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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5월호/377호] 지부지회소식_영암지회(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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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5-10 13:39 조회1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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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봄, 함께 하는 기억

 

 <영암지회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 순례> 

작년에 나는 가족들과 함께 팽목항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팽목항에는 세월이 흐른 만큼 바람과 햇볕에 빛이 바랜 노란 리본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막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사람들이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잊은 것 같아.” 사람들의 발걸음이 거의 없던 그날, 막내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빛이 바랜 노란 리본들을 보며 나는 문득 ‘빛바랜 노란 리본들처럼 잊지 않겠다던 약속이 빛 바래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세월호 팔찌를 차고 다니고, 세월로 리본을 달고 다니고, 때가 되면 현수막을 거는 것 말고 의미 있게 기억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마실길”이 떠올랐다. 함께 걸으며 추모하고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았다. 

 

“마실길”은 2022년에 공식적으로 만든 영암지회 등산 소모임이다. 등산이라 쓰고 동네 마실 나가듯 살방 살방 걷는 소모임이다. 작년에 둘레길 중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갈만한 곳들을 한 달에 한 번씩 걸었다. 22년 4월 16일은 토요일이기도 하여 4월 마실길을 진도 팽목항으로 정해 지역의 학부모, 학생들과 세월호 8주기 추모 걷기를 진행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줘서 힘도 나고 고맙기도 하고 의미도 있는 마실길이었다. 

 

올해 “마실길”은 좀 더 멀리, 넓은 곳으로 가보기로 하여 3월에는 서해랑길 1코스(해남 땅끝탑→해남 송지면사무소)를 걸었고 4월에는 16일에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순례를 진행하기로 했다. 회원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함께 연대하고 있는 여러 단체들에도 함께하자고 홍보했고 그 결과 우리 영암지회 회원, 한살림 회원, 정의당 당원 등이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 순례에 함께 해주셨다. 

4월 16일 오전에 해가 떴다가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가 날씨가 다소 오락가락해서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비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오후 1시 기억의 숲에서 만났다. 우리 가족, 학산초 학생들과 함께 온 우리 부지회장님 가족, 지회장님 가족, 지역에서 열심히 살고 계시는 한살림 회원, 정의당 당원도 계셨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운 분들이었다. 진도 기억의 숲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헨번 페러가 숲 조성을 제안했고, 여기에 3,000여 명의 국민이 참여하였다. 숲 입구에는 조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각인된 현판이 있고 은행나무 사이에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인 기억의 벽이 있다. 또 끝까지 세월호 희생자 수습 작업을 한 후 그 후유증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꼭 기억해야 할 사람 고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도 있다. 이렇듯 많은 의미와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의지가 담긴 기억의 숲에는 우리 일행 외에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지만 그곳에 있는 우리들은 한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의 숲에서 기억 문화예술 공연이 진행됐다. 다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던 터라 주변에 앉거나 서서 공연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공연을 듣되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후자에 가까웠다. 여전히 슬프고 아픈 참사이지만 눈물만 흘리기보다는 함께 기억하는 것에 더 의미를 두었다. 기억문화예술공연이 끝나고 기억의 숲에서부터 팽목항까지 노란 조끼를 입고 노란 깃발을 들고 우리는 함께 걸었다. 집에서 쉬고 싶은데 마지못해 끌려 나온 사춘기 중 학생 한 명은 걷는 내내 이마가 찌푸려져 있었고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중학생 몇몇은 카메라를 피하기 바빴고 한 초등학생은 언제 도착하느냐 자주 묻곤 했다. 

그 나이 때 나올법한 반응들이 곳곳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런 일상이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찌르르했다. 팽목항까지 가는 길에 유채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유채꽃을 보며 2014년 4월 흔들리는 배 안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기대하는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리며 마음속으로 툴툴거리던 친구들도 있었을 것인데 일상을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친구들과, 그 후로 당연한 일상이 없었을 유가족들이 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끔 집 밖에서 일을 보다 간혹 문득문득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좋은 걸 볼 때 ‘함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얼마나 만지고 싶을까?, 얼마나 불러 보고 싶을까? 얼마나 안아 보고 싶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이, 유가족들의 일상이 무섭고 캄캄한 차가운 바닷속을 헤매고 있으실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함께 걷는 사람들 모두 각자 이런저런 생각을 발걸음에 담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사의 아픔과 성역 없는 진상규명, 생명 안전사회 건설 등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숱한 무거운 짐을 우리가 함께 들어서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한 시간여 그렇게 걷다 보니 드디어 팽목기억관에 도착했다. 팽목기억관에 도착해보니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어묵, 떡볶이, 음료, 떡 등을 무료 나눔 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 우리 일행도 마른 목을 축이고 출출했던 배를 채우고 나서 9주기 기억식에 함께했다. 팽목항을 둘러보니 여전히 노란 리본은 빛바래져 있었다. 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던 우리의 약속은 빛 바래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의 눈에는 한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안전사회를 향해 손 맞잡고 끝까지 함께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다시금 굳게 약속했다. 미약한 힘이나마 끝까지 함께하자고. 동시에 사춘기 중학생들도, 지역의 어른들도 내년 10주기 기억순례에도 함께 해 줄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막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4.19 혁명은 달력에 써져 있는데 왜 세월호 참사는 9년이나 됐는데 달력에 안 써져 있는 거야?” 순간, 나의 말문은 막히고 말았다. 나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나는 참된 어른인가?’ 스스로 에게 던진 질문부터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9년이 지나는 동안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이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전히 곳곳에서 안타까운 희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작년 10월에는 안타까운 이태원 참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9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태원 참사 때도 대통령 자리에 앉은 이는 외면하기 바빴고 책임져야 할 이들은 외면하기 바빴다.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아냥거림마저도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막내의 물음은 우리 어른들에게, 우리 사회에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더더욱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 사회를 만들어가는 마실길, 그 길을 우리 모두 함께 뚜벅뚜벅 걸었으면 한다. 함께 걷자! 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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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영암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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