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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사별평가 아직은 아니다. 안선회_20040918 (200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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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5-12-22 10:26 조회1,3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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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앞에 쓰여진 ‘교사별 평가제도, 이래서 필요합니다’라는 글에 대한 반론의 형태로 쓴 글입니다.

동일한 내용을 첨부파일로 올려놨습니다.

※ 이 글은 앞에 쓰여진 ‘교사별 평가제도, 이래서 필요합니다’라는 글에 대한 반론의 형태로 쓴 글입니다. 그래서 글의 체계성과 논리성이 부족합니다.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안선회

교사별 평가 지금은 아니다.

안선회

1. 교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문성을 키우고 책무성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앞의 글(‘교사별 평가제도, 이래서 필요합니다’)에서는 교사별 평가 제도가 교사들이 스스로의 전문성을 키우고 자신이 행한 교육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정기고사와 같이 일제히 치러지는 형태의 평가는 교사들이 수업을 다양하게 구상하고 교재를 재구성해서 창의적인 수업을 하는 것을 가로막게 됩니다. 일제히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지식내용을 가르쳐야 공동의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시험 진도에 맞추느라 다양한 학생활동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학생활동이 없는 지식 주입 위주의 수업을 하다보니 수행평가는 별도의 과제물 평가로 대체하거나 쪽지시험 형식으로 또 다른 ‘시험’을 보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교사는 교과서의 지식요소를 앵무새처럼 정리해주면 되므로 ‘지식의 단순 전달자’에 머물 뿐 가르치는 이로서의 자기 전문성을 높여야 할 하등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의 교육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도 없습니다. 똑같은 지식을 똑같이 전달했는데 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이것은 가르친 이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공부를 안 한 학생의 책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수업의 질을 높이고 다양한 평가를 시도하고자 했던 교사들은 ‘학교별 평가’와 입시제도의 벽에 가로막혀 대부분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교사별 평가 제도는 교사 자신이 ‘평가’보다는 ‘수업’에 더욱 열중할 수 있게 하는 전제조건입니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 학생 활동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 가능해지며, 수업 자체가 곧 평가과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결과는 전적으로 교사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고 더욱 질 높은 수업을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교사별 평가제도가 모든 개별 교사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가 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이 글을 보고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 제도에서는 전문성 신장도,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고백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이런 교사에게 ‘교사별평가’를 맡긴다고 하여도 과연 이 교사가 전문성 신장과 책무성을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핑계를 찾고 그것을 근거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겠지요. 이러한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 습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어느 경우라도 이렇게 주장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교사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입니다. 현재의 제도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에서 전문성 신장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책무성을 다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물론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도 중요합니다.)


교사는 항상 반성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의 가치관에 대해, 내가 지닌 태도․자세에 대해, 내가 하는 교육방법에 대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특성과 이해도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이렇게 누구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나 기관, 제도에 책임을 미루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자기 모습에 대해 성찰하지 않으면서 제도가 바뀌면 성찰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2. 교사들은 지금도 ‘교사별 평가’를 하고 있고 좀더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제도가 교사별 평가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아주 부정적인 것도 아닙니다. 현재 100% 교사별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기에 현재의 제도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검토하면, 우선 지금 제도도 이미 많은 부분 교사의 평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알다시피 60% 정도까지도 교사들은 수행평가를 통해 교사개인의 평가기준으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수행평가는 학습과정을 평가하기도 하고, 결과물을 평가하기도 하며, 토론 참여도를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납득할 수 없는 평가기준에 의해 주관적 평가를 하여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을 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별 평가를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왜곡이고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학교별로 반영비율이 최대허용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더 높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교사들의 노력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또, 현재의 교육에 대한 사회의(교육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요구는 사고력과 창의력 중심 교육입니다. 수학능력시험도 그렇게 출제되며, 대학에서의 논술과 구술도 제한적이나마 그것을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못 미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왜 사교육이 번창하고 있습니까? 사고력 중심의 교육을 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는데도 지식 위주 교육을 하고 옛날옛날 태고적의 암기식 평가(제가 확인한 내신 문제는 겉으로는 수능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식 확인을 위한 학력고사식 문제인 경우가 반을 넘습니다. 이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금 자녀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내신 문제와 내신 대비 참고서의 문제들을 보십시오)를 하고 있는 곳은 학교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제도만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있습니다. 그마저 대부분 쉬운 문제를 내고 그것도 학생들에게 대부분 찍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교과 단위로 내는 문제 역시 다른 사람들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서로 돌아가며 내기도 하고, 나누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협의해서 문제를 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학교 같은 과목 교사들 몇몇만 합의한다면 좀더 나은 교육방법을 찾고, 좀더 나은 평가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수행평가 기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좀더 나은 기준과 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맡겨진 권리이며 책임인 것입니다. 교사들은 이미 자신들이 가르친 것을 자신들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과목 몇 교사만 합의하면 가능하며 사회는 그러한 사고력 중심의 교육을 이미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3. 이 문제에 관한 쟁점을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이 문제의 쟁점은 교과별 평가와 교사별 평가가 결코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미 교사들은 교사별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석차와 )등급을 학년 단위로 낼 것이냐, 특정 교사가 가르친 학생만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쟁점을 분명하게 해야 분석과 평가가 분명하게 이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교사별로 중간, 기말고사를 보거나 보지 않을 수도 있고, 개인별로 어떤 방법으로 평가하더라도 다른 교사나 학생, 학부모도 문제를 전혀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교사개인의 권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발언과 외부 평가는 현재의 상태에서는 교사개인의 권리에 대한 간섭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동시에 교사개개인의 교육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할 어떤 기준도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교사에 대한 평가를 도입하는 것은 교사임용이 계약제여서 계약을 파기하거나 부적격, 능력부족 교사에 대한 면직 등의 징계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너무나 커다란 부작용을 안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약제여서 계약을 파기하거나 부적격, 능력부족 교사에 대한 면직 등의 징계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원평가제 도입은 현재 정치적 상황에서는 실현되기 매우 어려운 제도입니다.

4. 학생의 학습 부담은 크게 증가하고 공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앞의 글은 ‘교사별 평가 제도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수업과 평가의 이중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질 높은 수업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동일한 교사에게 배운 학생들 간의 상대평가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공정한 평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 교사가 ‘평가’보다 ‘수업’에 더욱 열중할 수 있는 교사별 평가 제도가 도입되면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 방식을 도입하거나 학생활동 중심의 다양한 수업이 가능해지므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수업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됩니다. 더구나 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 학생 활동이 중심이 되는 수업 자체가 곧 평가 과정이 될 수 있으므로 현재와 같이 별도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획일적인 수업을 받고 정기적인 시험을 치러야 하며, 시험과는 별도로 과제물로 전락해버린 수행평가를 또 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교육부가 주장하는 교과별 평가 제도는 수업과 평가가 별개의 과정이 되어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 따로, 일제히 이뤄지는 평가 따로 이중의 부담을 여전히 안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선생님에게 같은 방식으로 공부한 학생들 간의 상대 평가가 훨씬 더 안정적이며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교과별 공동 출제의 경우 교사에 따라서는 자기가 가르친 반만 더 많은 힌트를 주는 등 문제 유출의 가능성도 큽니다. 교육부에서는 교과별 평가가 더욱 공정하다고 주장하지만 경우에 따라 교과별 평가가 오히려 더욱 공정하지 못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현재 많은 학교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은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들의 의미와 노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100%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것임). 지금도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사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교과서와 교육과정운영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평가기준은 교과서제도와 교육과정운영방식이 올바르게 바뀌도록 노력하면서 새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다양성과 창의성이 ‘제멋대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떤 경우에도 분명한 객관적 교육평가기준은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최저의 교육수준이 실현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미치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국가정책적 차원과 학교교육적 차원의 배려가 가능합니다.

만약 교사별로 성적 등급을 내고, 교육이력철 도입으로 모든 과정이 평가대상이 되며, 주로 그것으로 대학입학이 결정된다는 것은(이렇게 연계된 주장을 하고 있기에 그에 맞추어 비판하고 있음) 의외로 너무 많은 부작용을 양산해낼 수 있습니다.
위에 주어진 소주제로 논의를 제한한다면 수업과 평가의 이중 부담에서 벗어난다고 하였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방안대로 하면 모든 수업과정이 곧 평가과정이 됩니다. 그리고 그 평가의 모든 권한은 교사 개개인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최소한의 객관적인 평가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 결과는 우선, 학생들의 평가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평가부담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수업과 평가의 이중 부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업시간 모든 하루하루, 모든 행동이 대입을 위한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은 학교생활기간을 어떤 여유도 없이 짜여 돌아가는 고통의 시간으로 만들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느끼는 긴장과 부담이 크게 증가합니다.

또한, 공정성을 확보하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평가를 교사 개개인이 전담하기에 학교교과 교사들이 합의한 최소한의 지필평가 자체를 부정하고, 교사 개인만이 평가하게 되면 한 학교 내에서도 담당교사의 주관적 관점이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앞의 글에서는 교사가 자신이 가르친 반에서만 문제를 가르쳐주어 공정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으니 공정성이 더 강화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교사가 함께 준비하여 치르는 시험에서도 문제를 자기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교사들이라면 자기만 가르치고 평가하는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부정을 하거나 자의적인 평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교사라면 아무리 별도 평가를 한다고 해도 점수 평균이 나와 교사간 비교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에 대충 수업하고 문제 가르쳐주며 그럴 듯한 평균 점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교사라면 얼마든지 부정을 할 소지도 있습니다. 따라서 공정성이 더욱 추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제도가 바뀌면 과연 교사들이 갑자기 선해져서 반드시 공정하게 평가를 하게 될지 판단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교사가 사고력 향상을 위해 열심히 가르쳐 학생들의 동기를 부여하며 학생들의 열의와 노력을 끌어내고 그 결과 최선의 결과를 가져 왔고, ㉯ 교사는 그 반대라고 합시다. 이럴 경우 교사별 석차내기를 하면 ㉮교사가 노력하여 훌륭한 교육을 했다는 것과, ㉯교사가 나태하여 잘못된 교육을 했다는 사실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버립니다. 학생들에 대한 비교평가도 불가능하며, 학기 중에 교사에게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사라지고 맙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서도 좀더 노력한 교사와 학생이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하는 평가가 과연 공정할까요?

아울러, 우리가 장기적으로는 일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어, 수학 수준별 학습도 그런 체제에서라면 도입이 불가능한 정책이 되고 맙니다. 높은 혹은 낮은 수준 학생들만 가르쳐 그 반에서만 석차를 낼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4. ‘교사별 등급내기’(교사별 평가)는 교사 개인에 대한 비교평가를 불가능하게 하여 나태와 무능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앞의 글은 ‘교육부가 주장하는 교과별 평가는 교과 전문성과 책무성을 실체가 없는 ‘교과협의회’에 떠넘기며 교사 편의를 위한 ‘담합’을 가능하게 할 소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 물론 교육부에서 주장한 ‘교과별 평가’ 제도도 기존의 ‘학교별 평가’ 방식보다는 교사들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강조하게 되는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체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 고려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공립학교의 교과협의회는 1년에 한번씩 구성원이 바뀝니다. 교사들의 전근 등으로 이동이 많기 때문입니다. 학년초에 형식적인 교과협의회가 구성되기는 하지만 매년 구성원이 바뀌어 새로 만들어지는 교과협의회에 어떤 전문적 노하우가 축적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게다가 평가의 책무성을 담보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공립 학교의 경우 몇 년만 지나면 교과별 협의회의 모든 구성원이 다 바뀌어버리는 실정입니다.
교과별 협의회를 활성화하여 구성원 각자의 전문성을 공유함으로 더 높은 수업의 질을 담보할 수 있게 된다면 아주 이상적인 일이겠지만, 매년 구성원이 바뀌는 교과별 협의회는 형식적인 교과별 업무를 분담하는 데 그치게 될 뿐 수업의 질 향상과 평가 방식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꿈꾸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강조되면 될수록 문제 소지를 없애기 위해 단순하고 기능적인 수업과 평가를 교과에서 다함께 선택하는 ‘교사 편의를 위한 담합’의 소지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것은 현재 각 학교 교과별 협의회의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지적해준 내용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현실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교사에 대한 평가와 부적격교사에 대한 재교육, 일부 면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교과별협의회를 형식상 운영하는 이런 학교가 있다면 반드시 이를 개선해야 합니다. 교과별 협의회를 적극적인 학습조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교과별협의회마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담합가능성 때문에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이 땅의 교사들은 교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매년 교사가 바뀌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더 교과별협의회를 통해 학습하고 협의하며 자신과 새로 부임한 교사들을 발전시켜 나가야만 합니다.
교과별협의회에서조차 협의하지 않고 다른 교사에게조차 배우려고 하지 않으며 담합이나 일삼는 교사는, 평가마저 개인에게 맡겨두면 더욱 더 나태하고 무능한 교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학교에서 요구해도 노력하지 않고, 다른 교사에게 배우는 것과 교육방법과 평가기준을 협의하는 것조차 부정하는 교사는 각자 개인에게 맡겨도 스스로 개선하지 않고 ‘검은 상자’ 속에 꽁꽁 숨어버리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부 교사의 나태와 무능은 더욱 숨겨져 버립니다.
이는 교사 개인의 평가기준과 문제를 공개하고 평가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을 통해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미사여구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담합이나 하는 교사는 개인에게 모든 권리를 주어도 역시 그럴듯한 평가기준과 문항을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기능적 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문제를 찍어주면서 자기 수업의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숨길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장치가 교과별로 평가를 하고 학년별로 교과등급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만의 노력과 학습보다 함께 모여서 논의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우리 자신을 좀더 발전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거의 모든 기업과 조직은 자신의 조직이 하나의 학습조직이 되어 더욱 발전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며 협의를 통해 좀더 나은 교육을 해나가도록 노력하는 교가별협의회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미진하다고 해서 교사별 평가와 석차내기로 간다면 그나마 유지되어오던 교과별협의회는 아예 골동품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학교가, 교과별협의회가 학습조직으로 거듭나기는 불가능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더욱이 교사별 수업과 석차내기가 이루어지면 교사들의 수업과 평가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인 노력, 시스템을 활용한 접근, 조직적 노력도 제한되어 버립니다. 이제 우리 교육은 교사 개인의 성찰과 양심에 맡겨질 뿐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교과별협의회조차 담합으로 접근하는 교사들이 개인의 양심의 명령으로 스스로의 수업을 개선해나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5. 사교육은 더욱 소그룹별로, 개인지도식으로 이루어져 그 부담은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앞의 글은 “교사별 평가 제도는 저 수많은 내신 대비 학원들의 ‘내신 대비’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결정적으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 학원의 ‘내신 대비’가 가능한 이유는 학교별, 교과별로 일제히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수업의 진도, 평가 시기와 평가 내용이 학교 전체가 똑같기 때문에 이른바 ‘내신 대비’가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교사마다 다른 방식, 다른 시기, 다른 내용의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내신 대비’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교과 수업시간, 학교에서의 생활과 활동을 더욱 충실히 하는 방식으로 ‘가장 본질적인 내신 대비’를 스스로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

이러한 지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습니다. 현재의 사교육이 그런 방식으로 이루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사별 등급과 석차내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교육비는 줄지 않습니다. 다만 더 소규모 그룹화하고, 오히려 더 효과적인 개인지도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커지겠지요.
따라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사교육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발상입니다. 사교육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하게 됩니다. 아마도 과제 대행 사이트, 과제대행 대행 학원, 수업지원 가정교사 등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6. 교사별 평가, 석차내기가 도입되려면 어떤 제도가 먼저 전제되어야 할까요?

이미 언급하였듯이 사고력을 중시하는 현재의 수능체제도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교사 개인에게만 모든 교육을 맡겨버리는 것은 (학생에 교원평가가 없을 경우) 교사들의 나태와 무능을 합리화시키거나 ‘검은 상자’안으로 숨겨버리는 기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학교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적으로나마 도입하고, 부분적이나마 학생에게 과목선택권과 교사선택권을 준다면 이 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또 앞서 말했지만 교원평가를 통해 면직까지 포함한 교사 징계가 가능해진다면 교사별 평가와 석차내기를 도입하더라도 이를 수업의 질 개선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또한 덤으로 다양한 수업과 다양한 학습자료를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공적인 인터넷 사이트도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나 전제가 되어야 할 이런 제도가 주어지거나 교사별 평가와 등급(석차)내기제도가, 전제가 될 제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이 제도는 아직 도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교원평가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그 장점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부작용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원평가 자체가 벽에 부딪혀 있을 뿐만이 아니라 교원평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교사들을 면직시키는 징계조치는 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가 교사의 올바르고, 공정한 평가능력과 자세입니다. 앞서 밝혔지만 수능과 논술, 구술·면접이 이미 사고력 중심의 평가를 진행하고 있고, 대학과 사회가 사고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수업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사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학급당 학생수와도 부분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교사의 능력과 노력, 의지의 문제입니다.

교사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어떤 과목이라도 수업의 변화·개선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제도만을 탓하는 것은 교사답지 못한 태도입니다. 이미 적지 않은 교사들이 문제 유출, 개인 지도, 성적 부정 등과 관련하여 징계를 받고 있음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의 주관적 평가를 자기자녀에게 좀더 유리하게 끌어내기 위한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학교를 오염시킬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공정성, 객관성을 버리고 교사의 주관적 평가에만 의존하는 고교이력철, 교사별 평가와 석차내기로 대입을 해결하자는 주장은 우리 교육을 또 한번 수렁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교사들의 능력과 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교사들의 태도와 능력이 개선되고 바로 앞에서 언급한 교원평가와 징계제도 등이 전제가 충족되기 전까지는 교사별 평가와 석차내기는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교과별협의회를 학습조직으로 만들어 최대한 활용하면서 교과교사들의 집단적 학습과 집단적 실천을 통해 교사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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