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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나눔 | 오키나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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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회 작성일17-02-03 17:04 조회8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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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기

                                                      전 은 경(역사모)

 지난 1월 8일(일)부터 12일(목)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참교육 회원 9명(이현숙,김인숙,박이선,황명숙,한경희,김희정,박선경,이효영,나)은 어느 책의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니라”고 표현을 한 바로 그곳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벌써 열흘이 후딱 지나가고 여행기를 쓰려니 언제 거기 다녀온 적이 있었던가 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후기를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상 20도의 오키나와에 푹 빠져 허구한 날 밴드에 사진 올리고 댓글 달고 하던 때 후딱 써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영하 10도의 온도에 완전히 적응한 지금은 시간의 반추에 어려움을 느낀다.
 
 첫째날, 우리 9명은 설레는 마음으로 8일 오전 9시 인천공항에 칼같이 모였다. 공항은 이른 아침임에도 몹시 붐볐고, 우린 박이선 씨의 안내로 일사분란하게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쇼핑을 제법 할 정도의 시간도 확보했다. 물론 우리를 위해 모닝 샌드위치를 싸왔던 봉지를 잃은 김희정씨가 난감해 했고, 새로 개발된 최신 앱으로 여행자보험을 들어볼까 하던 나도 제대로 되지 않아 종종거리긴 했지만, 짧은 시간에 원상회복이 되었기에 무난한 출정식이었다 할 수 있다. 다만 한경희 씨가 전날 탈이나 연신 식은  땀을 흘리며 몹시 힘들어 했고, 그 때문에 다들 염려하기는 했다.

 오키나와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두 시간으로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평소 두 서너 배의 에너지를 썼기에 식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쥬스나 너트 정도는 기대했지만 저가항공은 ‘역쉬’ 찬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황명숙씨는 목이 말라 석 잔, 난 배가 고파 두 잔을 청해 마셨다. 모처럼 황명숙씨를 만나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오키나와다. 주관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시간이 흘렀다. 오키나와는 들뜬 우리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잿빛 하늘에 바람도 제법 불고 약간 을씨년스러웠다.
 
 
 화려하고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던 출발지 인천공항과는 대조적으로 소박하고 꼼꼼한 느낌의 오키나와 공항에서 우리는 렌터카 회사 직원의 안내로 렌터카가 있는 장소까지 이동, 몇 가지 수속을 마치고 두 대의 차로 나하의 숙소로 향했다. 야자나무가 즐비하고, 훈훈한 훈풍에 남국 특유의 컬러풀한 풀빌라 들이 줄지어 늘어선 풍경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시멘트 민낯이 그대로 들어나는 무채색의 내력을 알 수 없는 맥락 없는 건축물들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오키나와는 여행 전의 기대와 그 배반이 되풀이 되는 과정이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사람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미리 준비해간 국제면허증을 활용해야 할 시간, 첫 운전자는 박이선씨와 황명숙씨로 결정되었다. 박이선씨 곁에서 나는 조수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렌터카 직원이 켜준 한국어 내비의 ‘비스듬히 돌아서’ 같은 표현도 어색했지만, 화면도 보던 것과 달라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 익숙하기 위해 틀림없이 연습을 했을 터인데 박이선 씨는 바로 ‘화~악’ 도로로 진입하였다.
 우측통행이 좌측통행으로 바뀐 것을 머릿속으로 예행연습 했지만 그게 초반에는 만만치 않았다. 우회전도 쉽지 않았고, 핸들 주변의 것들도 반대여서 좌회전 신호를 넣는다고 하면서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한 동안 그야말로 ‘난리 브루스’다. 더군다나 일방통행 길도 초행길인지라 진행방향을 식별할 수 없어 난감했다. 본의 아니게 역주행도 하고 수시로 와이퍼도 작동시키며, 그 와중에 내비는 끊임없이 ‘비스듬히 돌아’를 연발했다.(ㅋㅋㅋ) 아무튼 그래도 우린 우여곡절 끝에 아무 사고 없이 호텔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첫 운전자인 박이선씨와 황명숙씨의 공로다.

 호텔 도착이 거의 오후 네 시 무렵이니 이른 아침 간단하게 조반을 먹고 나선 우리는 아사 직전이었다. 저녁식사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점심을 안 먹을 수도 없어서 우왕좌왕 배회하다 결국에는 백화점 지하식당가에 가서 돈부리, 여주볶음, 가지볶음, 소바 등등 이것저것 시켜서 허겁지겁 먹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먹은 돈부리가 가장 맛있었다고 하는 이가 꽤 있었다. 한경희 씨는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아 가지고 온 호박죽 파우치만 만지작거리며 거의 먹지 못하고 국물만 조금 떠먹을 뿐이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한국에서 시차를 두고 출발한 이효영씨로부터 근처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박이선씨가 효영 씨를 근처 모노레일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식사 도중 일어서고, 이를 가만 보지 못한 황명숙 씨가 따라 일어선다. 우리는 미안하기는 했지만, 대신 가겠다고 나서지도 못하고, 두 사람을 엉거주춤 보내고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뒤늦게 자초지종을 들으니 서로 역 방향을 반대로 이해하여 한참을 기다리고 헤매다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하튼 호텔에서 각자 짐정리를 하고, 3인실 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여행 일정도 확인하고, 저녁 굶은 효영 씨는 컵라면을 먹고, 생맥주도 한 잔 하며 유난히 긴 첫날을 마쳤다.

1/8 -인천-나하 공항, 차량 렌트
1/9 - 츄라우리수조관,비세후쿠키 가로수길, 나키진성터, 사키마미술관 /자유여행
1/10 - 만좌모, 류쿠무라,자키미성터,요미탄도자기마을,잔파미사키/버스단독투어
1/11 - 슈리성, 우미카지테라스,평화기념공원,미바루비치,치넨미사키/버스단독투어
1/12 - 현립박물관,쓰보야도자기거리,헤이와도리시장,귀국/자유여행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황수경 씨가 운영하는 파주 ‘평화를 품은 집’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 관련 강의를 들은 다음 오키나와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해 들었다. 이번 여행일정의 초안은 오키나와 여행을 미리 다녀온 마담 P의 부군과 장남의 경험담과 책을 통해 마담 P가 개략적인 일정을 짜고, 그 초안에 다른 분들의 의견을 가감하여 정해진 걸로 안다. 그리고 주제도 아마‘평화 답사’뭐 이런 거였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 참가 전에 집안의 우환으로 여행 자체에 죄스러운 마음이 있어 출발 일주일 전까진 거의 의식적으로 여행을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그저 예비모임을 통해 책도 소개받고, 여행 코앞에 오키나와 역사책 한 권과 여행서 한 권을 주마간산 식으로 훑은 게 고작이다.

 역사책을 보니 오키나와는 16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시아의 하와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과거 중국과 대만, 조선과 일본 본토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던 류쿠왕국이라고 하는 하나의 독립국이었다. 그러다 16세기 말 ‘조선 침략을 지원하라’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거절한 것을 빌미로 일본 본토 사쓰마번의 침략을 받았고,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79년 일본의 한 현으로 편입되었다 한다. 그후 2차 세계대전 때 전쟁에서 유일하게 ‘직접적인 지상전’을 겪은, 일본 본토의 총알받이로 동원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키나와인들이 미군과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징용당한 우리 조선인도 상당수 사망했다고 한다. 일본이 패망한 뒤로는 27년 동안이나 미군의 통치를 받다, 1972년이 되서야 일본의 영토로 다시 귀속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남아있어 토지 불법 이용이나 문화적, 정치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오키나와 인들은 여전히 스스로의 역사를 잊지 않고 미국과 일본 본토를 상대로 투쟁중이라 한다. 그래서 오키나와인은 스스로를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행일정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지식도 없었으니 무슨 의견이나 이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나에게는 이국적인 풍광과 따뜻한 날씨와 열대과일에 대한 기대만으로 출발한 여행이었다.

 둘째 날 오키나와 북쪽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츄라우미 수족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이번 여행일정에서 가장 엔터테인먼트적인 장소인데다 나는 수족관 구경을 좋아해 내심 가장 기대한 곳이었다. 홍콩, 여수, 강남 수족관도 재미있게 본 나로선 세계 두 번째라니!! 게다가 사랑이가 다녀간 걸 TV에서 본 기억도 있다.
초반 크고 작은 수족관에 있는 신기한 어류나 생물은 진짜 다른 수족관에 비해 훨씬 진기하고 재밌었다. 우리는 어린아이 같은 눈망울과 호기심으로 진짜 다들 “우~와”를 연발하며 관람했다. 더욱이 대형 수족관 앞에선 그 규모와 신기한 어류들의 유영하는 모습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감탄했다. 오후 일정에 쫒기어 서둘러 퇴장하려다 잠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수족관 위를 탐방하지만 않았다면 수족관을 아마도 원더랜드의 하나쯤으로 영원히 생각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형수족관을 위에서 내려다 본 인상은 옛날 시장에서 투명 비닐봉지에 금붕어 한두 마리를 사올 때 느꼈던, 꼭 기쁨만이 전부는 아니었던,  감춰둔 ‘미안함’ 또는 ‘씁쓸함’을 그대로 다시 느끼게 했다. 위에서 본 수족관은 그저 거대한 비닐봉지에 물고기들을 담아놓은 초라한 구조로 아래서 볼록거울을 통해 보던 수족관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그 광경을 보자 앞으로 내 평생 수족관을 그리 순진한 마음으로 감탄해하며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니 대형 수족관은 이제 다시 보고 싶지 않게 되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또 다시 느낀 기대와 배반이었다. 해변가의 춥고 시린 바람을 맞으며 애쓰는 돌고래들의 쇼를 관람하고 우리는 서둘러 해변의 유명한 가로수 길로 발길을 옯겼다.
 
 비세 후쿠키 가로수길은 오키나와 선조들이 해변가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후대를 위해 3, 4백 년 계획으로 후쿠키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조성한 곳이라 한다. 이곳은 어른 키의 서너 배는 되는 후쿠키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데 얼마나 오밀조밀하고 호젓한지 해안가 바로 옆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세찬 바람이 부는 바로 옆 해안가에서도 일단 이곳에 들어서기만 하면 잔잔하고 고요해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열악한 환경도 열심히 궁리하면 시간은 걸릴지 몰라도 해결책은 꼭 있기 마련인 것 같다. 그들의 지혜로움과 끈기가 감탄스러웠고, 김인숙 씨는 개인적으로 이곳이 가장 좋았다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모처럼 바다 바람으로부터 해방되어 사진을 가장 많이 찍고 남길 수 있었고, 사진의 결과도 최상이었다.

 러시아워의 나하의 시내 운전, 오버타임으로 인한 추가요금이 신경 쓰이는 중년의 우리는 서둘러 중부의 사키마미술관으로 향했다. 사키마 미술관의 첫 인상도 잿빛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하늘도 먹구름이었고 비도 약간 흩뿌렸다. 사키마 미술관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후텐마 미군 공군기지에 접해 있었다. 관장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미군기지로 수용되면서 받은 돈으로 미술작품을 구입하여 미술관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오키나와와 아시아에 대한 침략사실을 잊고 있는 그 불감증을 깨우기 위해, 또한 전쟁으로 인한 여러 모순들을 예술을 통해 고발하고자 한다는 미술관 설립 취지를 들으니, 그날 본 전시의 주제들이 왜 그렇게 전쟁, 평화, 죽음 등 참혹한 내용들 일색이었는지 충분이 공감이 갔다. 전시를 보는 내내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과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불연속적으로 오버랩이 되었다. 민간인들의 학살 장면이 너무 생생해서 가슴이 먹먹했다. 사키마 미술관 일정은 오키나와를 이해하는 ‘신의 한 수’ 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미술관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조급함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 이후 이번 여행에서 마담 P를 가장 땀나게 한 렌터카 반납과, 이것의 연장선에 있는 늦은 저녁 허기진 식욕을 달래기 위해 두 팀으로 나눠 저녁식사를 한 에피소드는 다른 기회에 들려주어야겠다. 아무튼 마담P는 끼니를 제때에 공급하지 않으면 급격히 혈당이 떨어져 다음부터는 곁에서 ‘꼬오옥’ 간식을 챙겨야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키나와에 가면 천엔 하는 스테이크는 가능한 먹어보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사실은 말해줄 수 있겠다. 아무튼 둘째 날 운전한 분들은 정말 용감했고 일본 운전에 완전히 적응되었지만 차량은 반납해야 했다.^^

셋째, 넷째 날은 가이드를 동반한 여행사 버스단독투어로 오키나와 중남부 관광이었다. 우리가 자유여행한 둘째 날에 비하면 당연히 마음은 편안하고 신경 쓸 일은 많지 않은 ‘타고’, ’내리고’, ’듣고’ 하면 되겠구나 하고 기대했다. 결론적으로는 ‘타고 내리면’ 되기는 했지만 ‘듣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튼 미숙하고 비우호적인 태도로 일관한 가이드 때문에 일정의 차질도 있었고,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지식 서로 공유하고, 우리끼리 사진 찍고 우리끼리 똘똘 뭉쳐 하나도 모자람 없이 여행을 즐기긴 했다. 여행 후 차분하게 여행사를 상대로 문제점을 알리고 ,개선점을 정리해 보내고, 사과문을 받고, 가이드 재교육에 대한 약속을 받는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우리가 누군가 말이다.!! ㅋㅋ

 오키나와에는 구스쿠(오키나와 말로 ‘성'을 의미) 유적과 류쿠왕국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여러 곳 있는데, 그중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슈리 성과 나키진 성터, 자키미 성터를 둘러보았다.
슈리는 나하의 옛 이름이다. 과거 류쿠왕국의 외교와 문화 중심인 ‘슈리 성’은 태평양전쟁 때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지금은 거의 복구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아침 일찍부터 입구에 관광객이 많다. 성의 건물은 내 관점에서는 중국풍을 기본으로 약간의 일본식이 혼합된 퓨전 식 건물인 듯했다. 아담한 성의 내부를 들어서면 오른쪽 정전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따라 신발을 벗고 건물 내부를 따라 류쿠 특유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와의 교역이 활발했다는 것을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칠기, 도기, 악기 등을 보다보면 우리와 유사한 구석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정전 가운데 있는 작은 석회암 정원의 바닥이 산호로 깔려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이국적이기도 해서, 햇볕 잘 드는 마루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햇살을 쬐며 기념사진을 찍던 때가 벌써 그립다. 슈리 성 사진 등을 밴드에 올리니 황명숙 씨가 “왜 이 사진들을 보면 짠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남의 나라인데”라고 한다. 류쿠의 역사를 좀 알고 나니 그런 것 아니겠나 싶어 공감했다.

 북쪽의 큰 성이었던 나키진 성터와 중부의 자키미 성터는 둘 다 아름다운 곡선미와 견고한 축성 기술을 뽐내는 호젓하면서도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성 내부에 들어서면 사방이 돌 벽으로 둘러싸여 아담하기가 그지없다. 특히 나키진 성터는 오르는 길 좌우가 벚꽃과 매화가 쭉 늘어서 있어 개화기인 1, 2월경에 방문하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매화가 피는 곳이라 그런지 성벽 안쪽에 들어서면 정말 햇살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여행한 일주일 뒤 쯤 그곳에 간 남편 친구가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카톡으로 알려준다. 아쉽다. 그래도 우리는 때마침 떡의 날을 기념하여 성터 입구에서 우리나라와 똑같이 떡메로 치는 인절미에 세 가지 고물(단팥, 콩가루, 무즙)을 버무린 떡을 줄서서 맛볼 수 있었다. 무즙에 버무린 인절미 맛은 아주 묘한 맛이었다.

 만 명이 둘러앉아도 넉넉하다는 만좌모나 잔바 미사키, 치넨 미사키 등은 우리가 곶이라 부르는 해안 절경들을 구경하는 곳이다. 류쿠 석회암 해안 절벽도 절경이지만 시원한 바다 전망을 볼 수 있어 아무리 보고 섰어도 지루하진 않을 풍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들을 ‘어마 무시한’ 바닷바람에 쫓기듯 서둘러 다녔던 것 같다. 바람이 머리를 흩뜨려 놓아 사진촬영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 중 누구는 공중부양 성공해 아직도 땅으로 내려오지 못했다는 전설도 있다.ㅋ
잠깐이었지만 가이드를 달래주려 ‘글래스 보트’를 타러 미바루비치에도 들렸다. 에머랄드빛 바다 경관도 가관이었지만 모처럼 바닷바람이 불지 않아 이런저런 사진을 많이 남긴 곳이었다. 그래서 황 작가님의 멋진 사진작품이 탄생되기도 했다. 쪽배 수준의 ‘글래스 보트’를 타며 우리가 터뜨린 감탄사를 남들이 들었다면 틀림없이 타이태닉 호 쯤을 타고 있었을 거라 상상했을 거 같다. 따뜻한 계절이었다면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겠다 싶은 아쉬움이 남는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평화기념공원은 동아시아 평화를 애기할 때 왜 오키나와가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십만이 희생된 최대의 격전지에 공원이 세워져 있다. 징용된 한국 국적 조선인 231명과 북한 국적의 조선인 82명의 위령비도 있었다. 공원 가운데 있는 조형물도 그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아마 일반 관광객들은 거의 들리지 않는 코스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 날 둘러 본 현립 박물관은 그 나름대로 과거와 현재의 오키나와를 더 자세히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곳이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오키나와가 왜 동아시아 평화 담론의 중심축이 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여행이 되었고, 거기에 약간의 쇼핑과 먹거리가 곁들인 답사 여행을 한 느낌이다. 물론 그래도 유명하다는 ‘**선크림’과 ‘***폼크린징’을 싼값에 사기 위해 ‘돈키호테’와 근처 재래시장을 아침저녁으로 쥐방굴이처럼 드나들긴 했다. 나하 시내의 국제거리를 수도 없이 왕복하면서 아이쇼핑도 충분히 했다. 유명한 블루씰 아이스크림도 골고루 맛봤다. 평균연령 50이상인 우리들이 일상을 잊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기 위해 네이버와 구글을 얼마나 열심히 두드렸는지. ㅋㅋ
“모든 게 제 때가 있다”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공감이 간다. 우리는 이제 좀 쉬고 놀 때 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보내준 신년카드처럼 “이제 아이들은 알아서 잘 커가라 하고 우리는 내년에도 잘 뭉쳐 놉시다”라는 말에 백 번 공감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20년 이상 알고 지내던 오랜 지인들이지만 또 새로운 모습도 많이 알게 되었다. 뒤늦게 성공적인 자아실현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황명숙 씨는 여행을 앞두고 지난번 터키 여행 때의 장미련 씨와 이순정 씨의 빈 공백을 어쩌나 하는 우리의 걱정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가이드에 식물 설명에 멋진 작품사진까지 그의 에너지와 활기와 순수한 유머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돌아오자마자 밴드에 오키나와 에피소드 일본의 렌트카, 음식점 순례, 쇼핑 등 맛깔 나는 사진과 글을 올려주는 김인숙 씨의 작가정신도 여행이 거듭 될 때마다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이다. 처음으로 여행을 같이한 한경희 씨는 이번 여행을 통해 굳게 닫혀 있었던 스마트 기기에 드디어 입문하시기로 마음을 고쳐먹으신 듯하다. 밴드에 오키나와 유감이라는 글을 올려 주시어 우리 모두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니들하고 여행 오길 너무 잘했다고 우리를 치켜세워준 막내 이효영 씨도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박이선 씨에겐 중간 중간 간식을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김희정씨가 누군가에게 가장 편안하고 친절한 룸메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박선경 씨의 ‘쿨함’에 새삼 감탄했고 왕언니인 이현숙 씨도 가끔 자괴감에 빠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동질감을 느껴 반가웠다.

우리 모두는 오키나와 여행의 아롱이 다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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