륙을 위해 준비운동을 열심히 했나? 물어보니 대답이 선뜻 안됩니다.
 올해는 딸 둘에 이어 막내 아들까지 독립을 했습니다. 또 충주에 단둘이 살다보니 그동안 아이들에게 향해있던 시간에서 남편과 나에게로, 그리고 온전히 나만을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이 종종 생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다고 뭔가 근사한 걸 해내고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저냥 코로나를 조심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몸은 부지런히 일산, 대전, 충주를 돌아다녔습니다. 명색이 충주살이한다고 충주댐에서 밤낚시도 하고, 미사는 건너뛰면서도 성지는 찾아갔습니다. 주말이면 문경새재를 포함해 하늘길, 종댕이길, 탄금대 등등을 맛난 것 먹어가면서 탐방하고 다녔습니다. 2021년은 이렇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충주댐 물빛과 산을 보면서 자연과 함께 무척 좋았습니다. 그러나 시골(충주가 내게는 시골이다)은 게으른 나와는 너무나 맞지 않습니다. 시골은 부지런이란 놈을 끼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롭습니다.....

2022년은 어떻게 살게 될지 기대해봅니다. 2막을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좀 더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될지..... 나이들면서 걱정보다는 기대하는 것으로 미래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 흥미진진 인생살이 - 박병희(흙마음)
 
 2021년이 시작될 즈음에는 내가 11월 말에 제주도 구좌읍 송당동의 어떤 집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올 한해를 회고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어제부터 갑자기 내 노트북이 고장이 나서 남편의 노트북으로 남편의 책상에서. 한치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더니 살아갈수록 그 말이 와닿는 일이 자주 생긴다. 한치앞도 모르는 인생살이가 예전에는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었는데 이젠 앞날을 모르고 사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아무튼 2월 6일에 남편의 대학 후배에게서 온 카톡으로 시작되어 2 주도 되기 전에 이 집을 사고 4월 하순에 이사했다. 16년 동안인가 제주에서 살았다던 남편의 대학 후배는 지금은 지리산 자락 어디에 있단다. 그이는 2월 초순 우리에게 애월의 어떤 상가주택을 사라고 권유했을 때, 몇 달 후에 본인은 지리산 자락에 가 있을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 주택을 사라고 권했을 때 옥상 테라스 앞에 있는 다락방을 자기에게 달라고 농담처럼 진담처럼 여러 차례 다짐을 받더니...
 운명처럼 제주도민이 된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12월이 하루 남은 오늘도 예쁜 꽃을 피운 나도샤프란을 보면서 여기가 제주임을 실감한다. 백서향이 꽃봉오리를 품고 있고 애기동백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중이다. 핫립세이지는 지칠줄 모르고 꽃을 피워대는데 언제까지 꽃을 피울수 있나 궁금하다.

 대파 이외에는 거의 다 실패해버린 농사도 재밌다. 월동작물로는 마늘, 양파, 대파, 시금치를 좀 심고 완두콩을 많~~~이 심었다. 10월 하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일곱 차례인가 나누어 심은 완두콩은 심은 순서대로 자라는 중이다. 처음 심은 것은 덩굴손을 뻗고 있는데 마지막에 심은 것은 이제 막 싹이 나려고 뿌리를 내리는 중이라 콩이 흙 위로 동그랗게 올라와 있는 것도 있다. 까치같은 새들이 먹을까 봐 하얗게 보이는 콩은 흙으로 살짝 덮어주었다. 내년 봄에는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올해 완두콩 농사를 많이 지었다는 농부에게 물어보고 그물망도 쳐주지 않았는데 덩굴식물인 완두콩이 저희끼리 감고 올라가나? 퇴비도 화학비료도 농약도 없이 그냥 키우는데 제대로 꽃 피워 꼬투리가 많이 달리기나 할까? 그리고....... 내년에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인생살이가 계속될까?

● 장은정(역사모)
 한 해가 지고 있네요... 요새는 나이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자꾸 생각합니다. 일단 오십년 넘게 살면서 신경 써 본 적 없는 관절들이 돌아가면서 아우성입니다.
 설거지 하는데, 엄지 손가락 관절이 이렇게 많이 개입하는지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계속되는 돌밥에 무리가 온 거겠죠. 물리치료에 파라핀요법에...애를 써봅니다.
 밀대로 청소하는데 왜 팔꿈치가 갑자기 아프고, 양치하기도 어려운가요. 체외충격파 치료라는 것도 처음 해봤습니다. 이제 남들이 왜 실비보험 들어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지난 겨울에 하루 산책하고 아파진 무릎은 아직도 자유롭지 않고요. 바닥에 앉기나 양반 다리는 피해가며 조심스레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 한 몸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서글픈데, 부모님 많이 연로해지신 모습도 볼 때마다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엄마 음식 간이 달라진 것도, 아버지가 왜소하고 구부정한 것도 보기 힘들지만, 점점 성마르고 참을성 없어지시는 것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네요.
아, 이렇게 불평과 걱정이 많아지는 것도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일까요.
내년에는 이런 불평도 자유롭게 만나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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