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20 내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피재현(참교육학부모회 영남권역위원장) (200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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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6-01-05 15:48 조회164회 댓글0건본문
2002.02.20
내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
피재현(참교육학부모회 영남권역위원장)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는 아쉬움이 많다. 어떨 때 생각하면 내가 왜 중고등학교 때 백일장을 쫓아 다니고 스님이나 시 쓰는 선배들을 따라 다녔는지...또 어떨 때 생각하면 내가 왜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했을 때 진득하게 배기지 못하고 다시 안동으로 왔는지...뭐 대체로 그런 후회들이지만 뒤돌아보는 생은 언제나 안타까움과 미련 따위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내 삶이 그만큼 하찮게 여겨지거나 처량하지 않는데도 이런 아쉬움들이 생기는 걸 보면 아직도 나에게는 많은 욕심들이 남아있나 보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나는 내 이런 욕심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자칫 내 삶에 대한 미련이, 그래서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욕심이 아이들에게로 떠넘겨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다. 마치 리허설을 마치고 본무대를 시작하는 감독처럼 내 삶에서 발견되고 검증된 실수와 착오들을 자식들의 인생을 통해 보완하고 완성하려고 하는 욕심이 생긴다면 큰일이 아닌가!
내 교육적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하고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혈안인데 내 아이만 제 놀고 싶은 대로 뒀다가 적당히 고등학교나 졸업하고 제 인생을 시작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참교육인가? 그래서 나중에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곤궁한 입장이 된 아이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나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큰 아이가 4학년이 되도록 뚜렷하게 교육관을 정립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뭐든지 적당히 한다. '너 학원 갈래?' 물어보고 가겠다면 보내고 '그만두겠다'면 또 그만두게 한다. 컴퓨터만 하고 있는 둘째와도 자주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같이 해 보기도 한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학부모들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서 한다.
제법 의식도 있고 생각도 바르다는 사람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에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아! 모든 사람들은-그 사람이 진보적이든 아니든-자기 자식의 문제 앞에서는 나와 비슷한 엉거주춤한 입장들이구나'하는 생각을 했고 곧 안도했다. 이런 문제들을 나만 고민하고 있었다면 나는 얼마나 덜 떨어진 인간이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진실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와 내 아이의 관계만 제대로 되어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 같다.
사회와 학교가 함께 노력하고 '나무'가 아닌 '숲'이 건강해지는 날, 우리의 아이들은 참교육의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생각을 바꿔서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아이를 위해서 학교운영위원회에도 참가하고, 사회의 불합리한 모순과 학교 안팎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그것이 결국은 내 아이의 행복으로 돌아오는 일임을 명심하면서.
내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 아이들이 맞아야 할 세상이 내가 만났던 세상과는 좀 다르고, 학교 또한 우리가 다녔던, 깊이 불신하고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학교와는 좀 다른 학교여서,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낸 우리 아이들이 나 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
피재현(참교육학부모회 영남권역위원장)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는 아쉬움이 많다. 어떨 때 생각하면 내가 왜 중고등학교 때 백일장을 쫓아 다니고 스님이나 시 쓰는 선배들을 따라 다녔는지...또 어떨 때 생각하면 내가 왜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했을 때 진득하게 배기지 못하고 다시 안동으로 왔는지...뭐 대체로 그런 후회들이지만 뒤돌아보는 생은 언제나 안타까움과 미련 따위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내 삶이 그만큼 하찮게 여겨지거나 처량하지 않는데도 이런 아쉬움들이 생기는 걸 보면 아직도 나에게는 많은 욕심들이 남아있나 보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나는 내 이런 욕심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자칫 내 삶에 대한 미련이, 그래서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욕심이 아이들에게로 떠넘겨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다. 마치 리허설을 마치고 본무대를 시작하는 감독처럼 내 삶에서 발견되고 검증된 실수와 착오들을 자식들의 인생을 통해 보완하고 완성하려고 하는 욕심이 생긴다면 큰일이 아닌가!
내 교육적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하고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혈안인데 내 아이만 제 놀고 싶은 대로 뒀다가 적당히 고등학교나 졸업하고 제 인생을 시작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참교육인가? 그래서 나중에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곤궁한 입장이 된 아이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나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큰 아이가 4학년이 되도록 뚜렷하게 교육관을 정립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뭐든지 적당히 한다. '너 학원 갈래?' 물어보고 가겠다면 보내고 '그만두겠다'면 또 그만두게 한다. 컴퓨터만 하고 있는 둘째와도 자주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같이 해 보기도 한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학부모들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서 한다.
제법 의식도 있고 생각도 바르다는 사람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에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아! 모든 사람들은-그 사람이 진보적이든 아니든-자기 자식의 문제 앞에서는 나와 비슷한 엉거주춤한 입장들이구나'하는 생각을 했고 곧 안도했다. 이런 문제들을 나만 고민하고 있었다면 나는 얼마나 덜 떨어진 인간이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진실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와 내 아이의 관계만 제대로 되어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 같다.
사회와 학교가 함께 노력하고 '나무'가 아닌 '숲'이 건강해지는 날, 우리의 아이들은 참교육의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생각을 바꿔서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아이를 위해서 학교운영위원회에도 참가하고, 사회의 불합리한 모순과 학교 안팎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그것이 결국은 내 아이의 행복으로 돌아오는 일임을 명심하면서.
내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 아이들이 맞아야 할 세상이 내가 만났던 세상과는 좀 다르고, 학교 또한 우리가 다녔던, 깊이 불신하고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학교와는 좀 다른 학교여서,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낸 우리 아이들이 나 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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