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7월호/379호] 마중물_대학 서열 체제가 초래한 무서운 결과_박정원(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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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7-10 15:20 조회688회 댓글0건본문
대학 서열 체제가 초래한 무서운 결과
‘과열 교육의 나라’ 한국에서 초·중등교육이란 무엇인가? 안타깝지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 입학을 위한 조건들에 종속된다. 진학할 대학과 전공 선택은 정말 이상하다. 적성이나 취향은 배제한 채 대학 서열과 성적 서열을 비교해 선택한다. 이과 계열 학생들은 의약학 계열 학과 입학에, 문과는 경영계열 입학에 목을 맨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무엇을 배우고, 졸업 후 어떤 삶이 기다릴까 하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학부모나 학생은 별로 없다. 소위 명문대학만 들어가면 자녀의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정말 기형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요즘 한국에는 학자의 길을 걸으려는 학생이 거의 없다. 배우고 익히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학생이 없다. 4년의 수업연한을 채우고 나면, 각자의 직업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인생의 목표가 진정한 행복인지 아니면 돈이나 권력인지 알 수 없다. 진리를 찾겠다는 의지에 불타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은 극소수다.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에서도 대학원 지원자가 부족한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정말 기형적인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가 어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자. OECD가 펴낸 <Education at a Glance 2022>에는 회원국 25~64세 인구의 최종학력 비율이 실려있다. 아시다시피, 25~64세 인구는 생산과 소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연령 계층이다. 한국은 대졸자(전문대 포함)의 비율이 4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오직 캐나다만 50%로 한국보다 높다. 독일은 19%, 이탈리아는 5%이며 핀란드도 25%에 지나지 않는다.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는 모두 20%대에 머물고 있다. 대학 진학률 세계 1~2위를 다투는 한국은 과연 대졸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이 학력을 자랑하기엔 이르다. 석사와 박사학위 소지자의 비율을 보면, 연구자/전문가 양성에서 취약한 한국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의 25~64세 인구 중 석사나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의 비율은 4%에 불과하다. 다른 선진국들을 보면 미국은 14%, 영국 15%, 프랑스 15%이다. 대학 진학률이 낮은 독일과 이탈리아도 석박사 학위자 비율은 각각 13%와 15%에 이른다. 북유럽 고행복도 국가들은 더욱 높아 덴마크 16%, 핀란드 17%, 스웨덴 18%, 노르웨이 14%에 달한다. 스위스는 21%이고, 슬로베니아는 23%이다. 부자 나라 룩셈부르크는 이 비율이 31%에 달해,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 10명 중 3명이 석사 아니면 박사이다. OECD 전체 평균은 15%이다. 이러니 한국은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별로 없는 나라라고 말하더라도 억울할 일이 없다. 양질의 학문과 교수/연구자/전문가의 존재가 문명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생각한다면, 이 수치는 우리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과학 기술 혁명이 눈부시게 진행되고 있고 경제 산업환경이 급변하는 현실에서, 한국의 학사들은 과연 세계의 석박사들에게 밀리지 않고 경쟁할 수 있을까? 한국의 과학 기술과 인문 사회과학은 인류문명을 리드할 수 있을까? 대학 교육의 질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높지 않다고들 하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학문연구를 기피 하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경제적 요인 때문이다. 대학 졸업자로서 취업했을 때 평생 벌 수 있는 수입에 비해 대학원 졸업자로서 얻을 생애 소득이 더 크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많은 교육비가 필요하지만, 국가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아주 적다. 졸업 후에도 비정규직 교수나 연구자가 되어 궁핍하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
둘째, 대학 서열 체제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주된 목적이 학벌 편입에 있는 학생이 많은데, 이들의 목적은 대학 졸업으로 달성된다. 굳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전공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입학할 이유가 없다. 소위 명문대 학부 출신을 비명문대 석박사학위 소지자보다 더 알아주는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편견도 존재하고 있잖은가!
한국의 대학원 교육 붕괴는 고액의 교육비(기회비용 포함) 부담과 불투명한 노동시장 전망, 및 망국적 서열화로 뒤틀어진 대학 교육시장의 성과물이다. 이 장벽들을 혁파해야 대학원 교육이 정상화되고, 개개인의 행복도 증가하게 된다. 점수가 아니라 적성에 따라 진학하고 인생을 살아야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다. 무엇보다도 대학 서열 해체가 꼭 필요하며, 대학(원) 교육비 국가 부담 원칙이 확고히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학문하는 즐거움을 깨닫도록 하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다. 학문연구는 대부분 사익 추구라기보다 공익 추구 활동이므로 그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 위해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비정규직을 없애는 일은 국가의 책임이다. 대학원 교육의 정상화와 학문연구 기반의 확충은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핵심 기반이며,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학문이 무너진 나라에 미래는 없다!
박정원 (상지대학교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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