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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 교육부 교권강화 고시안 규탄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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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부 작성일23-08-28 16:19 조회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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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서]

교육부는 청소년과 교사 더 이상 아무도 죽이지 말라!
학생과 교사 인권 그 무엇도 퇴보해서는 안 된다.
고시안 전면 재검토하라!


“학부모가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하였다고 판단하면 해당 유아를 퇴학시킬 수 있다.” 어제(17일) 교육부가 발표한 ‘유치원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 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겨우 5년,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영유아에게 공동체로부터 박탈을 경험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교육부로부터, 교육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할지라도 고시안에는 퇴학조치에 대한 이의제기나 구제절차가 없다. 어른들의 분쟁에 유아가 볼모가 되고 희생양이 되었다. 2016년 273명, 2017년 254명, 2018년 300명, 2019년 298명, 2020년 315명, 2021년 338명,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박탈한 채 자살한 17세 미만 청소년의 숫자다. 세상에 손 내밀어도 세상과 연결될 수 없던 어린 생명들의 절망의 숫자다. 17세 미만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세월호 참사가 있던 2014년을 제외하고 지난 10년간 자살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학교 밖 청소년도 있겠으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의무교육이고, 고등학교가 무상교육이라는 점에서 청소년이 학교를 이탈하는 데에 학교와 교육부의 책임은 막중하다.

우리는 최근 몰아치는 교권 강화방안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교사의 인권과 학생의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의 인권이 또 다른 누군가의 인권을 밟고서야 성립한다면 학교는 필요 없다. 나의 인권을 위해 타인의 인권을 훼손해도 된다는 것을 영유아시기부터 경험해야 하는 곳이 학교라면 이 나라의 학교교육은 희망이 없다.

학교현장에서 아동학대를 하는 교사가 전체교사 중 극히 일부이듯이, 교사의 교육활동에 지장을 주는 행위를 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극히 일부다. 그런데도 학생과 학부모가 죄인이고 예비 가해자가 되는 분위기를 누구보다 교육부가 주도하고 있다. 상황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 왜곡된 해법을 만들고 있다.


교사와 학생은 동반자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은 상충하는 것이 아닌 동지적 관계다. 교육 여건의 개선을 통해서 함께 보호되고 증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문제가 되는 ‘수업방해행위’의 상당수는 교실 밖으로 퇴출이 아닌 학급당 학생수의 축소를 통해서 통제될 수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교원감축안을 내놓고, 정부는 유초중등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축소시켜 놓은 뒤 돈 한 푼 쓰지 않고 학생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오늘 학교 문제의 대부분은 국가가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다.


아동학대 면책은 발상부터 반교육적이다.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아동학대 면책’ 요구는 교사들이 아동학대를 용인해달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동학대 신고가 남발되고, 비록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결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힘들다는 말이다. 반면 학부모들 대부분은 교사의 교육방법을 수정해 달라는 것이지 교사에 대한 아동복지법 상의 형사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는 교사의 교육 방법에 대해 이의제기할 수단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특수교육대상자를 지도하는 교원은 학생 자신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특수교육대상자에게 보호장구를 착용하도록 할 수 있다.'는 고시안은 아동의 행동을 제지하는 행위 자체가 아동학대인 점에서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지원 논의 없이 행동을 제지하는 방법이 담긴 교육부 고시안은 교육주체 간의 합의 없이는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른바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아동학대 면책’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교육활동의 정당성을 판정받는 절차를 거치는 동안 교사가 겪는 어려움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학부모 악성민원의 핵심은 즉시신고와 즉시분리다. 이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와 절차) 2항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법률 개정은 면책이 아니라 이 절차를 개정하면 될 일이다. 교사의 교육행위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를 만들고, 그 판단과 결정을 사법절차가 아닌 교원, 학부모 등 교육주체가 모여서 교육적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원인보다 현상에 집중하는 대증요법은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는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통용되었던 언어와 수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시가 내어놓은 기준을 보면 ‘건전한 학교생활 문화 조성을 위한 용모 및 복장’, ’건전한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처럼 추상적이고 자의적이며, 전근대적이다. 또, 이미 국가인권위에서 양심의 자유 침해로 지적했고, 교육현장에서도 내면의 성찰이 아닌 의미없는 노동으로 인식되는 ’반성문‘까지 다시 소환해 냈다.

이른바 ’수업방해 학생‘을 격리시키는 것은 현상에 대한 대응이다. 교실에서 내쫓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우선 격리된 학생을 보호할 인력과 장소 마련, 격리 후 해당 학생에 대한 상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을 줄여나가는 방안 마련 등 현상에 대한 대증요법이 아닌 원인 해소가 더 중요하다. 여기에는 재정과 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부분을 애써 외면하면서 ’문제학생’에 대한 통제만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적인 치료 없는 대증요법은 병을 더 키울 수 있다.


교사와 학부모가 협력하는 학교교육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문제는 교사외 학부모가 서로 터놓고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해야 하는 동반자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담을 쌓는 방식보다는 학부모가 학교참여를 더 활발하게 하는 것이 낫다. 학교에 건전한 교육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일부 학부모의 행동은 그 속에서 제어되고 순화될 수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교사는 ‘학교장의 명에 따라 학생을 교육’해야 하는 말단 공무원이었고, 학부모는 말없이 비용을 부담하는 존재였으며, 학생은 일방적인 교육의 대상일 뿐이었다. 억압적 체제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주체가 아닌 객체였다.

1980년대 말부터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1998년 교육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는 ’교육의 당사자‘, 즉 교육주체의 지위에 올라섰다. 교육기본법은 교사의 전문성이 존중되고, 학부모는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생이 인권은 보호받는다고 선언했다. 사회민주화가 교육민주화를 가져왔다.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강화와 학부모 사이 소통강화, 학부모가 학교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해서 학교에 서로 협력하는 교육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해로운 세균을 살균제로 박멸하지 못한다. 오히려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서 도움이 되는 세균이 우점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협력적 교육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닫기보다는 열고, 감추기보다는 공개하며, 서로 협력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하자.


교육부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 타파를 위한 구체적 안을 구축하라!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는 교육을 개인의 욕망 실현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다. 초중등 의무교육, 고등의 무상교육은 국고로 이루어지고 따라서 교육은 한 움큼이라도 공공성이 실천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돼야 한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만 이기는 경쟁주의, 승자독식의 과정을 통해 성장한 이들의 세계는 문제해결의 해법 또한 그 과정과 다르지 않다. 모든 교육이 대입으로 귀결되는 현 상황에서는 교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시민과 시민의 권리를 교육할 수 없고 학부모가 자기 자식뿐 아니라 경쟁상대가 되는 다른 아이의 삶을 함께 고민할 수 없다. 이러한 전제를 그대로 두고 만들어 내는 법리와 규정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축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를 강화하는 또 다른 법리와 규정이 될 것이다. 법리와 규정으로 사안을 해결해서는 학생도 교사도 결국 그 법리와 규정에 옭조여 서로 감시자가 될 뿐이다. 수동적이고 위축된 존재로 초중등 12년을 보낸 채 성인이 된 이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이득인가. 교육부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털처럼 표심에 정치색을 섞어 만들어내는 즉흥적인 교육정책을 당장 중단하라. 누구의 인권도 다른 누군가의 인권을 위한 발판이 되어선 안된다.

매년 몇백 명씩 청소년이 스스로 죽어도 학교와 교육부는 이제껏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죽는 청소년이 300명이 넘었는데도 어떤 학교도, 교육자도, 학부모도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본질로부터 고민해 실천하지 않았다. 2016년 8명, 2017년 16명, 2018년 14명, 2019년 18명, 2020년 17명, 2021년 3명. 이제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스스로 죽게 하는 학교가 됐다. 교육부는 더 이상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와 시민을 우롱하지 말라.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도 교육부가 단시안적으로 던져놓는 안들에 더 이상 안주하지 않겠다. 몰아치는 교권강화의 바람이 교사와 학부모를 단절시키고, 그동안 쌓아왔던 교육현장의 인권을 존중하는 풍토를 퇴행시켜서는 안 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현재 몰아치고 있는 교권강화를 위한 법령의 제·개정 작업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과거 학교폭력을 막겠다는 선의로 제정된 학교폭력법이 학교현장을 황폐화시킨 전례가 있다. 속도 조절을 요구한다.

둘째,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인권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증진되는 것이다. 교사의 교권강화 법령과 제도의 제정과 개정과정에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도 참여시켜야 한다.

셋째,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대증요법적 대안이 아닌, 교육여건 개선 등 근본적인 원인 해소에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 축소, 1교실 2교사제, 상담 시설 및 전문인력 지원 등 교육여건을 개선하라.

넷째, 아동학대 관련 논쟁은 사법절차가 아닌 교육계 내부에서 논의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준사법기구인 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서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해결하도록 하자. 덧붙여, 교권침해 조치의 생기부 기재는 학교를 법적 쟁송의 장으로 황폐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교총의 주장을 전체 교사의 의견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라.

다섯째, 학교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건전한 교육생태계를 만들어내자. 이를 통해서 문제상황을 사전에 제어하고, 학부모와 교사가 협력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하자.

여섯째, 학벌주의는 경쟁을 강화하고 개인의 욕망 실현에 삶의 궤도를 맞춰 공동체적 가치를 모두 훼손했다. 어떤 제도, 어떤 대안도 모두 블랙홀로 끌어들이는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학생과 교사, 학부모는 함께 협력하고 연대하자. 교육부는 학벌주의 타파를 위해 교육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 더 이상 아무도 죽이지 말라!


2023년 8월 18일

교육희망네트워크, 어린이책시민연대, 전국장애영유아학부모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전국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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