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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5월호/354호] 교육현장이야기_광주북초등학교(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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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05-11 14:31 조회1,7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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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동체가 함께 만든 광주북초등학교

 

광주북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개 반으로 6학급 전교생 100명 남짓한 작은 혁신학교입니다. 학교 주변은 논과 밭과 들로 둘러싸여 있고 광주광역시와 담양 경계에 있는 도시 근교의 학교입니다. 

우리 학교의 아름다움은 학교 안에 자리한 숲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학교 안에 아름다운 숲과 정원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늘 만날 수 있고 그 안에서 뛰어놀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교문 안으로 들어오면 소나무, 살구나무, 박태기나무, 배롱나무들이 저마다 자리하고 있는 양 쪽 숲을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을 지나게 됩니다. 아이들 걸음으로 걷기에는 조금 길고,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끝나버리는 오솔길을 지나면 갑자기 탁 트인 운동장이 펼쳐지고 그 운동장 끝에 교실이 있는 1층 건물이 길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교의 경관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로 오솔길의 끝에서 학교 건물을 바라봤을 때 1층 건물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와 푸른 하늘이 연결되는 스카이라인을 꼽기도 합니다. 

오른편에는 1967년에 지은 별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붉은 벽돌 벽에 한쪽이 더 낮게 내려오는 삼각지붕을 가지고 있는 교실 4칸 규모의 작고 귀여운 건물이 있습니다.

별관과 본관 사이에는 아이들이 다방구를 하고 뛰어노는 잔디밭이 있고 그 잔디밭을 대나무 숲이 두툼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나무를 주워 말처럼 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며 대숲 안에는 해가 드는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 있어 아이들이 아지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새 건물이 들어서 전과는 다른 분위기이지만 식당과 교실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그러나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밀정원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몇 년 후면 잔디밭이 풍성해져서 다시 아이들이 뛰어놀고 밥도 먹는 공간이 되겠지요.

 

학생 수가 늘어 2015년 지산초등학교 광주북분교에서 광주북초등학교로 승격되면서 공간이 부족해 12학급 규모로 다시 배치하기로 해 학부모 중심으로 재배치 추진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재배치가 결정난 후 2년 여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 2017년에 다시 재배치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1학생 수를 100명 안팎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우리나라 인구변화 통계, 교육청 예산상의 이유로 12학급 규모 재배치를 6학급 규모 증축으로 합의하였고 재배치 추진위원회를 학교건축소위원회로 바꿔 교사 2명, 학부모 3명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사용자 참여형 설계라는 이름만 알았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광주북초등학교 교육공동체(학생, 학부모, 교사)는 생태, 인권, 연결이라는 우리 학교의 교육 비전인 세 가지 키워드를 건축 비전으로 세웠습니다. 이 중에서 연결은 광주북초등학교만의 독특한 키워드라고 생각되는데 나중에 건축 워크샵을 하면서도 구성원들의 이런 생각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현재의 노후한 학교 건물과 불편한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대화된 건물을 세워 자연이나 학교 숲을 훼손하거나 지금까지 사랑했던 공간이 아주 다른 모습으로 달라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따라서 학교를 새로 짓더라도 기존 건물이나 자연과 잘 어우러지도록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한 것이 학교 공간 퍼실리테이터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교육공동체 1차 워크숍이었습니다.

이 워크숍을 통해 총 세가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전교생 워크숍을 통해서 아이들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지트가 있었습니다. 학년에 따라 배롱나무 밑, 대나무 숲, 개울 옆 담벼락 등 다양한 곳이 아지트였는데 교사들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은 아이들이 뭔가 만들고 싶을 때 재료를 발견할 수 있는 보물창고였고, 본관에서 컨테이너 건물로 연결되는 길은 비가 오는 날에 훌륭한 놀이터로 사용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많은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교사와 다르게 학교라는 공간을 보고 그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교사, 학부모 등 어른들은 도서관을 훌륭하게 만들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경치 좋은 곳에 두고 편안하게 꾸미고 싶어 하는 공간은 의외로 보건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에 딱, 도서실을 두면 좋겠다’하는 자리에 보건실을 두었습니다. 

 

처음에 학부모와 교사들은 1층 건물, 본관에 교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의 중심이고, 아이들이 접근하기 쉬운 1층에 교실을 두는 것이 덜 권위적이고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또 학교의 경관을 해치지 않게 2층 이상으로 건물을 올리는 것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 워크숍에서 의외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2층을 좋아했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어했습니다. 마치 2층 카페에서 전체 경치를 조망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아이들이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고 자연을 누릴 수 있는 동선이 아이들한테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설계를 반영하는 시점에서 건축가를 만났을 때 그러한 동선을 고려한 디자인을 요구했습니다.

 

두 번째, 교사 워크숍을 통해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다시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며 주요했던 부분은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결국 그 공간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건축가들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교실 안에 담고 싶은 프로그램이 뭐죠? 선생님께서는 학생들과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라구요. ‘광주북초의 교육과정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는가?’라는 생각보다 깊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건축을 통해 건축에 담을 내용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학교지만 교육과정 내 시간 안배와 각각 교과에서 필요한 공간을 생각하고 대규모 학교와 똑같이 모든 특별교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필요한 교실이지만, ‘면적과 비용의 한계를 고려해서 복합 다목적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생태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정리되면서 실제로 교과별 교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떤 프로그램을 넣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건데 텃밭농사, 논농사 프로젝트나 환경교육과 연결된 자전거 수학여행 같은 프로그램을 생각했을 때 개별 교실보다는 어떻게 야외 배움의 장소에 접근이 쉽게 동선을 배치할 것인가, 혹은 자연 순환의 과정,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감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자연과 가까이 만나고 늘 관찰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야외 활동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겪은 일을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쓰고 정리하는 공간이 교실이었고, 그러다 보니 교실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거죠. 결국은 아이들이 살아가고, 활동하고, 긴 프로젝트를 갈무리하고, 배우는 복합공간으로 교실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학부모 워크숍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아이에게는 어떤 공간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워크숍을 하다 보니 ‘내가 만약 다시 학생이 된다면? 그 시절 학교로 돌아간다면?’하고 과거의 나와 조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워크숍 동안 이뤄진 작업들은 과거 내 어린 시절에 내가 꿈꿔웠던 학교였고 실제로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학교에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 학생, 학부모, 교직원, 선생님들까지 구성원 모두 자신의 생각을 한 마디씩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시간이었고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과거의 학교와 지금 학교의 모습이 같다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학교는 앞으로 더 변해야 합니다.

 

3년 여 활동의 집약체인 보고서 2권과 저희 학교건축소위원회에서 출판한 책(고은석, 정록 외 3명, 『함께 만드는 학교 공간 이야기』, 북트리, 2020.)의 밑바탕이 된 교육공동체 1차 워크숍은 사용자 참여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마스터플랜’을 만들 수 있게 한 활동이었습니다. 

설계사가 선정되고 구체적인 설계를 위한 2차 워크숍 때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산으로 갈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 때마다 1차 워크숍 내용을 충실하게 정리해 놓은 보고서를 보면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었고 과정들을 되새겨보면서 객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객관화된 구성원들의 방향과 의도를 설명했고 구체적인 모습은 건축가의 상상력을 믿고 맡겼습니다. 

그리고 건축규제, 예산상의 문제로 많은 난관을 만났을 때 바로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하고 제시함으로써 그 안에서 포기가 아닌 선택을 했고 그것이 구성원들의 만족도를 높였던 것 같습니다. 

교실 단위가 아닌 학교 단위의 사용자 참여형 설계로 시공까지 이루어진 학교는 광주북초등학교가 최초입니다.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정말 모든 것이 어려움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어려움은 관행과 예산, 사용자 참여형 설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는 관행, 선례가 없어서 할 수 없다는 관행. 이제는 선례가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못하지 않을까요? 광주북초등학교가 했으니까요.

교육청도 저희도 처음 해보는 일, 더구나 저희 학교건축소위원회는 건축에 ‘ㄱ’자도 모르는 문외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해왔던 불편한 학교, 심지어 ‘교도소’에 비유되는 학교건물을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불타는 의지로 교육공동체가 함께 학교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단체로 경기도, 전북, 제주, 강원도 등 의미 있게 지어진 학교나 건축물을 찾아다니고, 사용자 참여형 설계를 이해해 줄 만한 사람, 기관을 찾아 수없이 발품을 팔고 시간과 사비를 들여가며 보고 듣고 자료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은 이런 우리의 열정(이라 쓰고 진상이라 읽는다)을 이해하지 못했고 정말 수도 없이 부딪혔습니다. 광주북초등학교 학교건축소위원회 활동이 끝나고 남은 건 싸움의기술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건물에 벽돌 한 장 바꾸는 것도 ‘벽돌대첩’이라는 말로 표현할 정도로 힘들었고, 이 지난한 과정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얘기 들으시려면 손수건 한 장 준비하셔야 합니다.

설계와 관련해 몇 가지 큰 이슈를 말해보고자 합니다. 강당의 크기, 2층에서 뒷마당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외부계단, 도서관에 자리한 다락공간 등이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학교처럼 배구가 가능한 3층 높이의 강당을 지어야겠다는 교육청에 광주북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있지도 않은 커다랗고 위압적이기 만한 배구장은 만들지 말고 그 돈으로 교실에 더 투자해달라고 요구하여 겨우 2.5층의 다목적강당으로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학교 강당에 비해 규모를 작게 했다는데 저는 도무지 어디가 작은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마치 처음부터 운동장 흙 따윈 밟아본적 없다는 듯 모든 놀이를 다목적 강당에서 하고 있습니다. 피구하는데 멀리까지 가버린 공을 주우러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흡족한 듯 했습니다. 아이들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2층 외부계단은 처음 이 설계안을 제시했을 때 “2층에서 아이가 떨어져 죽으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담당주무관 한마디에 “그럼 5층까지 있는 학교에서는 누가 죽었냐”면서 듣고 있던 학부모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혼비백산하게 했던 큰 이슈였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결국 예산 때문에 가장 먼저 삭제된 설계안이었는데 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이들이 밝고 환한 1, 2층 교실에서 내려다봄을 만끽하며 다목적 강당에서 피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도서관에서 사서선생님 눈치 보며 마피아도 하고 2층 다락과 강당을 차지하기 위해 학년 간 눈치싸움도 하고 기싸움도 하며 코로나 시국에도 전교생이 등교하여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이 워낙 넓어 서로 놀이를 해도 방해된 적이 없었는데 강당이 생기고 나니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이제는 밥차에서 배식 받아다 식은 국과 부족한 반찬이 아닌 방금 지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아이들의 만족도를 꽤 높여준 것 같습니다.

학교 설계와 시공을 겪으면서 마지막에 마주하게 된 건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은 예쁜 학교나 교실이 아니라 광주북초등학교만이 지켜 나가야 할 가치와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이제 교실에 어떤 교육을 채우느냐는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 

광주북초등학교의 신관과 지금 구조를 변경하고 있는 본관은 새하얀 백지 같은 공간입니다. 

학교건축위원회 활동 3년 동안 아이들의 졸업, 입학, 선생님의 전근으로 구성원들이 많이 바뀌었고 바뀐 구성원의 숫자만큼 생각도 서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워크숍을 하는 내내 교육공동체 구성원간의 소통, 선배 학부모에서 후배 학부모로 이어지는 연결뿐 아니라 교사와 교사간의 연결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이곳이 전부라 알지 못하지만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마다 놀랍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학교에서 보지 못했던 활발한 학부모 자치회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동안의 광주북초등학교 교육공동체의 소통방식을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과 이런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학부모들이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소통하지 못했던 결과는 생각보다 타격이 컸습니다. 지금 광주북초등학교는 선배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서로 원활한 소통이 되도록 수년 동안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지켜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교육공동체의 소통이 원활할수록 광주북초등학교의 백지같은 공간은 아름답게 채색될 거라 믿습니다.

 

고은석, 김수연, 방소형, 정록, 최현진(광주북초 증개축 위원), 

& 홍경숙 (퍼실리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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