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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충주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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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1-04-30 15:38 조회2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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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살아요 ~

김상례(역사모)

 3월에 충주로 이사를 왔다. 3월 말에 와서 아슬아슬하게 끝나가기 전 벚꽃 비가 내리는 충주호를 봤다. 그리고 지금이 4월 말이니까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충주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 내가 어떻게 충주댁이 되었지?
 그 한 달은 고민할 틈도 없이 충주와 일산을 오가며 먼저 잡힌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다.

 인터넷에서 주섬주섬 읽었던 충주는 고양시 인구 5분의 1 정도인 약 21만 명이다. 올해는 23만 명이 목표라고 하니 지방의 인구 감소가 사실인가 보다.
충주는 신라 시대 중원비가 있는 곳, 우륵의 탄금대가 있는 곳, 충주호가 있는 곳, 사과가 유명한 곳…. 이것이 내가 아는 충주 전부다.
오자마자 충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충주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안내 책자와 지도를 신청해서 받았다.

 사실 나의 충주 생활 시작은 멋진 곳에서의 한 달 살아보기 그런 것이 아니다. 귀농도 귀촌도 아니다. 그저 남편의 발령지가 충주여서 따라와 생활하다 보니 충주살이가 시작되었다.
남들은 나라를 세 번 구해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를 하라며 굳이 남편 따라 충주까지 가는 나를 보고 “사랑쟁이”라는 아름다운 충고를 했다.

내가 굳이 남편을 따라 충주까지 오게 된 것은 아쉬운 상해살이의 미련 때문이다. 누구나 작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계획 했던 일은 무산되고 계획에 없던 일들을 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특히나 그랬다.
 재작년 10월 말 그러니까 코로나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바로 직전에 남편이 상해로 발령이 났다. 상해는 한 번쯤 여행으로라도 가보고 싶었는데 일 년 넘게 살 기회가 와서 너무 좋았다. 상해는 집값이 비싸다. 최고급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그저 그런 아파트 같은 곳의 월세가 삼사백만 원이 넘는 곳이다. 그 집값 비싼 상해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니 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 제대한 아들은 학교에 복학하는 대신에 중국어도 맛볼 겸 상해교통대에 어학연수를 신청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상해를 근거지로 중국 남부여행을 촘촘하게 하자며 신나게 계획을 세웠다. 한비야 처럼은 아니겠지만 제법 재밌게 중국살이를 해볼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상해임시정부, 동방명주, 와이탄, 예원, 난징둥루, 조계지의 골목카페 등등 상해만으로도 볼거리가 넘칠 거라며 신나했다. 상해에서의 멋진 일 년을 꿈꾸며 나는 짐 속에 역사모에서 읽었던 ‘중국인 이야기’ 7권과 초보 중국어, 상해 여행 책자 등을 챙겨 들고 남편에게 갔다. 그러나 꿈은 두 달 만에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모두 기억하겠지만 작년 1월부터 중국은 코로나 19에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한때 우한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날리며 전 세계에서는 우한뿐만 아니라 중국을 봉쇄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초급 중국어 학원을 등록하고, 성당 미사를 보고, 와이탄 등등 관광지를 활보하던 내 생활 반경은 춘절을 전후로 아파트 주변으로 쪼그라들었다. 마스크를 사러 아파트 근처 약국을 찾아다녔고, 2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아들 학교는 무기한으로 연기한다고 통보가 왔다. 결국, 아들은 중국에 들어와 보지도 못했다.
남편과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더 늦기 전에 나만이라도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두 달 만에 나의 상해살이는 끝나버렸다. 중국 상황이 이후 안정되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중국 비자 발급이 중단되고, 비행기를 못 구하고 마지막에는 교민 전세기마저 취소되면서 결국 못 들어가고 일 년이 지나버렸다.
작년 한 해 상해에서 멋진 일 년을 보내려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것들은 코로나 19로 모두 무산되었다. 오히려 나와 남편은 1년 넘게 랜선 부부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올해 3월 남편은 국내로 복귀했고, 2주 자가격리 해제 후에 바로 충주 발령이 났다.
 남편은 다시는 떨어져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얼굴 보고 같이 밥 먹고 얘기하고 싶다고 한다. 반대로 아이들은 더는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큰애와 셋째는 직장과 학업 때문에 대전에 있고, 둘째는 직장생활 이후 독립 만세를 주구장창 외쳐댄다. 내가 충주로 오면 둘째는 자연스럽게 일산집에서 강제 독립이 되니 너무나 좋아한다.

 지금 우리 식구들 생활 터전이 일산, 대전, 충주다. 이 중에서 나를 원하는 곳은 충주에 있는 남편 뿐이다. 이렇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충주댁으로 살아가라고 등 떠밀려 온 것이다.
 둘째는 엄마를 위한 것인지 본인의 독립을 기념하는지 모를 모호한 정체의 커다란 수국 두 송이를 충주집으로 택배를 보냈다. 이렇게 수국과 함께 나의 충주 생활은 시작되었다.

 이제 충주에 온 지 한 달이다. 얼마나 있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올 연말이면 어디에 있게 될지 나도 모른다. 야무진 계획도 모두 틀어지는데 미래를 어찌 알겠는가? 다만 남편과 함께 지내기로 했으니 이번에는 충주에 근거지를 두고 여기저기 다녀봐야겠다.
 
 충주의 종댕이길, 요즘 핫하다는 게으른 악어, 탄광을 개조한 환선동굴, 제천의 베론성지…. 청풍명월이 근처이니 이번에는 자연을 제법 만나게 될 거 같다.
조용히 충주댁으로 잘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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