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7월호/356호] 정책_학교자치의 쟁점과 과제_김성천 교원대 교수(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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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07-08 14:57 조회2,393회 댓글0건본문
학교자치의 쟁점과 과제
최근 들어 학교 자치에 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교육자치의 담론과 실제도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자치 담론이 대두되고 있다. 학교자치라는 개념은 사실 불완전한 속성을 지닌다. 자치가 온전히 성립되려면 예산과 인사, 조직 등의 영역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는 어떠한가? 교육부와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받아서 운영한다. 인사와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자치는 성립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자사고나 미인가형 대안학교 수준에서는 학교자치가 성립될 수 있으나, 공립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현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자치가 논의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은 교육자치와 분권의 철학과 정신이 학교자치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제도적으로는 분권과 자치의 토대를 구축했다. 하지만 군부세력의 장기 집권에 의해 분권과 자치의 철학을 구현하지 못했고, 형식적 자치기를 거쳤다.
1991년에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교육자치를 본격화하는 계기를 맞이했고, 결정적으로 주민직선교육감제가 실시되면서 교육 자치의 부흥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교육부와 교육청 간 권한 분쟁과 갈등이 해마다 발생하였다. 그러다 보니 교육자치를 논의하다 보면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 간 권한 배분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하지만, 교육자치는 그 개념의 속성상 끊임없이 하방하게 된다. 교육부에서 교육청으로, 교육지원청으로, 학교로 기획과 판단의 축을 이전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학교자치는 불완전한 개념이지만, 교육자치의 궁극적 목표가 교육부 장관의 권한을 교육감에서 이양하는 수준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시 학교 자치를 향해 진화 내지는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학교자치는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교육부와 교육청, 교육지원청, 지자체, 시민사회, 학교가 교육생태계에서 공존하기 때문에 상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 학교자치는 교육자치의 목표이자 지향점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교육자치와 학교자치의 근거는 교육기본법 제5조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다. 1항을 교육자치의 근거로, 2항을 학교자치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문제는 “형식적 자치”를 넘어 “실질적 자치”로, “제도적 자치”를 넘어 “문화적 자치”로, “교육청 자치”를 넘어 “학교 자치”로, “선택적 자치”를 넘어 “총체적 자치”로, “특정인의 자치”를 넘어 “공동체의 자치”로, “○○로부터 의 자치”를 넘어 “○○를 향한 자치”로 갈 수 있느냐이다.
민주주의라는 가방에 너무 많은 개념과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학교 자치 역시 사용 주체와 맥락에 따라서 그 용례와 내용에 차이가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학교자치에 관한 여러 오해가 발생한다.
학교자치는 과연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공동체의 자치여야 한다. 학교장의 역할은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 학생회와 학부모회, 교직원회의 입장이 사안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과정은 고도의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역량이고, 경험의 축적이다. 우리들 스스로 자치를 경험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각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선택적 자치”이다. 자치는 자율성을 부여하지만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러한 철학을 가지지 않으면, “폼나는 일은 우리”가, “힘든 일은 너희”가 하라는 식으로 일을 전가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민원이 많고, 힘든 일을 교육자치를 명분 삼아 넘기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시에 현장에서 이런 저런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면 마지못해 하나씩 풀어주는 방식의 일명 “요실금” 자치 내지는 “시혜적” 자치도 경계해야 한다. 자치와 분권의 철학이 교육 제도와 정책에 일관되게 흘러야 한다.
학교자치는 사실 역량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실, 주어진 지침과 규정대로 일을 하는 방식이 편하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자치는 그러한 편한 타율에서 벗어나 피곤하지만 의미있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우리들 스스로 내면을 향한 질문을 던져보자. “편한 타율”과 “피곤하지만 의미있는 자율”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교육자치도 마찬가지이지만 학교자치 역시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편차와 질 관리의 문제이다. 같은 학교 내에서 A 선생님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삶과 결합된 의미있는 수업을 실천하고 있고, B 선생님은 남들이 만든 콘텐츠에 링크 걸면서 편의주의적 수업을 하고 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좋은 담임이나 교과 교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작정 기도회라도 나가야 하는가?
학교자치는 학교가 더 이상 교육부 본사의 레시피대로만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점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는 의미이다. 하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프랜차이즈점은 표준화되었으니 일정 수준의 질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냐며 오히려 학교자치를 불안하게 바라볼 수 있다.
교사간, 학교간, 지역간 실천의 편차는 최소화하고, 개성있는 학교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 내에서 주체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며, 사사성(私事性)의 원리를 배격한 공화주의 내지는 공공성의 철학의 바탕으로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에 관한 학교 공동체의 질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교육부와 교육청은 비전을 제시하고, 장학을 통해 일정한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학교자치의 유익은 무엇인가? 학교 자치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고, 학생들에게는 민주주의를 삶과 문화로 익히게 한다. 동시에, 지역과 학교 차원에서 다양한 교과목을 개발하고 운영하게 된다. 학교는 왜 국가가 정해진 교육 과정과 교과서만을 가르쳐야 하는가? 국가교육과정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지역과 학교 차원의 자율적 공간을 확보할 수는 없을까?
교육과정뿐만 아니다. 교원평가, 학교자체평가. 고교학점제 등 상당 영역은 학교자치의 영역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한 사람보다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가져올 유익이 크다는 믿음에서 학교자치는 시작된다.
민주성, 신뢰성, 전문성, 공공성, 책임성의 가치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무슨 사안만 터지면 온갖 규제와 지침이 만들어지는 시스템 역시 학교자치의 적이다. 필요한 지침과 규제도 있지만, 학교 자치의 관점에서 폐지 내지는 수정해야 할 내용도 적지 않다.
학교자치의 길은 여전히 멀다. 불신의 늪에서 과연 학교자치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때론 한숨부터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마냥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뭐라도 우리는 해야 한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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