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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이주?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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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1-04-01 20:50 조회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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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이민?
박병희(흙마음)

 어릴 때 하도 잠이 많아서 아버지한테서 잠자는 대회 나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었다. 특히 아침잠이 많아서 대학교 다닐 때는 수강신청 할 때도 되도록 1교시에 수업이 없는지 고려하고 잘 때는 최후의 일각까지 아침 잠시간을 확보하려고 손목시계를 차고 잤었다. 이런 잠꾸러기가 나이가 들면서 신기하게도 아침잠이 줄어 들더니 언젠가부터 일찍 아침밥 차릴 일도 없는데 괜히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일주일 쯤 되었나?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잠이 안 온다.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일어나서 책을 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자러가거나 심하면 내쳐 그냥 하루 일과가 이어지기도 한다. 살아오는 동안 어쩌다 잠을 잘 못 이룰 때가 간혹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잠을 잘 못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에 잠을 못 잤을 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각해보니 ..... 그날 밤에 마음속으로 이사 갈 집에 나무를 이것저것 여기저기에 많이도 심었었다. 그렇구나. 바로 이사 때문이구나!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내가 어찌 제주도로 가서 살 줄 알았을까? 그동안 제주도 얘기가 여러 차례 있었고 땅을 보러 며느리를 포함한 온 가족이 간 적도 있긴 했었다. 가족여행 삼아서. 또 위험부담도 줄이고 일단 살면서 알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아파트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래도 난 제주도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건성으로 동조했지 실은 가족의 의견에 대놓고 반대를 하지는 않는 정도의 차원이었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대놓고 반대를 하기도 했었다 초기에는.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마당에 감나무 심고 텃밭 가꾸면서 살고 싶다.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이다가 얼른 마당에 뛰어나가 풋고추도 따오고 파도 한 뿌리 뽑아서 쫑쫑 썰어 넣고...” 하며 노래를 불러온 걸 주변의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그 시골에 제주도는 없었다.
 그랬는데 2월 6일 토요일에 제주도에서 16년인가 살고 있다는 남편의 대학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애월에 좋은 상가주택이 나왔다고. 제주도 전체 땅값이 다 폭락해도 거기만은 절대로 안전한 곳인데 자기가 사고 싶지만 여력이 안 되는데 그 집이 아까워서 선배님 생각이 났다고. 실은 작년 겨울에 제주도 이주에 대해서 그 후배한테 자문을 받은 적이 있어 나도 한 번 만났었다. 그 때 그 후배는 우리의 제주도 이주에 대해서 강력하게 말렸었다. 성공한 사람도 많지만 기대에 못 미치거나 기후에 적응 못해서 실패한 사람도 많다고. 더구나 우리가 좋아하는 동쪽은 습하고 사람 사는 곳이 못 되며 옛날에는 제주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동쪽 사람들과 혼인도 하지 않았고 여름을 나고 나면 책이 습기에 부풀어서 두툼해지는 곳이라고. 정 가고 싶으면 6개월이나 1 년 정도 살아보고 결정하라고.

 운명인지 그 반대했던 사람의 연락(2월 6일)으로 다시 제주 이주 문제가 시작 되어 집을 사고(2월 18일) 팔고(2월 20일) 이삿날 결정이 딱 2 주일 만에 다 끝났으니 중간에 낀 설 연휴를 빼면 열흘도 안 걸린 셈이다.
 후배 연락 후 바로 제주로 간 날, 주택을 6 곳 봤는데 보기 전부터 그 집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보고 온 이틀 후에 다시 가서 한 번 더 보고 설 연휴 끝나자마자 살고 있는 집이 팔리기도 전에 바로 가서 계약부터 했다. 그러고는 집이 안 팔려 마음 졸이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고 금방 임자가 나타났다.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을 볶았다.

 결혼 후 거의 아파트에서 살았기에 집의 관리에 대해서는 처음 겪을 일이라 마음의 각오는 하지만 주택 살이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또 제주도는 육지에 비해서 물가가 비씨다. 주택이라 난방비 부담도 크다. 하지만 속마음은 기대가 더 큰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면 이러저러한 걱정보다는 나무 심고 텃밭농사 지을 생각에 골몰한 것을 보면.

 평소에 정리를 잘 못하고 청소를 무서워하는지라 집이 엉망이다. 이참에 묵은 짐도 정리하고 버릴 것 버려야 하는데 거의 손도 못 대고 미루고 있다. 좋아하는 게이트볼 치러 나가지도 못하고 요즘은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제주도 이주 건이 다시 생기기 직전에 남편과 같이 방송대에 재입학하게 되었는데(남편은 처음) 이사준비 보다도 당장 중간고사 준비를 해야 해서이다.
 
 아무튼 후반기 내 인생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도 이주는 나의 계획에 없었기에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등 떠밀리듯이 시작되었는데 텃밭이 10평 쯤 있는 아담한 집을 보면서 마음이 열리기 시작해서 구좌읍 송당리 시골 한적한 마을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전생의 고향처럼. 언젠가는 시골로 가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있었으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미루고 살아왔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마냥. 결정을 하고 보니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더 늦기 전에 잘 했다 싶다. 내 나이가 몇인가? 나 자신도 놀라지만 70늙은이 아닌가? 시속에 맞춰 젊은이처럼 옷을 입고 염색으로 하얀 백발을 감추고 사느라 평소에는 자신이 이미 70대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하고 싶은 일, 꼭 해야 할 일을 나중에.... 하면서 미룰 여유가 있는 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더 미적대다가 10년 쯤 후에 시골로 이주를 하려면 심신이 다 더 힘들기도 하겠지만 어느 곳에서 그 누가 80대 노인이 이주해 오는 것을 반기겠는가?

 제주에 가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바다낚시도 하고 싶어서 막내시동생 내외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낚시도구 일체를 인수했다.
돌담에는 수세미를 심어서 올리고 수세미가 많이 달리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선물로도 좋겠지. 며칠 전에 씨앗을 샀는데 미리 화분에 심어 싹을 틔워 두었다가 이사 가면 바로 옮겨 심어야겠다.
돌담 너머에는 좋아하는 음나물 순을 위해서 음나무를 심고 지인에게 씨앗을 받아서 지금 화분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가죽나무(참죽나무)도 심어야지.
돌담 아래에는 목동 동생네 1층 아파트 마당에 있는 머위와 방풍나물 뿌리도 캐 와서 심고.
올 가을에 생강나무 씨앗을 받아 두었다가 화단 한 쪽에 심으면 언젠가는 그 아찔한 꿀 향내를 맡을 수 있겠지.
제주도니까 무화과도 한 그루 쯤은 심어 줘야지.
6년쯤 전인가? 오대산 전나무 숲 바닥에 지천으로 돋아난 전나무 새순을 5개 가져왔는데 아직까지 용케 살아남아 옹색한 화분에서 제 기상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두 그루도 돌담 너머에 심어주면 제 성정대로 거리낌 없이 자랄 테지.
또 그즈음 해마다 제주 한 달 살이 하던 언니가 주워 와서 뭔지도 모르고 심었던 새알 같던 문주란 씨앗이 싹이 나서 5,6년째 화분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 고향땅에 심어주면 더 잘 자라서 향기도 그윽한 꽃을 피우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살구나무를 심고 싶다.


 중 2 국어교과서에 나와서 열네 살 어린 감성을 마구 흔들어 놓았던 그 살구나무 꽃을 내 집 마당에서 보는 호사를 감히 누려보려 한다.
드디어 나의 화양연화는 이제 막 시작되는가 보다.




춘신 (春信)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어떤 이는 창가에서 가까이 보이는 곳에 심어두고 늘 보라고 한다.
그 집은 대지가 크지 않은데다 생긴 것도 길쭉해서 마당이 집의 옆구리에 붙어 있어 창에서는 마당이 보이지도 않는데...
나무를 다른 데다 심어야 하나?
창에서 보이는 좁은 앞마당(마당이랄 것도 없는 통로)에 심어야 하나?
심고 싶은 나무는 많고 마당은 좁으니
나무들이 심기기도 전에 마구 마구 이사를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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