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 정책이 동네북인가? (200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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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5-12-23 14:53 조회1,647회 댓글0건본문
2005년 6월 15일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 홈페이지에 실린 박이선 정책위원장의 글입니다.
조선일보가 6월 14일자로 일본에서 도요다 자동차가 연간 학비 3000만원의 일본판 이튼스쿨을 개교한다는 소식을 실어 평준화 정책 해제를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반대의 글로 쓴 것입니다.
평준화정책이 동네북인가?
박이선( 참교육학부모회 정책위원장)
평준화 정책으로 국가 인재 양성 어렵다?
2005년 6월 14일자 조선일보에는 세계적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가 주도하는 일본판 이튼스쿨이 개교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부제로 ‘日재계 평준화 교육으론 미래없다’라고 한 뒤 평준화정책 흔들기의 강도를 높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평준화정책의 해제요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기사는 ‘사람밖에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인재를 키워나가야 하며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강변했다. ‘평준화 제도 아래에 있는 학교는 학교다운 학교가 아니며 평준화제도로 국가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는 시각이다. 교육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평준화 해제였다. 과연 평준화 정책은 동네북인가?
평준화 정책의 쟁점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실시된 이후 계속 확산되고 있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우리나라 중등교육 정책의 방향을 교육의 기회균등에 두고 있다. 이 정책이 실시된 배경에는 과열된 입시경쟁과 입시준비에 따른 중학교 교육과정의 파행운영,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대도시에 밀집된 명문고 등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문제해결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평준화 정책을 둘러싼 쟁점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우선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들어 평준화정책을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평준화 정책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학력이 많이 떨어져있고 교육의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육개발원의 몇 차례 연구결과와 2002년 경기도 4개 지역 평준화 도입과 관련한 연구에서 평준화로 인한 학력의 하향평준화는 사실과 다름이 입증되었다. 1994년 경기도내 수원과 안양의 고등학교 3학년생의 입학당시 연합고사 성적과 수능성적을 비교한 결과, 입학 당시 평준화지역인 수원에서 고입 연합고사 170점 이상 학생은 363명이었고, 비평준화지역인 안양지역의 연합고사 170점 이상 학생은 1600여명이었다. 3년 뒤 수능시험을 보았을 때(1994) 수원에서 140점이 상(200점 만점) 학생은 600여명이었고, 안양지역 140점 이상 학생이 600여명이었다. 두 지역의 3년 간 연구결과 비평준화 지역인 안양지역 학생의 학력이 수원보다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준화정책을 흔드는 사람들의 논란 중 하나는 학교선택권의 문제이다. 서구사회가 실시하고 있는 학교선택권을 강조하며 공교육이 경쟁력이 있으려면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 주장이다. 학력, 학벌에 대한 폐해가 극심한 우리의 경우 학교선택권은 성적으로 서열화 된 학교의 선택과 다름이 없다. 학교선택권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지상주의로 인해 고등학교 교육이 망가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비평준화 정책으로 돌아간들 학교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학생들은 성적상위층에 불과하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학교선택권과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학교선택권은 엄연하게 다른 것이다.
평준화 정책을 흔드는 논란의 중심에는 교육의 경쟁력, 국가경쟁력의 약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부분에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교육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학교에 최대한 자율권을 주어야하며 많은 규제를 완화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교육의 수월성을 위해서는 평준화 정책이 걸림돌이 된다고 하는데 평준화 정책을 해제하면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성적으로 서열화된 학교에 진학하고자하는 열풍이 불게 될 것이 뻔하다. 또한 중학교 교육과정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고등학교 입시에 맞춰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좀 더 다양한 특기를 개발하고 진로를 탐색하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평준화정책의 쟁점 중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들고 있다. 사립학교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최근 국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립학교의 자율성이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축소되었기 때문에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립학교의 학생선발권과 등록금 자율권을 갖는 자립형사립학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다수의 사립학교는 재단에서 학교의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재단 전입금 비율이 극히 낮은 상태에 있다. 사립학교 스스로 학교의 특성을 갖는 교육환경 개선에 나서지 못하고 오로지 대학 입시만을 위한 최소한의 운영에 목숨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립학교의 부정과 비리가 평준화 정책으로 인한 자율성의 침해 때문인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
조선일보에 위 기사가 실린 날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에 국제고, 과학고를 설립할 것이라는 발표’를 보도했다. 서울에 있는 외국어고등학교는 6개, 과학고는 2개, 예체능고는 6개가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수의 특수목적고가 운영되고 있다. 학교의 설립목적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면 특수목적고의 추가 설립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특목고는 대학진학에 유리한 우수학생선발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설립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입시전쟁의 선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대학들도 특수목적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우수하기 때문에 학생선발도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교육부는 2008년도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하면서 특수목적고등학교는 동일계로의 진학만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대학들은 이를 무시하고 영역을 넓혀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반기를 들고 있다. 특목고의 대학입학 성적이 높다는 이유로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고등학교를 서열화해나가는 상황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과 맞물려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소득 상위 계층의 요구에 편승하여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흔들고 있음은 분명 교육에 대한 관점을 의심스럽게 만든다.
한 나라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뿌리깊이 밝혀있는 학력과 학벌 사회에서 자유롭게 놓여날 수 없는 사회구조와 인식의 개선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의 양성문제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서 찾지 말아야한다. OECD국가들이 보는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우리나라의 중등학생들이 얻은 성과를 두고 매우 놀라워하고 있다. 문제는 이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국가의 인재가 될 만한 재목으로 길러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이 본래의 기능에 충실해져야한다. 더 이상 학생선발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대학 4년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에 몰두하여야한다. 입시와 관련하여 대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의 한 마디에 이끌려다니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초중등교육의 목적은 민주 시민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것에 있다. 고등학교의 평준화정책은 이러한 목적에 맞는 것이다. 경제계를 필두로 평준화정책으로 인해 교육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대학들도 아우성이지만 이 나라 교육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는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견지해나가기 위한 목소리를 드높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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