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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농사가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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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22-06-01 13:56 조회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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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취미
박병희(역사모)
 
 중학교 때 즈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집에 현대한국문학전집인가 그 비슷한 전집이 있었다. 그 전집에서 읽은 소설 중에 한 가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50년도 더 된 일이라 작가도, 소설 제목도 잊어버렸지만 내용은 몇 장면이 흑백사진처럼 남아있다. 장편은 아니었고 중편 아니면 단편이었는데 젊은 부부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열심히 땅을 일구고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깊은 산속으로 찾아 들어가게 된 사연은 기억나지 않고 뜨거운 햇살을 등에 받으며 턱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게 일하는 장면.....아무도 없는 산속이라 개울에서 발가벗고 목욕을 하고는 부끄러워하는 각시를 등에 업고 가는 장면.... 등등. 숲을 개간해서 밭을 만들고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생활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요즈음 누군가가 내 직업을 물으면 농부라고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닌가? 그럼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농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생활은 맞는 것 같다. 다른 취미도 몇 가지 있긴 하지만 거의 매일 몇 시간씩 질리지도 않게 밭일을 하고 있으니. 200평 정도 되는 밭을 남편과 둘이서 씨름을 하고 있다. 일산과 서울에 살 때는 주말농장에서 5평, 많으면 10평씩 짓다가 200평은 너무 크다. 반 만 해도 충분히 크다. 작년에는 6월에 잡초가 무릎위로 자라있는 땅을 받아서 잡초와 씨름을 해봤기에 늦가을에 완두콩을 50평도 넘게 심었다. 완두콩이 자라면 다른 잡초들이 못자라겠지 하고서. 그랬는데 완두콩과 같이 싹이 나서 자라던 풀들이 완두콩과 같이 월동을 하고서 완두콩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자라서 완두콩이 햇빛을 못 볼 지경이 되었다. 풀을 매줄 시기를 지났기에 완두콩이 햇빛을 보게 해주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완두콩밭의 풀을 다 매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콩의 잎과 줄기가 누렇게 말라버렸다. 가물어서 마른 것인지... 익은 것인지... 두 가지가 겹친 것인지....

 한 열흘 전부터 완두콩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수확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콩이 전체가 한꺼번에 익는 게 아니라서 익은 것만 골라서 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익은 꼬투리를 따는 것도 힘들었다. 꼬투리가 붙은 가지를 꼭 잡고서 힘껏 당겨야 했다. 집에 와서는 꼬투리를 까야 했다. 꼬투리 따기도 힘들고 까기도 힘들다니.... 이건 그냥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게다가 남편은 안 도와준다. 남편은 나의 중장비다. 삽질만 한다. 그리고 퇴비라던지 물통이라던지 무거운 것만 날라준다. 콩 따고 콩 까고 이런 자잘한 일은 안 한다. 중장비니까. 밭에 나 있는 풀을 좀 뽑아달라고 부탁을 하면 삽을 가지고 덤빈다. 풀을 뽑는 데는 호미가 훨씬 효과적인데 호미자루는 잡는 것을 못 봤다. 다호가이니까. 나는 안 그래도 관절이 부실한데 매일 몇 시간씩 손을 쓰니 오른쪽 2번, 1번, 3번 순서로 손가락이 아프다. 어제는 남편에게 콩을 같이 좀 까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왜 그렇게 많이 심었냐고.... 갖다 버리란다. 며칠 해보면서 요령이 생겨서 풋콩만 까고 이미 익은 것은 그냥 말린다. 거실로 방으로 온통 콩꼬투리 천지다. 이렇게 말리면 어떻게 콩을 쉽게 잘 털어낼지 이제 주변의 마을분들에게 배워야한다.
 
 
작년 10월 하순부터 11월 중순까지 7 차례에 걸쳐서 완두콩을 심고 봄이 되자 콩밭의 풀 뽑느라 또 콩 수확하느라 바쁘다. 이렇게 수고를 해서 완두콩을 수확해도 그 향기롭고 예쁜 초록색 완두콩을 나눠 먹을 형제자매들이 멀리 있으니 안타깝다. 이웃 몇 집에 나누고 또 아침마다 나가는 게이트볼 회원들에게 드리려 가져갔다. 열 분에게 드리려 가져갔더니 두 분은 집에서 보리콩(제주도에서는 보리와 작기가 같아서 보리콩이라 부른다) 농사지어서 많다고 안 받으셨다. 
 제일 많이 심은 것이 완두콩이었고 양파도 처음으로 심어보았다. 양파도 마늘도 너무 크기가 작지만 양파가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얼마 전부터 동그란 양파 바로 위의 부분이 꺾이면서 줄기가 땅에 누워버린 것이 많다. 왜 그런지... 이것도 알아봐야 한다. 밭의 한 쪽에는 후박나무가 있는데 그 아래쪽에는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는 곰취밭을 만들었다. 여기저기 나 있는 쑥을 캐와서 아예 한쪽에 쑥밭을 만들었다. 방풍나물 밭도 만들고 부추 밭도 만들었다. 꽃차를 만든다는 금화규 밭도 만들었다. 금화규는 워낙 크게 자라서 주말농장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꽃이다. 또 아스파라거스 밭도 만들려고 한다. 그 또한 키도 크고 자리를 워낙 차지해서 못 키워봤던 작물이다. 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심을 수 있어서 흡족하다.

  농사일하고 와서 손을 씻을 때면 고민이 된다. 안 그래도 못생긴 손이 더욱 거칠어지고 손톱 밑에는 검은 흙 때까지 끼어서 내가 봐도 부끄럽다. 문제는 거칠고 미운 모습이 아니다. 이 아픈 손가락으로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이러다가 밥도 못 해먹을 지경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내년에는 아니지 이번 가을에는 완두콩을 조금만 심어야겠다. 콩꼬투리 까는 일이 재미가 있을 만큼만. 향기로운 완두 풋콩을 기왕 이웃 외에는 나누어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손을 잘 보전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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