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교육개혁의 평가와 전망 (20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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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6-01-05 14:37 조회140회 댓글0건본문
5.31 교육개혁의 현황과 전망
김 용 일 kymh11@hhu.ac.kr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부설 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해양대 교수
<국문요약>
1995년 5월 31일 ‘문민정부’가 마련한 교육개혁의 청사진은 ‘과거의 문서’가 아니다.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 중반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정부의 교육개혁을 이끌고 있는 기본문서로 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5.31 교육개혁안에 담겨있던 개혁의제들은 “일부 ‘성공’, 대부분 교착상태”에서 여전히 공방의 대상인 것이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라 일컬어지는 교육개혁의 정당화논리 자체의 모순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이 조직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5.31 교육개혁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교육 불평등, 사회양극화 등의 문제가 심화될수록 지금과 같은 교육개혁은 한층 더 버거운 행보를 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국민의 정부’는 물론 ‘참여정부’ 역시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만한 의지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시장주의자들과 공공성 강화론자들 간의 지리한 대치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 전망해볼 수 있다.
주제어: 5.31 교육개혁, 신자유주의(시장주의), 교육의 사사화, 학교민영화, 학교선택(권), 공교육재정 감축, 교육 불평등, 교육의 공공성, 사회적 기본권
Ⅰ. 서 론
2005년은 ‘5.31 교육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 꼭 열 돌이 되는 해였다. ‘문민정부’에서 시작된 교육개혁이 이런 별칭을 얻게 된 것은 개혁 구상의 전모가 담긴 문서가 발표된 날짜 때문이다. 1995년 5월 31일, 바로 이 날 교육개혁위원회가 대통령 보고 형식을 빌어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국민 앞에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통령 보고서에 담긴 구상의 실천적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 성격 내지 본질을 포착한 어떤 개념으로 교육개혁을 명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만큼 5.31 교육개혁안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일종의 ‘암흑상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누가 어떤 목적에서 개혁의 청사진을 내놓은 걸까? 그 핵심 전략은 무엇이고, 개혁을 통해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구이며 또 손해를 볼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대통령 보고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본질을 포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점은 5.31 교육개혁안이 공식화되기 전후 진보진영이 보여준 행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민정부’에 대한 일정한 기대 하에 지지를 표하는 한편, 특정 정책들의 경우 정부와의 교감 아래 입안 단계에서부터 같이 하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그 수용 여부의 문제를 떠나 5.31 교육개혁을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라 부르는데 주저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개혁의 실천적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특히 진보 내지 개혁 진영의 입장은 더욱 분명해졌다. 줄기차게 정부의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대안적 담론과 실천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지속해온 것이다. 이런 대립 구도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물론이고, 임기 중반을 지난 ‘참여정부’에서도 여전하다.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 정부’가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국정기조로 내세웠던 ‘민주적 시장경제론’과 ‘생산적 복지론’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참여정부’에서도 반복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권 인수 단계에서는 공공성 강화 담론과 민주화 담론에 기초한 교육정책 기조를 천명해놓고서(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03. 2 참조), 갈팡질팡하다 마침내 시장주의에 경도되고 만 것이다.
교육부문에서 지난 10여 년간 관철되어온 ‘강력한 힘’, 즉 5.31 교육개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작금의 현실에 기초하여 교육개혁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먼저 제Ⅱ절에서는 교육의 사사화 전략을 통한 공교육재정 감축이 5.31 교육개혁의 요체라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다음으로 제Ⅲ절에서는 10여년이 지난 현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5.31교육개혁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끝으로 제Ⅳ절에서는 이상의 논의를 요약한 후,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교원의 능동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간략한 제언을 덧붙이고 있다.
Ⅱ. 교육의 사사화(私事化)와 공교육재정 감축
5.31 교육개혁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생산적일 듯하다. 즉, 5.31 교육개혁안의 진보적 계기는 무엇일까? 잠시 동안이나마 진보진영 일각에서조차 협조적인 태도를 취했거니와 그 실체가 드러난 지금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5.31 교육개혁이 표방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일정하게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국가관료제의 폐해에 대한 문제제기 내지 공격이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미 식 신자유주의가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조건을 마련해나가기 시작하던 1970년대 말 전후의 상황이다. 당시 시장주의자들은 국가관료제의 폐해를 집요하게 거론하면서 ‘국가 대 시장’이라는 대립구도를 설정하였다.(김용일, 2001: 130-137 참조) 그 논리적 귀결이 바로 “실패한 국가가 아니라 이제 시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1990년대 중반 우리에게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문민정부’는 30여 년간 지속된 군사정권과의 단절을 특별히 강조했었다. ‘문민정부’라는 표현 자체가 그런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행보는 국민은 물론 진보진영 인사들에게도 크게 어필하였다. ‘과대성장국가’라 규정될 정도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의 유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은 물론 진보진영의 문제의식과도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가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를 한껏 증폭시켰다. ‘문민정부’의 손을 거쳐 마련된 개혁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가 존재했었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정황에서 시장주의에 기초한 5.31 교육개혁안이 마련되었으며, 진보진영이 일정 부분 동참하게 된 것이다.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대한 부정이 ‘문민정부’의 진보성으로 인식되었고, 그런 정부의 교육개혁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의 문제를 “민주화된 국가”로 풀지 않고, 시장으로 풀자는 논리 내지 각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에서의 시장이 ‘문민정부’의 진보성을 구현할 기제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무비판적 수용’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5.31 교육개혁안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사려 깊은 진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른 나라의 개혁 논리와 모델, 심지어 구체적인 정책의제까지도 수입해온 것이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영국이 주된 수입처였다는 점이다.
5.31 교육개혁안을 마련한 사람들은 경쟁력 강화 논리(‘교육경쟁력 강화 → 국가경쟁력 강화’)에 입각하여 개혁을 통한 ‘교육의 질 제고’를 목표로 제시했다.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문명사적 변화’가 이런 방향의 교육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교육개혁위원회, 1995. 5. 31: 3-9) 그러면서 내놓은 개혁의 핵심 전략이 바로 공교육 시장화(marketizing)와 학교 민영화(privatization)였다. 시장주의에 의거한 교육의 사사화(私事化) 전략이었던 것이다.
공교육 시장화는 학교와 교원을 ‘교육서비스’의 공급자로 학생ㆍ학부모ㆍ기업을 소비자로 보는 접근방식에 잘 나타나 있으며, 공교육체제 내의 비용-편익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각양각색의 정책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학교와 교원 등 공급 측면에 시장적 경쟁조건을 마련함으로써 교육 서비스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소비자 측면에서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곧 공교육체제에 시장 메커니즘을 구현하는데 불가결한 조건으로 설명되었다.
다른 한편, 학교 민영화 전략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사립학교를 도입하자는 주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도입 방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구상은 학교를 운영하는데 있어 재정(funding)과 관리(통치, governance)를 분리시키자는 주장 등으로 확대된다. 학교운영을 정부가 독점할 게 아니라 민간에 맡겨 그 효과(율)성을 극대화하자는 구상이다.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은 그것이 학교 민영화 전략의 전면화라는 판단에 따른 진보 내지 개혁 진영의 강력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당초 이 개혁 의제는 5.31 교육개혁안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교육개혁위원회 스스로 인정하였듯이 “고교평준화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청하는 것”(1998. 1: 257-258)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 등으로 인해 착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국민의 정부’ 시절 새교육공동체위원회(2000. 7. 11)가 전격적으로 시범학교 도입 방침을 내놓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시범실시 3년차에 결과에 평가를 거쳐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정도로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된 바 있다.
유념해야 할 점은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 전략이 현실에서 명확하게 구분되거나 항상 독립적으로 구사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육의 사사화 전략의 큰 틀 안에서 개별적으로든 양자의 배합을 통해서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시장주의 개혁의 실제 모습이다.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 우회로를 터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자율형 공립학교’ 도입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행보가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당초 “중등학교의 30% 정도까지 자립형 사학으로 전환시키자”(이주호, 2002. 4. 15: 47; 서정화, 1994. 11. 18: 19)고 주장하다가 벽에 부딪히자 좀더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자율형 공립학교’는 기본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 운영을 민간에 맡기자는 발상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의 이론적 뿌리가 1955년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제창한 바우처 제도(voucher system)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정과 관리를 분리시키자”는 것이 그 핵심이라는 점에서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 전략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바우처 제도는 1950년대 말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주(州) 일부에 도입되었으나 1964년 위헌결정을 받게 된다. 1954년 브라운 판결(Brown Decision)에 따른 흑백학교 통합정책(desegregation policy)에 대한 노골적인 사보타지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1990년 밀워키 주에서 바우처 제도를 도입할 때, “학교선택 프로그램”(Milwaukee Parent Choice Program, MPCP)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선택(권)’이란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바우처가 더 이상 시장만능론자(free market zealots)나 극단적인 인종주의자를 연상시키지 않고 정당한 정책 도구로 논의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커다란 공헌을 한 연구자가 바로 첩(John E. Chubb)과 모우(Terry M. Moe)였다.(Low and Whipp, 2002: 34)
시장주의자들에게 있어 교육은 더 이상 “공적인 일”(public matter)이 아니라 ‘사적인 일’(private matter)로 간주된다. 이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기도 한데, 교육권을 사회적 기본권(생존권적 기본권)이 아니라 자유권적 기본권(‘소비자주권’, consumer rights)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이다. 뿐만 아니라 교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하려 한다. 즉, “교육자 → ‘교육서비스’의 공급자 → 유능하고 유순한 노동력의 트레이너”(Scapp, 2001: 33 참조)라는 것이다. 조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치우친 정책을 펴는 게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실제 모습이다.
그러면 이런 방식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목표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공교육재정 감축”이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일차적인 목표였다. 제시해온 목표와 실제로 추구해온 목표가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시장주의의 노선에 따라 교육개혁을 추진해온 나라들의 경우 예외 없이 공교육재정 감소 현상이 나타나는데, <표Ⅱ-1>은 그와 같은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장주의 교육개혁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었다.
<표Ⅱ-1> 영국, 미국, 호주의 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 변화추이
(단위: %)
구 분영 국미 국호 주19706.26.04.619756.85.76.219805.74.95.619854.94.65.419904.35.25.419935.15.25.619944.64.94.619974.65.24.3
자료: CERI(2000), 54; CERI(1997)/ 한국교육개발원(1998), 32; CERI(1996)/ 교육부 (1997), 79.
그렇다면, 누가 공교육재정 감축 요구를 해온 것일까? 다름 아닌 기업과 부유층이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복지국가 유지에 드는 비용을 자신들이 감당해왔다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 말 마침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집권하게 됨으로써 저간의 요구를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육소비자’ 가운데 최종ㆍ최대 고객인 기업(자본)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한편, 부유층의 ‘무절제한 (교육적) 욕망’을 현실화하는 기획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5.31 교육개혁이 추진된 직후 일시적이나마 교육재정이 증가하였다. 공부담 공교육비를 기준으로 1995년 GDP 대비 3.7%에서 1996년 4.1%, 그리고 1997년 4.3%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8년을 고비로 감소추세로 돌아섰다가 ‘국민의 정부’ 말기에 교육환경개선 사업에 막대한 재원을 조달함으로써 지표상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최근 또다시 등락을 거듭하면서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표Ⅱ-2>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사정을 잘 확인할 수 있다.
<표 Ⅱ-2>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교육재정 변화추이
(단위: 억원)
구 분20012002200320042005GDP 규모(A)6,221,2266842,63577,213,4597,783,3228,405,987교육재정 합계(B)215,829281,391309,628333,138352,621교육재정 비율
(B/A, %)4.354.114.294.284.19
* 2004년과 2005년은 추정치임
자료: 교육인적자원부(2005). 행정자료.
그러나 공교육 재정 감축은 개혁의 일차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기업 중심의 사회 조건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의식의 변화, 이것이 시장주의 교육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외국인학교특별법을 둘러싼 논란과 국회에서의 법률 통과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대한민국국회 교육위원회, 2005. 2. 24 참조). 외국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 앞에 법률 제정과정에서 확인된 쟁점들이 일거에 ‘해소’되는 식으로 종결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새삼 ‘경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재계의 행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작년 말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의 발언은 기업 주도 내지 경제논리 위주의 교육개혁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경제적 강자가 대학의 강의실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겠다는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필요에 반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인 셈이다.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비민주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실로 우려할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Ⅲ. 5.31 교육개혁의 현황과 전망
이제 10여년이 지난 5.31 교육개혁의 현 상황을 점검해볼 차례이다. ‘개혁주체’들의 실험은 “일부 ‘성공’, 상당부분 교착상태”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초ㆍ중등교육 부문에서 교원정년단축정책, 제7차교육과정, 자립형 사립고, 학교운영위원회제도 등의 도입에는 ‘성공’했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성공한 정책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고등교육 부문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작품이라 평가하던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얼마 전 법 개정을 통해 원상복귀시킴으로써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지만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잠시 개혁 모델의 ‘수출국’의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정책의 방향을 선회했거나 그 폐해가 드러나 나름대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에서 시장주의자들이 개혁의 효모(酵母) 역할을 할 것이라던 자율학교(grant-maintained school)의 운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학교는「1988년 교육개혁법」(1988 Education Reform Act for England and Wales)에 의거하여 도입되었다. ‘교육소비자’에게는 학교선택권을 학교에게는 학생선발권을 부여하는 한편, 등록한 학생수에 따라 학교재정 규모가 결정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학교는 1999년 기초학교(foundation school, 500개)와 자선학교(voluntary-aided schools, 600여개)로 재편되어 현재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양한 전형 요소와 학생 선발권을 이용하여 ‘골라 뽑기’가 성행하고, 그 결과 교육의 질 제고는커녕 계층 및 인종간의 교육 불평등 심화시킨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West, Pennell, and Edge, 1997: 176). 이에 1997년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 정부는 공교육재정의 감축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과 교직이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GDP 대비 5%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공교육재정을 확충해나가겠다는 것이 선거과정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중요한 약속 가운데 하나일 정도였다.
<표Ⅲ-1>을 보면, 2002년 현재 영국의 공부담 공교육비 규모가 GDP 대비 5.0%에 다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노동당 정부의 공약이 지켜진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태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1997년까지 18 년간 집권한 보수당 정부의 시장주의적 교육개혁의 유산이 그리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사부담률이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정이 그렇긴 하지만, 이른바 ‘제3의 길’(Giddens, 2000/ 박찬욱 외 옮김, 2002 참조)에 따라 과거 보수당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킨 노동당 정부의 공교육재정 확충 의지와 그 노력의 흔적만은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 할 것이다.
<표Ⅲ-1> 영국의 GDP 대비 공교육비 추이
(단위: %)
구 분총교육비공부담사부담1990년4.34.20.11995년5.54.80.72001년5.54.70.82002년5.95.00.9
자료: OECD(2005), 184; 교육인적자원부ㆍ한국교육개발원(2002), 231; CERI(2000), 24
미국 교육개혁의 현황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Reich의 글을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는 Clinton 행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지낸 인물로서 지금은 브랜다이스 대학에 재직 중인 노동경제학자이다.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했다고 평가받는 그가 시장주의의 폐해를 언급하는 가운데 학교 서열화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잘살고 보다 야망이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문제아는 쉽게 밀려나며, 학습 진도가 늦은 학생은 조용히 고립되는, 잘사는 교외 지역의 사립학교나 평판이 좋은 공립학교를 선택하고 있다.ㆍㆍㆍ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공공 재원으로 운영되는 ‘차터 스쿨’을 선택한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입학과 퇴학에 있어 일반 공립학교보다 더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주에서 차터 스쿨은 드러내놓고 특정 학생들을 배척하거나 퇴학시키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습 능력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근처의 잘사는 동네 아이들만 입학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학교 입장에서 원하지 않는 학생이 들어오는 것을 교묘히 막고 있다.”(고딕의 강조는 필자, Reich, 2000/ 오성호 옮김, 2001: 282-283)
계층(급) 대응적인 학교 서열화 현상이 심화되는 미국의 상황을 잘 전해주는 내용이다. 우리의 자립형 사립고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유형의 사립학교가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이 교외 지역의 ‘평판이 좋은’ 공립학교이다. 교육재정은 물론 학부모의 경제 및 사회적 자원 등을 통한 지원이 풍부한 부유층 거주 지역의 학교들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설립 주체를 논외로 할 때 우리의 특목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차터 스쿨인데, 이것이 바로 앞에서 살펴본 ‘자율형 공립학교’ 내지 ‘공영형 혁신학교’의 모델이 되는 학교다. 맨 아래 단계에 도심부의 공립학교가 존재한다. Reich가 시장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적 균형”의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까닭은 이런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다시 우리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기로 하자. 서론에서 ‘국민의 정부’가 ‘문민정부’ 시절 마련된 5.31 교육개혁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왜 그랬던 것일까?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정승건(1999: 285-291)은 집권 정치세력이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관료권력에 포위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의 틀을 사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집권 정치세력은 개혁의지가 충만했는데, 관료권력과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좌절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집권 정치세력이 그런 ‘면죄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교육개혁에 관한 한, 그들은 당초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스스로 천명한 국정운영의 기조를 구현해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 결과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을 “관료적 재해석”을 거쳐 그대로 계승하고 말았다. 집권정당의 의회권력 역시 나름의 역할을 감당해낼 만한 제반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었다. ‘국민의 정부’와 관련된 ‘개혁세력’의 인적ㆍ물적 자산과 관련 네트워크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정권 인수 단계에서는 일단 정책내용(policy contents)상의 방향 선회 과정을 거친 게 사실이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03. 2)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개혁에 필요한 지도력 형성에 실패하였다. 특히, 정책 환경(policy context) 관리 능력의 부재로 예기치 못할 정도로 빨리 관료조직을 통제하지 못하는 형국이 조성되었다. 얼마 지나서는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분명치 않은 인사를 수차례 되풀이 하면서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집권한 정치세력의 ‘능력 없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김용일, 2005. 3. 8)
일찍이 전면적인 인적 보완이 없는 한 무언가 기대할만한 여지가 많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적절치 못한 인사가 되풀이되는 등 일찌감치 ‘국민의 정부’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그대로 반복하는 정세가 조성되고 만 것이다. 그것이 지난 3년여의 상황이다. 최장집(2003)의 표현을 빌자면, 교육부문에 관한 한 두 정부에 걸쳐 “열망과 실망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참여정부’의 집권 후반기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앞에서 5.31 교육개혁의 현황에 대해 “일부 성공, 대부분 교착상태”라고 했다. 더욱이 몇몇 제도를 도입하고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고는 하나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되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라면, 지난 10년간 5.31 교육개혁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실질적인 ‘패배의 경험’을 되풀이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갈등을 유발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 책임을 누군가가 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란 뜻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5.31 교육개혁의 이념적 기저인 신자유주의 자체의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국가 없는 시장’은 형용모순이며 역사상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오히려 시장 논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상황은 민주주의에 대한 독(毒)이며,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킨다.(최장집, 2005; 이정우, 2005. 8. 10; Chomsky/ 강주헌 옮김, 2004; Bok, 2003) 자신들의 기획을 ‘다양성’, ‘수월성’, ‘학교선택권’ 등과 같은 가치로 포장할 수는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곧 그 본질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5.31 교육개혁(안)이 우리 교육현장에 착근하지 못하고 부동(浮動)하는 일차적인 사유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역시 시장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의 힘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민정부’ 시절 일시적이나마 전교조의 지도력을 갖고 있던 일부 인사들조차 좌충우돌한 게 사실이다.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존재조건상 교원들은 5.31 교육개혁의 본질을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다. 학습부진아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배려가 이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불경제’로 간주된다.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요구는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의사 민주화 조치로 대치되었다. 교원정년단축정책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무관치 않으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위로부터 강제되는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는 순간 저항이 조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시장주의는 비단 교육부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격랑을 막아내려는 움직임에 노동운동이 조직되고 중심을 잃지 않은 시민운동(학부모운동)이 가세했으며, 일한 대가에 대한 양보를 강요당하는 많은 국민이 함께 해왔다. 어찌 보면, ‘국민의 정부’와 ‘문민정부’의 탄생은 이런 운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한계가 있긴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시장의 무자비함을 교정해달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힘 있는 관료들이 시장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관료집단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집권 정치세력을 매개로 하거나 국민이 직접 강제해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을 내세워 집권한 정치세력은 국민의 명령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해야 했다. 그럴 때 개혁에 필요한 동력이 확보되고, 관료조직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세력이 관료권력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 지난 10여 년간의 대치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큰 틀에서 보면, 형식적인 민주주의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전환시켜 내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개혁의 총론과 더불어 각론을 풍부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 제 부문의 권력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혁 프로그램을 구현해나가는데 필요한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미 분파적 이익집단화 되어 있는 관료권력과의 싸움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으며, 건강한 관료들을 동원할 경로를 마련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만다.(김용일, 2005. 3. 8). 이와 관련하여 ‘참여정부’가 제대로 된 사회ㆍ경제정책을 실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집권엘리트-경제관료-재벌’의 ‘삼각동맹’에 불과하다는 최장집의 비판(프레시안, 2005. 9. 26)은 의미심장하다.
교육부문으로 좁혀보자면, 새로운 사회적 합의(교육개혁 정책의 내용)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정책 환경)을 거머쥘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소극적으로는 반(反)신자유주의, 적극적으로는 공교육의 정치적 가치와 교육 본연의 가치가 구현될 수 있는 사회운영 시스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그러한 방향의 교육개혁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지도력을 확보하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별히 교원이 교육자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마련하여 실천해나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Ⅳ. 결 론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경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교육재정을 감축해야 한다는 교육외적 동기에서 출발하는 한편, 교육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복무해야한다는 사고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교육자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 역시 이 개혁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자를 ‘교육서비스’의 공급자 내지 인건비 절감의 대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 위주의 사회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의 훈련과 의식화의 첨병(‘트레이너’)으로 재개념화 하려는 한 그와 같은 태도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지난 10여 년간의 교육개혁 논리와 실천으로는 우리 교육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교육의 질을 제고는 고사하고 교육의 양극화를 부추길 공산이 크다. 교육의 양극화 내지 계층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우려할만한 수준인 악순환의 고리가 강화되어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자원이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31 교육개혁이 지지부진한 일차적인 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할 것이다.
다른 한편, 시장주의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운동의 힘 또한 5.31 교육개혁 전반의 답보 상태를 초래한 주요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공교육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기능을 지닌 사회제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를 우리는 공교육의 정치적 기능이라 불러왔는데, 그 기능의 핵심이 사회통합에 두어졌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시장주의적 교육개혁의 방향을 선회하지 않는 한,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앞세운 반대론자들 간의 대치는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나가는데 있어 특별히 교원의 능동적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진정 개혁을 바라는 교원들은 교육자 또는 지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다해야 한다. 5.31 교육개혁에서 교사나 교수가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등 교육자들의 사기가 저하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교실이나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든지 간에 궁극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인재 양성과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교육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우리 교육이 이미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층(급)화 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조차 교육문제에 관한 한 개인적인 경험에 터하여 낭만적인 대안이나 담론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긴 하지만, 이 또한 당면한 문제 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과 실천을 통해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준엄한 현실이다. 이런 일을 감당하는데 뒤따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교육주체들이 우리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주역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김 용 일 kymh11@hhu.ac.kr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부설 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해양대 교수
<국문요약>
1995년 5월 31일 ‘문민정부’가 마련한 교육개혁의 청사진은 ‘과거의 문서’가 아니다.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 중반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정부의 교육개혁을 이끌고 있는 기본문서로 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5.31 교육개혁안에 담겨있던 개혁의제들은 “일부 ‘성공’, 대부분 교착상태”에서 여전히 공방의 대상인 것이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라 일컬어지는 교육개혁의 정당화논리 자체의 모순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이 조직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5.31 교육개혁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교육 불평등, 사회양극화 등의 문제가 심화될수록 지금과 같은 교육개혁은 한층 더 버거운 행보를 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국민의 정부’는 물론 ‘참여정부’ 역시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만한 의지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시장주의자들과 공공성 강화론자들 간의 지리한 대치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 전망해볼 수 있다.
주제어: 5.31 교육개혁, 신자유주의(시장주의), 교육의 사사화, 학교민영화, 학교선택(권), 공교육재정 감축, 교육 불평등, 교육의 공공성, 사회적 기본권
Ⅰ. 서 론
2005년은 ‘5.31 교육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 꼭 열 돌이 되는 해였다. ‘문민정부’에서 시작된 교육개혁이 이런 별칭을 얻게 된 것은 개혁 구상의 전모가 담긴 문서가 발표된 날짜 때문이다. 1995년 5월 31일, 바로 이 날 교육개혁위원회가 대통령 보고 형식을 빌어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국민 앞에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통령 보고서에 담긴 구상의 실천적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 성격 내지 본질을 포착한 어떤 개념으로 교육개혁을 명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만큼 5.31 교육개혁안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일종의 ‘암흑상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누가 어떤 목적에서 개혁의 청사진을 내놓은 걸까? 그 핵심 전략은 무엇이고, 개혁을 통해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구이며 또 손해를 볼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대통령 보고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본질을 포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점은 5.31 교육개혁안이 공식화되기 전후 진보진영이 보여준 행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민정부’에 대한 일정한 기대 하에 지지를 표하는 한편, 특정 정책들의 경우 정부와의 교감 아래 입안 단계에서부터 같이 하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그 수용 여부의 문제를 떠나 5.31 교육개혁을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라 부르는데 주저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개혁의 실천적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특히 진보 내지 개혁 진영의 입장은 더욱 분명해졌다. 줄기차게 정부의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대안적 담론과 실천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지속해온 것이다. 이런 대립 구도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물론이고, 임기 중반을 지난 ‘참여정부’에서도 여전하다.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 정부’가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국정기조로 내세웠던 ‘민주적 시장경제론’과 ‘생산적 복지론’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참여정부’에서도 반복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권 인수 단계에서는 공공성 강화 담론과 민주화 담론에 기초한 교육정책 기조를 천명해놓고서(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03. 2 참조), 갈팡질팡하다 마침내 시장주의에 경도되고 만 것이다.
교육부문에서 지난 10여 년간 관철되어온 ‘강력한 힘’, 즉 5.31 교육개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작금의 현실에 기초하여 교육개혁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먼저 제Ⅱ절에서는 교육의 사사화 전략을 통한 공교육재정 감축이 5.31 교육개혁의 요체라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다음으로 제Ⅲ절에서는 10여년이 지난 현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5.31교육개혁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끝으로 제Ⅳ절에서는 이상의 논의를 요약한 후,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교원의 능동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간략한 제언을 덧붙이고 있다.
Ⅱ. 교육의 사사화(私事化)와 공교육재정 감축
5.31 교육개혁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생산적일 듯하다. 즉, 5.31 교육개혁안의 진보적 계기는 무엇일까? 잠시 동안이나마 진보진영 일각에서조차 협조적인 태도를 취했거니와 그 실체가 드러난 지금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5.31 교육개혁이 표방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일정하게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국가관료제의 폐해에 대한 문제제기 내지 공격이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미 식 신자유주의가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조건을 마련해나가기 시작하던 1970년대 말 전후의 상황이다. 당시 시장주의자들은 국가관료제의 폐해를 집요하게 거론하면서 ‘국가 대 시장’이라는 대립구도를 설정하였다.(김용일, 2001: 130-137 참조) 그 논리적 귀결이 바로 “실패한 국가가 아니라 이제 시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1990년대 중반 우리에게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문민정부’는 30여 년간 지속된 군사정권과의 단절을 특별히 강조했었다. ‘문민정부’라는 표현 자체가 그런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행보는 국민은 물론 진보진영 인사들에게도 크게 어필하였다. ‘과대성장국가’라 규정될 정도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의 유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은 물론 진보진영의 문제의식과도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가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를 한껏 증폭시켰다. ‘문민정부’의 손을 거쳐 마련된 개혁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가 존재했었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정황에서 시장주의에 기초한 5.31 교육개혁안이 마련되었으며, 진보진영이 일정 부분 동참하게 된 것이다.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대한 부정이 ‘문민정부’의 진보성으로 인식되었고, 그런 정부의 교육개혁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의 문제를 “민주화된 국가”로 풀지 않고, 시장으로 풀자는 논리 내지 각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에서의 시장이 ‘문민정부’의 진보성을 구현할 기제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무비판적 수용’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5.31 교육개혁안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사려 깊은 진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른 나라의 개혁 논리와 모델, 심지어 구체적인 정책의제까지도 수입해온 것이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영국이 주된 수입처였다는 점이다.
5.31 교육개혁안을 마련한 사람들은 경쟁력 강화 논리(‘교육경쟁력 강화 → 국가경쟁력 강화’)에 입각하여 개혁을 통한 ‘교육의 질 제고’를 목표로 제시했다.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문명사적 변화’가 이런 방향의 교육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교육개혁위원회, 1995. 5. 31: 3-9) 그러면서 내놓은 개혁의 핵심 전략이 바로 공교육 시장화(marketizing)와 학교 민영화(privatization)였다. 시장주의에 의거한 교육의 사사화(私事化) 전략이었던 것이다.
공교육 시장화는 학교와 교원을 ‘교육서비스’의 공급자로 학생ㆍ학부모ㆍ기업을 소비자로 보는 접근방식에 잘 나타나 있으며, 공교육체제 내의 비용-편익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각양각색의 정책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학교와 교원 등 공급 측면에 시장적 경쟁조건을 마련함으로써 교육 서비스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소비자 측면에서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곧 공교육체제에 시장 메커니즘을 구현하는데 불가결한 조건으로 설명되었다.
다른 한편, 학교 민영화 전략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사립학교를 도입하자는 주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도입 방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구상은 학교를 운영하는데 있어 재정(funding)과 관리(통치, governance)를 분리시키자는 주장 등으로 확대된다. 학교운영을 정부가 독점할 게 아니라 민간에 맡겨 그 효과(율)성을 극대화하자는 구상이다.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은 그것이 학교 민영화 전략의 전면화라는 판단에 따른 진보 내지 개혁 진영의 강력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당초 이 개혁 의제는 5.31 교육개혁안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교육개혁위원회 스스로 인정하였듯이 “고교평준화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청하는 것”(1998. 1: 257-258)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 등으로 인해 착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국민의 정부’ 시절 새교육공동체위원회(2000. 7. 11)가 전격적으로 시범학교 도입 방침을 내놓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시범실시 3년차에 결과에 평가를 거쳐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정도로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된 바 있다.
유념해야 할 점은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 전략이 현실에서 명확하게 구분되거나 항상 독립적으로 구사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육의 사사화 전략의 큰 틀 안에서 개별적으로든 양자의 배합을 통해서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시장주의 개혁의 실제 모습이다.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 우회로를 터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자율형 공립학교’ 도입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행보가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당초 “중등학교의 30% 정도까지 자립형 사학으로 전환시키자”(이주호, 2002. 4. 15: 47; 서정화, 1994. 11. 18: 19)고 주장하다가 벽에 부딪히자 좀더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자율형 공립학교’는 기본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 운영을 민간에 맡기자는 발상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의 이론적 뿌리가 1955년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제창한 바우처 제도(voucher system)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정과 관리를 분리시키자”는 것이 그 핵심이라는 점에서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 전략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바우처 제도는 1950년대 말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주(州) 일부에 도입되었으나 1964년 위헌결정을 받게 된다. 1954년 브라운 판결(Brown Decision)에 따른 흑백학교 통합정책(desegregation policy)에 대한 노골적인 사보타지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1990년 밀워키 주에서 바우처 제도를 도입할 때, “학교선택 프로그램”(Milwaukee Parent Choice Program, MPCP)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선택(권)’이란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바우처가 더 이상 시장만능론자(free market zealots)나 극단적인 인종주의자를 연상시키지 않고 정당한 정책 도구로 논의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커다란 공헌을 한 연구자가 바로 첩(John E. Chubb)과 모우(Terry M. Moe)였다.(Low and Whipp, 2002: 34)
시장주의자들에게 있어 교육은 더 이상 “공적인 일”(public matter)이 아니라 ‘사적인 일’(private matter)로 간주된다. 이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기도 한데, 교육권을 사회적 기본권(생존권적 기본권)이 아니라 자유권적 기본권(‘소비자주권’, consumer rights)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이다. 뿐만 아니라 교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하려 한다. 즉, “교육자 → ‘교육서비스’의 공급자 → 유능하고 유순한 노동력의 트레이너”(Scapp, 2001: 33 참조)라는 것이다. 조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치우친 정책을 펴는 게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실제 모습이다.
그러면 이런 방식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목표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공교육재정 감축”이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일차적인 목표였다. 제시해온 목표와 실제로 추구해온 목표가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시장주의의 노선에 따라 교육개혁을 추진해온 나라들의 경우 예외 없이 공교육재정 감소 현상이 나타나는데, <표Ⅱ-1>은 그와 같은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장주의 교육개혁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었다.
<표Ⅱ-1> 영국, 미국, 호주의 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 변화추이
(단위: %)
구 분영 국미 국호 주19706.26.04.619756.85.76.219805.74.95.619854.94.65.419904.35.25.419935.15.25.619944.64.94.619974.65.24.3
자료: CERI(2000), 54; CERI(1997)/ 한국교육개발원(1998), 32; CERI(1996)/ 교육부 (1997), 79.
그렇다면, 누가 공교육재정 감축 요구를 해온 것일까? 다름 아닌 기업과 부유층이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복지국가 유지에 드는 비용을 자신들이 감당해왔다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 말 마침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집권하게 됨으로써 저간의 요구를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육소비자’ 가운데 최종ㆍ최대 고객인 기업(자본)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한편, 부유층의 ‘무절제한 (교육적) 욕망’을 현실화하는 기획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5.31 교육개혁이 추진된 직후 일시적이나마 교육재정이 증가하였다. 공부담 공교육비를 기준으로 1995년 GDP 대비 3.7%에서 1996년 4.1%, 그리고 1997년 4.3%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8년을 고비로 감소추세로 돌아섰다가 ‘국민의 정부’ 말기에 교육환경개선 사업에 막대한 재원을 조달함으로써 지표상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최근 또다시 등락을 거듭하면서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표Ⅱ-2>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사정을 잘 확인할 수 있다.
<표 Ⅱ-2>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교육재정 변화추이
(단위: 억원)
구 분20012002200320042005GDP 규모(A)6,221,2266842,63577,213,4597,783,3228,405,987교육재정 합계(B)215,829281,391309,628333,138352,621교육재정 비율
(B/A, %)4.354.114.294.284.19
* 2004년과 2005년은 추정치임
자료: 교육인적자원부(2005). 행정자료.
그러나 공교육 재정 감축은 개혁의 일차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기업 중심의 사회 조건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의식의 변화, 이것이 시장주의 교육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외국인학교특별법을 둘러싼 논란과 국회에서의 법률 통과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대한민국국회 교육위원회, 2005. 2. 24 참조). 외국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 앞에 법률 제정과정에서 확인된 쟁점들이 일거에 ‘해소’되는 식으로 종결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새삼 ‘경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재계의 행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작년 말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의 발언은 기업 주도 내지 경제논리 위주의 교육개혁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경제적 강자가 대학의 강의실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겠다는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필요에 반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인 셈이다.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비민주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실로 우려할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Ⅲ. 5.31 교육개혁의 현황과 전망
이제 10여년이 지난 5.31 교육개혁의 현 상황을 점검해볼 차례이다. ‘개혁주체’들의 실험은 “일부 ‘성공’, 상당부분 교착상태”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초ㆍ중등교육 부문에서 교원정년단축정책, 제7차교육과정, 자립형 사립고, 학교운영위원회제도 등의 도입에는 ‘성공’했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성공한 정책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고등교육 부문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작품이라 평가하던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얼마 전 법 개정을 통해 원상복귀시킴으로써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지만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잠시 개혁 모델의 ‘수출국’의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정책의 방향을 선회했거나 그 폐해가 드러나 나름대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에서 시장주의자들이 개혁의 효모(酵母) 역할을 할 것이라던 자율학교(grant-maintained school)의 운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학교는「1988년 교육개혁법」(1988 Education Reform Act for England and Wales)에 의거하여 도입되었다. ‘교육소비자’에게는 학교선택권을 학교에게는 학생선발권을 부여하는 한편, 등록한 학생수에 따라 학교재정 규모가 결정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학교는 1999년 기초학교(foundation school, 500개)와 자선학교(voluntary-aided schools, 600여개)로 재편되어 현재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양한 전형 요소와 학생 선발권을 이용하여 ‘골라 뽑기’가 성행하고, 그 결과 교육의 질 제고는커녕 계층 및 인종간의 교육 불평등 심화시킨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West, Pennell, and Edge, 1997: 176). 이에 1997년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 정부는 공교육재정의 감축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과 교직이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GDP 대비 5%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공교육재정을 확충해나가겠다는 것이 선거과정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중요한 약속 가운데 하나일 정도였다.
<표Ⅲ-1>을 보면, 2002년 현재 영국의 공부담 공교육비 규모가 GDP 대비 5.0%에 다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노동당 정부의 공약이 지켜진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태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1997년까지 18 년간 집권한 보수당 정부의 시장주의적 교육개혁의 유산이 그리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사부담률이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정이 그렇긴 하지만, 이른바 ‘제3의 길’(Giddens, 2000/ 박찬욱 외 옮김, 2002 참조)에 따라 과거 보수당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킨 노동당 정부의 공교육재정 확충 의지와 그 노력의 흔적만은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 할 것이다.
<표Ⅲ-1> 영국의 GDP 대비 공교육비 추이
(단위: %)
구 분총교육비공부담사부담1990년4.34.20.11995년5.54.80.72001년5.54.70.82002년5.95.00.9
자료: OECD(2005), 184; 교육인적자원부ㆍ한국교육개발원(2002), 231; CERI(2000), 24
미국 교육개혁의 현황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Reich의 글을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는 Clinton 행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지낸 인물로서 지금은 브랜다이스 대학에 재직 중인 노동경제학자이다.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했다고 평가받는 그가 시장주의의 폐해를 언급하는 가운데 학교 서열화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잘살고 보다 야망이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문제아는 쉽게 밀려나며, 학습 진도가 늦은 학생은 조용히 고립되는, 잘사는 교외 지역의 사립학교나 평판이 좋은 공립학교를 선택하고 있다.ㆍㆍㆍ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공공 재원으로 운영되는 ‘차터 스쿨’을 선택한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입학과 퇴학에 있어 일반 공립학교보다 더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주에서 차터 스쿨은 드러내놓고 특정 학생들을 배척하거나 퇴학시키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습 능력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근처의 잘사는 동네 아이들만 입학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학교 입장에서 원하지 않는 학생이 들어오는 것을 교묘히 막고 있다.”(고딕의 강조는 필자, Reich, 2000/ 오성호 옮김, 2001: 282-283)
계층(급) 대응적인 학교 서열화 현상이 심화되는 미국의 상황을 잘 전해주는 내용이다. 우리의 자립형 사립고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유형의 사립학교가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이 교외 지역의 ‘평판이 좋은’ 공립학교이다. 교육재정은 물론 학부모의 경제 및 사회적 자원 등을 통한 지원이 풍부한 부유층 거주 지역의 학교들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설립 주체를 논외로 할 때 우리의 특목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차터 스쿨인데, 이것이 바로 앞에서 살펴본 ‘자율형 공립학교’ 내지 ‘공영형 혁신학교’의 모델이 되는 학교다. 맨 아래 단계에 도심부의 공립학교가 존재한다. Reich가 시장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적 균형”의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까닭은 이런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다시 우리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기로 하자. 서론에서 ‘국민의 정부’가 ‘문민정부’ 시절 마련된 5.31 교육개혁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왜 그랬던 것일까?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정승건(1999: 285-291)은 집권 정치세력이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관료권력에 포위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의 틀을 사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집권 정치세력은 개혁의지가 충만했는데, 관료권력과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좌절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집권 정치세력이 그런 ‘면죄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교육개혁에 관한 한, 그들은 당초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스스로 천명한 국정운영의 기조를 구현해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 결과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을 “관료적 재해석”을 거쳐 그대로 계승하고 말았다. 집권정당의 의회권력 역시 나름의 역할을 감당해낼 만한 제반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었다. ‘국민의 정부’와 관련된 ‘개혁세력’의 인적ㆍ물적 자산과 관련 네트워크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정권 인수 단계에서는 일단 정책내용(policy contents)상의 방향 선회 과정을 거친 게 사실이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03. 2)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개혁에 필요한 지도력 형성에 실패하였다. 특히, 정책 환경(policy context) 관리 능력의 부재로 예기치 못할 정도로 빨리 관료조직을 통제하지 못하는 형국이 조성되었다. 얼마 지나서는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분명치 않은 인사를 수차례 되풀이 하면서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집권한 정치세력의 ‘능력 없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김용일, 2005. 3. 8)
일찍이 전면적인 인적 보완이 없는 한 무언가 기대할만한 여지가 많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적절치 못한 인사가 되풀이되는 등 일찌감치 ‘국민의 정부’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그대로 반복하는 정세가 조성되고 만 것이다. 그것이 지난 3년여의 상황이다. 최장집(2003)의 표현을 빌자면, 교육부문에 관한 한 두 정부에 걸쳐 “열망과 실망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참여정부’의 집권 후반기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앞에서 5.31 교육개혁의 현황에 대해 “일부 성공, 대부분 교착상태”라고 했다. 더욱이 몇몇 제도를 도입하고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고는 하나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되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라면, 지난 10년간 5.31 교육개혁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실질적인 ‘패배의 경험’을 되풀이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갈등을 유발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 책임을 누군가가 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란 뜻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5.31 교육개혁의 이념적 기저인 신자유주의 자체의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국가 없는 시장’은 형용모순이며 역사상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오히려 시장 논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상황은 민주주의에 대한 독(毒)이며,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킨다.(최장집, 2005; 이정우, 2005. 8. 10; Chomsky/ 강주헌 옮김, 2004; Bok, 2003) 자신들의 기획을 ‘다양성’, ‘수월성’, ‘학교선택권’ 등과 같은 가치로 포장할 수는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곧 그 본질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5.31 교육개혁(안)이 우리 교육현장에 착근하지 못하고 부동(浮動)하는 일차적인 사유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역시 시장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의 힘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민정부’ 시절 일시적이나마 전교조의 지도력을 갖고 있던 일부 인사들조차 좌충우돌한 게 사실이다.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존재조건상 교원들은 5.31 교육개혁의 본질을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다. 학습부진아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배려가 이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불경제’로 간주된다.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요구는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의사 민주화 조치로 대치되었다. 교원정년단축정책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무관치 않으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위로부터 강제되는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는 순간 저항이 조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시장주의는 비단 교육부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격랑을 막아내려는 움직임에 노동운동이 조직되고 중심을 잃지 않은 시민운동(학부모운동)이 가세했으며, 일한 대가에 대한 양보를 강요당하는 많은 국민이 함께 해왔다. 어찌 보면, ‘국민의 정부’와 ‘문민정부’의 탄생은 이런 운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한계가 있긴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시장의 무자비함을 교정해달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힘 있는 관료들이 시장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관료집단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집권 정치세력을 매개로 하거나 국민이 직접 강제해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을 내세워 집권한 정치세력은 국민의 명령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해야 했다. 그럴 때 개혁에 필요한 동력이 확보되고, 관료조직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세력이 관료권력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 지난 10여 년간의 대치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큰 틀에서 보면, 형식적인 민주주의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전환시켜 내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개혁의 총론과 더불어 각론을 풍부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 제 부문의 권력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혁 프로그램을 구현해나가는데 필요한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미 분파적 이익집단화 되어 있는 관료권력과의 싸움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으며, 건강한 관료들을 동원할 경로를 마련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만다.(김용일, 2005. 3. 8). 이와 관련하여 ‘참여정부’가 제대로 된 사회ㆍ경제정책을 실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집권엘리트-경제관료-재벌’의 ‘삼각동맹’에 불과하다는 최장집의 비판(프레시안, 2005. 9. 26)은 의미심장하다.
교육부문으로 좁혀보자면, 새로운 사회적 합의(교육개혁 정책의 내용)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정책 환경)을 거머쥘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소극적으로는 반(反)신자유주의, 적극적으로는 공교육의 정치적 가치와 교육 본연의 가치가 구현될 수 있는 사회운영 시스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그러한 방향의 교육개혁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지도력을 확보하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별히 교원이 교육자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마련하여 실천해나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Ⅳ. 결 론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경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교육재정을 감축해야 한다는 교육외적 동기에서 출발하는 한편, 교육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복무해야한다는 사고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교육자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 역시 이 개혁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자를 ‘교육서비스’의 공급자 내지 인건비 절감의 대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 위주의 사회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의 훈련과 의식화의 첨병(‘트레이너’)으로 재개념화 하려는 한 그와 같은 태도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지난 10여 년간의 교육개혁 논리와 실천으로는 우리 교육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교육의 질을 제고는 고사하고 교육의 양극화를 부추길 공산이 크다. 교육의 양극화 내지 계층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우려할만한 수준인 악순환의 고리가 강화되어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자원이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31 교육개혁이 지지부진한 일차적인 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할 것이다.
다른 한편, 시장주의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운동의 힘 또한 5.31 교육개혁 전반의 답보 상태를 초래한 주요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공교육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기능을 지닌 사회제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를 우리는 공교육의 정치적 기능이라 불러왔는데, 그 기능의 핵심이 사회통합에 두어졌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시장주의적 교육개혁의 방향을 선회하지 않는 한,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앞세운 반대론자들 간의 대치는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나가는데 있어 특별히 교원의 능동적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진정 개혁을 바라는 교원들은 교육자 또는 지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다해야 한다. 5.31 교육개혁에서 교사나 교수가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등 교육자들의 사기가 저하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교실이나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든지 간에 궁극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인재 양성과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교육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우리 교육이 이미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층(급)화 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조차 교육문제에 관한 한 개인적인 경험에 터하여 낭만적인 대안이나 담론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긴 하지만, 이 또한 당면한 문제 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과 실천을 통해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준엄한 현실이다. 이런 일을 감당하는데 뒤따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교육주체들이 우리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주역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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