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6월호/355호] 학부모참여_서울 도봉초 원격수업 지원 사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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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06-28 21:54 조회1,479회 댓글0건본문
참새들은 안녕한가요?
- 서울도봉초등학교 원격수업기간 지원사례 -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이전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볼 수 도 없었다. 2020년 2월, 졸업식에 학부모와 가족들은 참석하지 말아달라는 안내를 받았을 때만 해도 3월 입학식은 당연히 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 때도 열렸다던 학교는 쉽사리 열리지 않았 고, 입학식은커녕 듣도 보도 못한 온라인 개학을 맞이했다.
말이 좋아 개학이지 난리도 아니라는 말이 실감났다. 교사도, 부모도, 학생들도 어디에도 물어볼 수 없는 돌발변수가 매일 생겼다. 사이트는 불안정해서 접속이 안되고, 수업자료라며 공유된 링크는 열리지 않고, 담임선생님이나 친구의 얼굴도 한번 제 대로 못 봐서 누가 같은 반인지도 모르고, 문예체 활동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총회도 열리지 못한 채 ‘당선된 것으로 치고’ 출발한 학부모회 역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임원들은 학교와 조심스럽게 만나 함께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발 빠르게 대응하기는 어려웠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혹시라도 확 진자가 발생했을 때의 심각성…. (결국 확진자는 나왔다. 피해갈 곳이 없 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학교 밖에서 학부모 모임을 여러 번 열어가며 비상사태를 맞이하는 가정의 어려움과 요구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자녀의 24시간을 목격한 보호자의 하소연은 다양하면서도 비슷했다. “아이 숙제가 아니라, 엄마 숙제다. 숙제를 도와주느라 내가 왜 열공 중인지 모르겠다”(심지어 중학생의 보 호자도 저런 이야기를 했다), “상 차려 주고 돌아서면 밥때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또 밥때다. 하루 세끼와 간 식까지 해주느라 너무 지친다”, “오전 에는 아이의 깨어있는 얼굴을 볼 수 가 없다”, “밥 먹을 때 외에는 방안에서 꼼짝도 안 한다”, “답답한 건 많은데 물어볼 데가 없다” 등등. 아이도, 보호자도 폭발 직전이었다. (이미 여러 번의 크고 작은 폭발이 지나갔을 수도 있다.)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보호자들의 하소연도 심각했지만 보호자가 직장 등의 이유로 아이의 온라인 수업 시간에 함께 있을 수 없거나, 아예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은 상황이 더욱 열악했다. 학원으로 내몰리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 정도. 온라인 으로 하는 출석 체크도 나몰라라, 과제 제출도 나몰라라, 하는 아이들이 반마다 있는데 일일이 챙길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아이들 손에 전자기기 하나씩은 주어졌으니 유튜브와 게임 폐인들이 되어간다는 소문은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도대체 끼니는 해결하고 있는지 걱정스러운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를 가는 날도 문제는 있었다. 일 주일에 한두 번, 혹은 한 달에 일주일 정도인 등교일은 원격수업의 결과물 검사, 각종 평가만으로 하루가 꽉 찬다. 매일 온라인으로 출석을 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는데도 아이들은 교육과정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했다. 기초학력이 눈에 띄게 부진한 아이들은 그나마 긴급지원이 이뤄졌다.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눈빛을 마스크 너머로 보내도 수업을 따라가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미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교사들은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랴, 원격으로, 대면으로 수업 외에도 아이들 관리하랴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다. 이 시국에 꼭 필요한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논의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과별 이수해야 할 시간도 정해져 있고, ‘진도’는 나가야 하고.
한두 달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체념 섞인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는 (여전 히 다음 달에는, 늦어도 2학기에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지만) 이미 6월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도봉초등학교와 이 지역은 학부모와 주민의 교육활동이 나름 자랑할 만한 곳이었다.
학부모는 교사, 학생과 함께 교육의 주체라고 했다. 학교는 마을로 나오고, 마을은 학교를 품자고했다. 마을과 함께 삶과 앎이 일치되는 배움의 과정을 고민하자고 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자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코로나라는 ‘비상 상황’ 앞에서는 부질없어 보였다. 학부모, 마을의 역할이 무엇인지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오직 하나,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데 동의했을 뿐이다. 이 ‘비상상황’ 은 이제 또다른 일상이 될 것이고, 더 이상 돌봄은 가정에서, 학습은 학교에서 책임지라고 말할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꿈꾸고 가꿔왔던 마을교육 공동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더 촘촘하게 안전망을 만들려면 틈새를 메꿀 수 있는 뭐라도 해야만 했고, 그렇게 뭐라도 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전해 들은 상황과 보호자들이 준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들에 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머리를 맞댔다. ‘원격수업 기간 중에 혼자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자’는 마음을 모았다. 문 닫힌 학교에는 갈 수 없으니, 아이들이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마을 안에 ‘참새방앗간’을 열었다. ‘돌봄’이라는 무거운 의미가 아니라 ‘들르거나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다. ‘코로나 3단계’만 아니면 폐쇄하지 않아도 되는 민간 공간을 활용하고, 아이들을 맞이하는 역할은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학교는 가정통 신문을 통해 각 가정에 ‘참새방앗간’ 의 존재를 알리고, 찾아오는 아이들 에게 주라며 예산으로 간식을 지원했다. 교사 몇 분은 사전에 공간을 둘러보며 격려와 감사를 전했다. ‘방역과 출입관리를 철저히 한다’, ‘동시에 너무 많은 인원이 머무르지 않도록 한다’, ‘숙제나 학습을 봐주지 않는다’는 등의 원칙을 세웠다. 아이들에게 단지 ‘숨통’ 역할을 하고 싶었다.
막상 ‘참새방앗간’이 문을 열었지만 (다소 늦게 시작한 탓에 아이들은 이미 나름의 적응을 했는지) 온라인 수업의 도움을 받으러 방문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대신 놀이터로, 편의점으로, 골목으로 배회하던 아이들의 ‘갈 곳’이 되었다. 아이들은 오다가다 들러 보드게임을 하고, 간식을 먹고 갔다. 재미있었는지 ‘쉬는 날’ 또 들렀다가 ‘허탕’을 쳤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겨우 이 정도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해볼 수 있어 좋았다.
2학기에도 코로나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렸다. 아이들은 단 하루도 학교에 가지 못한 때도 있고, 학교와 마을에서 심심찮게 확진자가 나오면서 ‘참 새방앗간’도 더 이상 열지 못했다. 너무 늦게 시작한 것, 시작하고 나서도 운영시간이나 기간 등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프린터 등 기본 장비를 갖추지 못한 것 등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어쩌면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작고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왜 안해주느냐’고, ‘이것저것 해달라’ 고 기다리고만 있거나 크고 거창한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준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대책과 운영을 꿈꿀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것, 그러기 위해 일단 시작하고 움직이는 것이 학부모가, 마을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김은진 (2020학년도 도봉초 학부모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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