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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40년만의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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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2-10-31 15:04 조회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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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년 만의 출근
박병희(역사모)
 
 난 알고 보니 수다쟁이인가 보다. 작년 4월 하순에 제주도 이주를 앞두고 시작한 블로그 글이 61 꼭지이다. 헤아려보니 평균 8일에 한 번씩 올린 셈이니 수다쟁이 맞다.

 그랬는데 블로그 글은 9월 초에 올린 것을 끝으로 거의 두 달 동안 중단된 상태다. 내 블로그 글을 기다리던 친척 한 분은 글이 올라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안 올라오나 하셨단다. 그동안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자연히 글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는? 내가 40년 하고도 7개월 만에 출근을 하게 되어서이다. 말이 출근이지 상근은 물론 아니다. 일단 주 5일 출근할 체력이 안 된다. 출근이라야 달랑 주 2일이고 마지막 주만 3일인데, 그것도 오전 근무인데도 블로그 글 하나 못쓰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하다.

 그럴 수 밖에........ 지난 세기, 1981년 12 월에 큰 아이를 낳고 1982 년 2월 초에 퇴직을 할 때까지는 컴퓨터가 학교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말 성적 처리를 할 때면 으레 주판을 동원해야 해서 책상 속에는 언제나 주판이 들어있었다. 덧셈이 잘 안 되어서 몇 차례씩 틀릴 때면 서무실의 나랑 동갑인 여직원에게 부탁했던 기억도 있다.

 거의 반세기 만에 출근을 하고 보니 완전히 딴 세상이다. 출근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이다. 분 단위로 시간이 나오는 본인의 사진을 사무실을 배경으로 찍어 올려야 하니 얄짤없다. 일찍 출근해서 숲을 모니터링 하다가 깜박 시간을 놓치면 핑계 같아서 곤란해진다. 일 때문에 소요되는 시간은 주 2, 3 회 4 시간 반씩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나의 서툰 컴퓨터 실력이다. 능숙한 사람이면 금방 하고 말 것을 나는 한참씩 매달려야 한다. 또 11월까지 잠깐 하고 말 일이지만 직무교육을 20시간 이상 받아야 해서 하루는 먼 교육장까지 가서 엉덩이가 배기도록 7시간을 앉아 있었고 나머지 온라인 교육도 받는 중이다. 유아숲지도사 자격을 따고도 유아 관련 일은 거의 하지 않아서 유아를 다루는 일이 나는 통 자신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두게 된 분을 대신하여 내가 들어간 곳은 내가 보기에 아주 수준이 높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주 간격으로 프로그램이 바뀌는데 각자가 주제에 맞는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하고 유아숲체험원 별로 상의해서 통일된 프로그램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 프로그램이 끝나면 자신이 실행한 프로그램의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그 사후 시나리오 작업은 본인의 수업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능력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제때에 하지 않아서 밀리니 시간 걸리는 점이 부담이다. 그사이에 따로 의뢰가 들어온 숲해설 때문에 답사도 몇 차례나 가야 했다. 또 농사일은 때를 놓치면 안 되니까 틈틈이 밭일도 해야 하고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아침마다 남편이랑 같이 동네 게이트볼장에 간다.

 이제 모레는 11월이니 새 프로그램을 숙지해야 한다. 어제는 11월의 빠지게 되는 수업 대신에 먼 곳으로 숲해설을 다녀오는 길에 표선도서관에 들러서 새 프로그램에서 쓸 그림동화책을 빌려왔다. 안 하던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까 끝날 날이 기다려진다. 이렇게 애써서 통장에 들어온 몇 십만원의 임금을 보니 먹고사는 일의 엄중함이 절실히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근로자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구나....그동안 나는 너무 편히 살았고 남편만 고생했구나 싶기도 하다. 이제 매번 해야하는 몇 가지 활동, 만날 때 인사, 숲체조, 숲호흡, 헤어질 때 하는 인사 등의 동작과 노래가 좀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한꺼번에 네 가지를 외우느라 출근하는 차 안에서도 연습을 하곤 했다. 남은 한 달은 몇 회 되지도 않아서 부담이 적다. 끝나고 나면 홀가분하면서 아쉽기도 할 것 같다. 유아를 잘 다루지도 못하는데 이 나이에 나를 불러준 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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