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신문 345호/ 교육자치] 온실 속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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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0-08-11 17:20 조회2,549회 댓글0건본문
온실 속 야생화
‘절대 피해갈 수 없다. 무조건 맞서야만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당연하게도 여러 문제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대한다. 가끔은 맞서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때도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한 번씩 받아야 하는 검사가 있다. 하고 싶지 않아도, 절대 피해갈 수 없으며 무조건 맞서야만 하는 군대 신체검사다.
나는 2001년생으로 올해 스무 살이 되었다. 집으로 날아온 군대 영장은 내가 성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새롭게 느끼게 해주었다. 나라의 부름으로 일주일 전 나는 영등포에 있는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나의 신체검사는 유난히 오래 걸렸다.
그 이유로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사람의 경우, 신체검사 판정 등급과 별개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다른 친구들과 다른 판정을 받게 된 나는, 다른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최종 학력 확인을 위한 서류였다. 그 서류에는 이 문장이 쓰여 있었다. “자퇴 사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서술해주세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학교가 재미없어서 자퇴했습니다”
작년 4월, 40일 동안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20개가 넘는 도시를 다녀왔는데 그중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곳은 뉴욕 센트럴 파크이었다. 그곳의 놀이터는 안전을 중점으로 한 한국의 놀이터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바닥이 아닌, 모래사장이 있었다. 고무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진 놀이터 대신에 딱딱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로 만든 놀이터가 있었다.
아이들이 놀기에 위험해 보였다. 놀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님은 아이의 놀이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그것에 익숙해진 듯 넘어지거나 떨어지면 열심히 울고 혼자 훌훌 털고 일어났다. 까다로운 안전 기준을 통과해 푹신푹신하게 만들어지는 한국의 놀이터에서 부모님과 함께 노는 아이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놀이터에서의 모습을 보며 미국 부모님들은 내가 본 한국 부모님들과 다르게 교육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모두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꿈과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춰서 다양한 고등학교를 선택한다. 나는 특목고도 아니고, 특성화고도 아닌 오디세이 학교를 선택했다. 오디세이 학교는 인문학적 수업과 직접 실행하며 경험하는 프로젝트 수업 기반으로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친구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꿈도 찾곤 한다.
이 학교의 재밌는 특징은 1년 동안 다닌다는 것이다. 인문계를 지원한 학생은 이 학교에서 1년 동안 위탁 교육을 받고, 처음에 지원한 고등학교로 돌아간다. 나에게 오디세이 학교는 세상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직접 경험하게 해주며, 그곳에 속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만들어준 학교다. 나는 그 질문을 들고 고등학교로 돌아갔다. 돌아간 학교에서 친구들과 재밌고 짜릿한 시간을 보냈지만, 학교와 수업 그리고 선생님은 대체로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1806년, 최강 군대를 가진 나라라고 불리던 나라 프로이센은 나폴레옹 군대에 완벽하게 패배했었다. 그 결과 프로이센은 쑥대밭이 되었고,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들은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 계층의 자녀가 나라를 위하는 노동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때 처음으로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제적인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복종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교과서는 깊고 폭넓은 사고를 하지 못하게 과목과 단원으로 짧게 나누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대신에 선생님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게 되었다. 이 교육은 영국과 미국을 통해 퍼져나갔다” 이 내용은 나의 책에 있는 내용을 인용해온 것이다. 나는 이 내용이 담겨있던 <학교에 배움이 있습니까?>라는 책을 자퇴하기 한 달 전 읽었다. 그리고 2주 동안 학교를 무단으로 결석했고, 2주 뒤 자퇴식을 연 뒤, 학교를 자퇴했다.
지금 내가 왔던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점검을 새롭게 해야만 했다. 그렇게 2주 동안의 무단결석이 시작되었다. 2주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으며, 밖에 나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서 여태까지 내가 받아온 교육과 앞으로 받을 교육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변화할 나 자신을 상상했다.
그 모습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할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가슴은 세상의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전부터 부모님은 주체적인 인생을 위해 자퇴를 권유하셨고, 그럼에도 학교가 좋다고 말해왔던 나는 2주라는 시간이 흐른 뒤, ‘자퇴가 좋다’라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꿈, 목표, 생각을 가지게 된 나에게는 더 이상 학교는 필요하지 않았다. 얻을 것보다 읽은 것이 많은 곳으로 변한 것이다.
자퇴를 한 지 벌써 3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방황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퇴라는 결정을 후회해본 적은 거의 없다. 내 인생을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살 기회를 얻었고,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매일 하루의 감사함을 느끼고, 가슴이 흥분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틀에 박히지 않은 환경이다. 사람은 환경 그 이상의 존재가 되지 못한다. “친구 따라서 강남간다”라는 말처럼 환경에 따라 사람은 변한다. 자퇴는 제준이라는 인간에게 자유로운 환경을 선물했고, 그 덕에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책도 5권이나 작업하고, 10개가 넘는 자격증도 가지게 되고, 투자로 수익을 창출하며,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자퇴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듣는다. 나는 가능하다면, 중졸이라는 학력을 평생 유지하고 싶다. 중졸이라는 학력이 너무나도 멋있고, 자랑스럽다. 자퇴는 큰 선택이 아니다. 간단한 선택이다. 저녁 먹기 전, 속이 느끼해서 담백한 한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고, 자극적인 음식이 생각나서 아주 매운 음식을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우리는 밥을 먹는다. 자퇴라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특별하고, 이상해 보일 뿐이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중 하나인 것에 불과하다. 자퇴는 정답도 아니고, 오답도 아니다. 그저 해답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해답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 자신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앞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제준 (작가)
제준 작가는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그의 '생각을 쓰는 사람'이다.
그에게 자퇴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용기였다.
하지만 '자퇴생'이라는 단어로 일축당한 그의 삶 속에 심각한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그는 여행, 독서, 집필, 스피치 등에 몰입한다.
단순히 공황장애를 넘어서기 위해 시작한 행위들이었지만, 또래와는 조금 남다른 경험과 인생 수업을 쌓아올리게 되며, 불안했던 나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찾게 된다.
준(June)이라는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유월'이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지어준 그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단 한번 뿐인 오늘을 살아가는데 행동과 마음을 집중하고 있다.
새싹을 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 '유월'이라는 새싹에 깊고 넓은 사색과 경험이라는 물을 뿌리고 있는 중이다.
(제준 작가의 저서에서 발췌한 작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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