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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1월호/384호] 사설_누구를 위한 분리인가?(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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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4-01-11 16:11 조회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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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분리인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디로 분리되고 싶은지, 누가 지도하면 좋은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교장실에서 교장·교감, 생활지원부실에서 생활지원부 교사, 학년부실에서 학년부 교사, 위클래스에서 상담교사’ 네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다. 마치 “몇 대 맞을래? 네가 정해”라고 하고선 당신이 선택한 것이니 민주적인 절차였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2023년 9월 이후 학교가 달라졌다. 학부모들은 ‘학생생활지도 고시’의 존재도 모르고 내용은 더욱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학교가 달라졌다는 것은 확실히 체감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부 고시는 분리 규정 외에도 문제가 되는 조항이 많다. 하지만 소지품 검사, 휴대폰 압수, 물리적 제지와 달리 ‘분리’는 공간과 인력의 문제가 해결돼야 하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선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시키자고 법적, 행정적, 재정적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을 넘어 우리 교육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후퇴했나 개탄할 일이다.

 

행정규칙인 고시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러자 근거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명백한 악법이다. 이미 여러 악법들이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들, 정치기본권이 없어서 고발당한 교사들, 정권에 따라 바뀐 집시법을 위반한 시민들이 악법의 피해자고 증인이다.

 

법률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12조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 구속 ·압수 · 수색 ·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37조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학생의 어떤 행동이 국가안전보장을 위협하고 국가의 질서를 무너뜨리는가?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쫓는 것이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분리라고 명시했지만 사실상 자유를 박탈하는 ‘격리’에 해당되는 행위를 법률로 제정한다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다. 학생은 국민이 아닌가?

 

교권보호법 논의 때마다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의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고 지적돼 왔다. 이례적으로 교육부는 고시 해설서까지 발행했다. 해설서에는 ‘졸거나 잠을 자는 학생’도 면학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에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적혀 있다. 학부모를 설득할 때 ‘다른 학생의 학습권이 방해받기 때문에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을 분리시킨다.’고 말한다. 대부분 ‘분리 조치되는 학생은 뉴스에 나오는 심각한 경우’라고 오해한다. 아무도 학부모에게 잠을 자는 학생도 분리될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학생생활규정 개정 시 학부모 의견 수렴은 필수 사항이다. 학부모 설문조사 질문에 ‘당신 자녀’를 추가해야 한다. “귀하의 자녀가 학습권을 박탈당하고 교실 밖으로 분리돼도 괜찮습니까? 어디로 보낼까요? 누가 지도하면 좋을까요?”

 

부득이하게 분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도전행동’, 감정 조절이 안 돼서 폭력으로 나타난 경우 등 말 그대로 ‘성찰’의 시간, ‘숨 고르기’ 시간이 필요할 땐 해당 학생을 위해 잠시 공간을 분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수업이 아닌 ‘학생을 위한’ 분리여야 한다. ‘한국인의 식판’이라는 예능 프로에 소개된 ‘독일 마가레테 슈타이프 초등학교’ 사례를 교육 관계자 모두 필수로 봐야 한다. 왜 교실에 교사 여러 명이 상주해야 하는지, 성찰실은 어떻게 꾸미고 운영해야 하는지, 성찰실을 두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분리 조치는 학생을 교실에서만 내쫓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말 잘 듣는 학생만 남은 교실에서 소수의 교사가 ‘수업만 하는’ 학교, 이것이 교육당국이 만들려는 학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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