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5월호/354호] 요즘 저는_평화, 기억의 키워드로 산다_황수경 전 부회장(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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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05-11 22:18 조회1,441회 댓글0건본문
평화, 기억의 키워드로 산다
여명이 트이기 시작한 시간에 조용히 일어나 창문을 열어 놓고 풍욕을 한다. 차가운 바람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부터 시작해서 발바닥 저 끝까지 찬기운이 들어온다. 상쾌하다. 해가 솟으며 온갖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소리, 다양한 자연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뒷산을 오른다. 하루가 다르게 산 속은 색이 변하고 온갖 꽃이 피어 골짜 기 골짜기마다 노란색, 분홍색, 흰색의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숲 속 냄새는 충분히 나의 코를 자극한다. 힘들게 올랐던 숲길이 이제 많이 가벼워졌다. 충만한 행복감, 그리고 걸어서 30초, 나의 일터인 평화를 품은 집 평화도서관으로 출근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평화도서관은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학살사건을 전시한 제노사이드 역사자료 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닥종이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한 위안부 갤러리, 언제든 관련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평화 소극장, 주제별로 책을 큐레이션해 놓은 평화를 품은 책방, 천연발효로 만든 빵을 자랑하는 소라카페까지 함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이 공간을 사랑한다. 책이 있고, 사람이 있고, 평화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공간에서는 다양한 세상살이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 있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손만 살짝 뻗으면 책과 만날 수 있다.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을 찾은 사람들은 피하고 싶은 역사 속 이야기를 기억하려 애쓰고, 자연 속 소라카 페에서는 갓 구운 빵과 향 그윽한 커피를 마시며 지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앞마당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산은 그래서 이름도 우리가 지었다. ‘평품산’이라고….
자연 속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나의 일터는 많은 사람들이 온다. 관련된 일을 하는 공무원, 시민 활동가, 전국의 평화 관련 활동을 하는 단체, 동아리들이 끊임 없이 찾는 곳이다. 이 사람들과의 만남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지식과 정보를 머리 속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남은 나의 원동력이다. 이들에게 힘을 얻고 용기내어 실천하며 살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4월이면 제주 4.3 영령에 묵념하고 세월호에 묻힌 어린 영혼들을 위해 전시를 기획하고, 5월이면 5.18 민주화 항쟁에 희생되었던 시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6월이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학살을 기억하는 일들을 알리며 살고 있다. 무겁고 아픈 이야기지만 나는 이 아픔을 토대로 다시는 지구상에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고 있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지금보다는 환경도 좋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지금 내가 움직이고 열심히 일한 만큼 미래의 아이들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운 곳이 참교육 학부모회다. 나 하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고 배웠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난 이 땅에서 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먼 옛날이야기처럼 하고 있지만 지금의 도서관 현장에서도 학부모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황수경 (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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