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8월호/380호] 정책_학부모회 활성화가 답이다_김성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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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8-07 16:20 조회369회 댓글0건본문
학부모회 활성화가 답이다
서울 S초 교사가 학교에서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한 사건이 촉발되어, 교권을 보호하려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학생인권조례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는 교권 침해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전형적인 ‘갈라치기’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학교 붕괴를 말하기도 하는데, 학교 공동체의 붕괴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과거에는 지역에서 학력이 가장 높았던 직군이 교사였고, 전통적으로 존중을 받았다. 80년대생 학부모는 대부분 대학을 나왔고, 공동체보다는 개인 속성이나 권리를 찾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다자녀가 아니라 한 명, 많아야 두 명 정도이다. 자녀에 대한 애착을 가진 ‘헬리콥터 맘’이 ‘몬스터 페얼런츠’로 발전한 것일까? 학급에서 자녀가 다양한 상황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다 보니 극단적인 상황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학교공동체가 약한 상황에서,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일부 학부모는 우선 민원을 넣거나 법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일부에 의해 남용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하게 되면, 교사가 방어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자녀가 집에서 보이는 모습과 학교에서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동시에, 부모의 책임성을 상실하고, 타인이 또는 교육기관이 책임져 달라는 요구일 수도 있다. 학창 시절 학교에 관한 기억과 경험이 좋지 못했고, 그것이 학교와 교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아이가 피해를 받았거나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과 상상이 증폭되면서 분노로 이어진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고, 의심만으로 교사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아동학대 의심 시 사법경찰이 즉시 현장에 출동하고, 교사와 아동이 분리되어 교사가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제도를 일부 학부모가 악용을 하였다. 감당이 안되는 교사들은 병가 내지는 휴직을 내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논의가 있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데, 면책권까지는 아니어도 방어권은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으며, 교권보호위원회의 역할과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당사자끼리 해결하기보다는 보험사가 해결하고, 언론에서도 기자의 기사에 대해 소송이 걸렸을 때, 언론사 차원에서 대응을 해주고 있다. 교사 개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으며, 공동체 대응, 제도적 대응, 예방, 치유와 회복 같은 과정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대안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학부모회의 역할과 기능 강화이다.
언론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양극단의 학부모와 교사를 중심으로 기사화한다. 그러다 보니, 극단 사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풀어가는 경향이 있고, 이 과정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부정 인식이 증폭되며, 급하게 만든 제도와 정책 대안은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모든 문제를 법과 제도로 풀어갈 수는 없다. 학교는 사법기관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 교육 기관이기 때문이며, 학생뿐만 아니라 교원과 학부모의 성장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소소한 문제가 증폭이 되어 학교공동체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사례도 있지만, 반대로 학교 안 의사 소통 시스템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화가 나 있는 일부 학부모가 담임교사를 상대로 문제 제기를 ‘막바로’하는 방식보다는 공적 시스템을 바탕으로 논의해야 한다. 1차적으로는 학부모회, 2차적으로는 교사회와 학부모회 또는 학부모회와 교장 간 소통이 필요하다. 학부모회의 필터를 바탕으로, 공적 개입과 조정, 논의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간 수많은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을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 이 해석의 과정에서 상호간에 오해와 왜곡의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내 자녀에게 몰입된 감정의 문제에서 벗어나서 학부모 간에도 대화가 필요하며, 학교 차원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학부모의 공적 의견으로 학교에 요구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결국,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과 대립의 프레임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교권침해 사례를 교원단체에서 모아서 발표를 했을 때, 학부모 단체는 교사들의 반 교육적 행태를 모아서 발표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서로를 향한 총질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합리적인 학부모 대다수와 실천하는 교원 대다수의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학부모와 교사를 견제하고 견인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학부모 정책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도 학부모 정책은 사실상 변방의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전문가도, 노하우도, 예산도, 체계적인 조직 차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학교에서도 학부모는 ‘불가근 불가원’의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물론, 학교 내부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임계점을 넘은 경우, 공적 체계 안에서 문제를 풀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당 수의 문제는 학교 안에서 충분히 풀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학습과 논의, 소통 시스템이 부족할 때, 오해가 사건으로, 사건이 소송으로 커진다. 학부모 총회, 다모임, 연석회의, 학부모 학습공동체, 구성원 대토론, 학교자체평가 등 학교 일상의 소통 과정에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한다. 갈등이 증폭되기 이전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일상의 예방 시스템이 중요하다. 최고의 예방 시스템은 학부모회 활성화가 아닐까?
다시 사회적 자본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자본은 사람과 사람 간에 신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이익을 의미한다. 사회적 자본이 낮으면 감시와 통제, 거래 비용이 늘어난다. 사회적 자본이 높은 학교에서 교육 효과는 더욱 커진다.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의 신뢰의 총합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본다면, 현재 각 학교는 불신의 비용을 크게 지불하고 있다. 이는 행정과 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관계의 영역이다. 학부모회의 성장은 사적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공적 영역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내 아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를 바라볼 때 가능해진다. 3주체의 사회적 자본이 높다면, 일부 학부모의 이기적 욕망과 행태도 충분히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런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물론, 동원되는 학부모회, 형식적인 학부모 총회 등 고질적인 한계도 있다. 학부모회가 활성화된 사례를 통해 갈등이 예방된 사례 역시 너무나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일에 변호사를 부를 수도 없지 않은가? 학교는 충돌하는 가치를 지닌 공간이지만, 철학과 문화를 통해 조율이 가능한 역동의 공간이다. 그 역동의 힘을 억제하기보다는 공적인 장으로 끌어들여야한다. 대다수의 합리적이고 건강한 학부모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실망할 때는 아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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