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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9,10월호/381호] 교육현장이야기_‘거꾸로캠퍼스’ 를 소개합니다(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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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10-17 15:06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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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캠퍼스’ 를 소개합니다

 

와 선생님과 이럴 수도 있어?!

앞으로의 미래, 진로를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3년 전만 해도 선생님이란 직업, 거캠이라는 직장에서 일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네요.”

 

제 이전 직업은 교사가 아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제 이전 직장은 학교가 아닌 컨설팅 기업이었습니다. 학교도 아닌 회사에서, 정장과 컴퓨터 코드, 보고서가 익숙한 저에게 어느 날 거꾸로캠퍼스가 찾아왔습니다. 우연히 학생들에게 데이터 사이언스에 대한 수업을 하게 되었죠. 사내에서 대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본 경험은 있었지만 중 ·고등학생 나이의 학생들을 만난다는건 당시에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사전 미팅으로 만나본 거꾸로캠퍼스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저희 학교가 다른 학교와는 다를 꺼에요. 말보다는 한번 경험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뭐가 다르다는 걸까?”라는 의심 절반, 두려움 절반으로 거꾸로캠퍼스와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만에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학교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요.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학생들이 선생님과 관계를 맺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꾸로캠퍼스에는 교무실이 없고, 두 글자 별명을 쓰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 덕분일까요? 학생들은 정말 수시로 선생님을 찾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화장실을 가다가도 “도~~오~~령!!(거꾸로캠퍼스에서 제 별명입니다.) 제가 블라블라”, “어제 저녁에 블라블라”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때론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기도, 대뜸 계단에 앉아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방과 후 옥상에서 걱정과 고민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시작은 “도~~오~~령~!!”이죠. 선생님을 붙이지도 않습니다. 

○○ 님, ○○ 연구원이 익숙한 저에게 이런 문화는 굉장히 새롭고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특별한 존칭 없이 서로의 별명을 부르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어느 학교보다도 학생과 교사가 밀착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이 해야만 하는, 힘든 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을 하러 간다는 느낌보다는 학생들을 만나러 간다, 학생들과 함께하러 간다는 마음이 커졌고, 거꾸로캠퍼스에 있는 시간은 일이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뛰고 마음이 움직이는 즐거운 시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일을 하는(학생들을 대하는) 제 자신을 보고 거꾸로캠퍼스가 일해 보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이 학교의 특별함, 이곳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벌써 거꾸로캠퍼스에서, 교사란 직업으로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이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 야간에는 교육 대학원을 병행하기도, 좋은 사회 수업을 위해 매일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기도, 제가 가진 전문성을 학생들에게 전하기 위해 방과 후 스터디를 하기도, 때론 학생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아이돌을 공부하기도, 춤을 추기도 하면서요. 무한한 동력을 선물하는 곳, 거꾸로 캠퍼스에서 저는 이렇게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거꾸로캠퍼스 교사 임채현(도령)

 

교사보다 학생 목소리가 큰 곳

새벽 다섯 시 반. 알람 소리에 눈을 뜹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시각은 6시. 목적지는 아리랑 국제 방송입니다. 방송국에 도착하면 그날의 코너 아이템을 정하고 방송 원고를 작성한 후 생방송 스튜디오로 들어갑니다. 코너 시그널 음악과 함께 빨간 온 에어 불이 들어오는 시각은 7시 25분. 예리카, 큐. 

 

2001년 6월. 대학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저는 KBS 국제방송 영어 라디오 진행자 오디션에 덜컥 합격해버렸습니다. 오디션을 보던 날 저는 난생 처음 방송국 스튜디오 마이크 앞에 앉아 “내게 오는 길”이라는 발라드 곡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가수 성시경을 인터뷰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영어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해왔습니다. KBS, EBS, TBS eFM, 아리랑국제방송에서 시사, 교양, 음악, 여행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국제회의 통역사, 국제행사 MC, 번역가, 영어 성우, 대형 소속사 K-Pop 아이돌 그룹의 영어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부터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초대 에디터로 활동하며 한국의 미식 문화를 알리기도 했고, 2019년에는 식품 제조업에 뛰어들어 가정 식사 대체 식품을 개발하여 마켓 컬리에 판매하기도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바쁘게 지내던 2019년 가을, 저는 거꾸로캠퍼스라는 이름도 신기한 학교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어느 날 친한 대학 선배로부터  학생들에게  글로벌  마인드셋(mindset)을 심어줄 수 있는 영어 교사를 찾고 있는 고등학교가 있다고, 한 번 지원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기회에 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학교’라는 곳은 저에게는 최후의 선택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낸 저에게 한국 교육은 풀어야 할 실타래들이 너무 많은, 잡음투성이이지만 그 누구도 실질적으로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 거대한 코끼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제 생각을 읽은 선배는 한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일반 학교가 아니야. 방문해서 헤드 티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수업 참관도 해 봐.” 선배에 대한 신뢰 반, 호기심 반으로 저는 그날 아침 방송을 마치자마자 혜화동으로 향했습니다. 거꾸로캠퍼스 헤드 티처와 면담을 하고, 학생과 교사들의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았습니다. 수업이 한참 진행 중인 공간은 시끌벅적했고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습니다. 수업 중인데도 일부 학생들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간식도 먹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런 아이들을 제지하는 교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교실 앞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없었어요. 교사들은 모둠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에 묻혀 일대일로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는 교무실이 없나?”, “학년제가 없다더니 학생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있네.”, “여기는 교사보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크군.” 

그날 무엇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는 지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학생이 주도하는 배움과 성장? 이런 교육이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시험이 없고 성적표가 없어? 이게 가능해?” 집으로 가는 내내 저의 머릿속을 지배한 질문은 “이런 교육이 실현 가능할까?”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알 수 없는 희망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뉴얼도 정답도 검증된 결과도 없지만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교사, 학부모, 학생들의 용기가 저를 움직였던 것 같아요. 나도 이 움직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교사는 아니지만, 그동안 쌓아온 나의 전문성으로 거꾸로캠퍼스의 성장에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질문을 안고 거꾸로캠퍼스에 정식 교사로 합류한지 만 3년이 지났습니다. ‘예티’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되었고, ‘제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스럽고 생기발랄한 학생들과 매일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어요. 저는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습니다. 방송 준비를 위해 매일 아침 국내외 뉴스를 꼼꼼하게 챙겨 읽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흐름이 보입니다. 이것은 제가 수업을 준비할 때에도, 문제 정의 프로젝트 코칭을 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뉴스를 읽으며 학습 자료를 스크랩하기도 하고,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최신 이슈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기도 합니다. 학생들로부터 ‘영어 수업을 통해 글로벌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 또는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어들었다’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교사” 예티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는 ‘방송인’ 예리카가 있었기에 지금의 ‘교사’ 예티가 있다고 믿습니다. 평생 교사로 살아온 존경하는 동료들과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거캠의 영어 교사로, 프로젝트 코치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꾸로캠퍼스에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꾸로캠퍼스 교사 박수연(예티)

 

넘어져보기 좋은 곳

거꾸로캠퍼스에 처음 입학할 때 나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어쩌면 많이 부족한 학생이었다. 공교육에서만 9년을 지내는 동안 무언가 특별한 경험이나 도전 없이 지내왔던 나에게 거꾸로캠퍼스는 매우 큰 도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대해 모르는 것도, 미숙한 것도 매우 많았다. 


입학지원서 쓰는 방법을 몰라 질문 3개에 단 7줄을 써서 제출했다. 심지어 학교 입학에 있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입학설명회도 듣지 않았으며 거꾸로캠퍼스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배움장터마저 절반 정도밖에 듣지 않았다. 학교 홈페이지와 소개 영상 몇 개만 보고 면접에 임한 결과 “학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함”이라고 평가받았다.  

돌아보면 어떻게 입학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과 탈락 그 경계선에 걸쳐서, “주의가 필요한 학생”으로.

 그렇게 거꾸로캠퍼스에 오고 어느 덧 2년 반이 지났고, 정든 학교를 엑시트 하게 되었다. 거꾸로캠퍼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지금의 나와 처음 입학할 때의 나를 비교해 보면,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지금은 작은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창업을 바라보는 좋은 성과를 거둔 리디퍼라는 팀에서 일하고 있다.  

소심하고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던 내가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 헤드가 되어 다양한 학생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하거나, 나를 믿고 열심히 따라와 주는 친구들도 있고, 학교를 잘 모르던 학생에서 남들보다 학교를 더 좋아하고 잘 아는 학생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꾸로캠퍼스는 넘어져 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거꾸로캠퍼스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렇기에 자연히 접할 수 있는 경험과 도전할 기회가 많아진다.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다시 시도할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자유롭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성인이 되기 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일해보고, 여러 외부 사람을 만나보고, 내가 힘을 쏟은 프로젝트로 사회에 소소하게나마 영향을 끼친다. 성인이 되어 나아갈 현실은 이보다 훨씬 힘들고 복잡할 것이다. 그런 현실로 나아가기 전에 실패를 많이 해보고 이를 통해 나를 보완하고 성장하는 것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기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거꾸로캠퍼스는 실패의 땅으로서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 주었다.

 거꾸로캠퍼스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실패를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힘든 상황은 오기 마련이고 모든 게 완벽한 삶을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불가능한 완벽함에 매달리지 않고 당연히 찾아오는 실패를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힘든 상황이 올 때마다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겪어야 하는 법이다. 

당장의 실패는 힘들고 어두울지언정 결국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생각을 가지니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부정적인 것에서도 결국 긍정적인 면을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약한 알과 같았던 나는 이곳에서 조금은 더 단단한 바위가 될 수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들어온 거꾸로캠퍼스였지만 나는 2년 반 전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거꾸로캠퍼스 졸업생 윤상엽(와이)

 

나답게, 함께 사는, 거꾸로!

딸은 거캐머(거꾸로 캠퍼스에 다니는 사람)다. 일반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학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아 노래, 스포츠, 사진, 영화, 역사, 과학, 바리스타, 학생회장 등 중학교 생활은 활기찼다. 대학을 향해 불철주야 공부만 하는 친구들 앞에서 본인의 경험이 무가치하 

게 느껴진다며 불안해하기 전까진 말이다. 학생회장으로서 도교육청의 권고에 따라 선도 활동을 인권의 관점에서 새로 자리매김하려 한 건 매우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선도를 일종의 권력으로 누리려는 학생회 임원들, 통제 없는 선도는 선도가 아니라는 학부모들, 문제점을 알면서도 손쉬운 단속 수단을 버리지 못한 교사들, 그 속에서 딸은 의기소침해져갔다. 일반 고등학교에 가면 소생 불가능할 것 같았다. 대안학교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딸은 “호기심 대자극 프로그램”에, 나는 “미래 역량 강화”라는 말에 반해 거꾸로 캠퍼스(이하 거캠)를 선택했다.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온 딸은 환하게 웃었다.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어” 거캠의 1년은 4모듈(모듈당 11주)로 짜여져 개인이든 팀이든 모듈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낯선 시스템이지만, 딸은 첫 모듈을 호기롭게 시작했다. 팀원은 물론 코칭 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발표해야 하는 순간들, 의외로 딸은 자주 긴장했고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 프로젝트를 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다가 본인이 원한 만큼의 성취를 이뤄내지 못해 마음 상해했다. “자기다워지고 싶어서” 선택한 곳인데 자기다워지는 것 자체가 어려운 모순에 빠졌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3.4모듈 문화행사 부장 역할을 맡았다. 가장 큰 행사인 1박 2일 여행을 기획하며 혼란은 가중됐다. 딸은 부서 분위기에서 활동의 결과까지 모든 책임이 자신한테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잘 해 내고 싶은 마음에 압도당해 기진맥진이었다. 다행히 여행은 성공리에 진행됐고, 얼마 후 딸은 밝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가능했어. 나도 이미 잘 하고 있었더라고. 왜 이제야 보이는 거지?” 뒤에서 말없이 지원하신 선생님들, 회의마다 참석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준 선배들, 자기 역량만큼 협력한 부원들, 지닌 끼를 유감없이 발산하며 여행을 즐긴 거캐머들, 각자 자신에게 충실했던 것이 모자이크처럼 얽혀들어 순탄한 여행이 가능했음을 딸은 절감한 듯했다. 자신처럼 사람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있음도 어렴풋이 느끼는 것 같았다. 세 뼘은 큰 것 같았다. 무학년제, 경쟁 말고 협력, 시험 말고 포트폴리오, 성적표 대신 성장 기록부, 일방적 강의 말고 자기 주도 프로젝트 수행, 졸업장 대신 엑시트(Exit), 정답 말고 자기다움의 길로, “넘어져도 괜찮아, 일어나 다시 가면 되지 뭐.” 격려를 아끼지 않는 코칭 샘들 덕분에 딸은 마침내 안도하며 자기 날개를 편 것 같다. 

지난해 딸이 속한 팀은 “버려지는 옷걸이”로 시작한 “자원의 재순환”을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선택했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과정을 거쳐 올해 3모듈부터는 어떻게 해결할 것 인가에 집중할 예정이다. 해결의 도구로 쓰기 위해 Coding, Design, Making, Marketing 등 해당 분야 전문가 선생님들에게서 이론과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건 걍 하는 모습을 되찾은 딸은 지금, 실패해도 밝고 가볍게 가는 법을 연습 중이다.

거꾸로캠퍼스 학부모 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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