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6월호/355호] 요즘 저는_생활의 고단함을 다독여주는 참학의 힘_조성미 전 부회장(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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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07-07 18:06 조회1,399회 댓글0건본문
생활의 고단함을 다독여주는 참학의 힘
철쭉, 라일락, 아카시아, 온갖 꽃들이 마구 피어나는 오월이 다. 도시인들에게는 콘크리트 숲에서 빠져나와 꽃구경을 나가는 계절일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에게는 밭작물을 때맞춰 심고 논에 모내기까지 해야 하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이다. 평생 농사일밖에 모르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살이 언 삼십 년이다. 부모님은 한 해가 다르게 근력이 쇠해 농사일이 버거워지신지는 꽤 되었다.
“힘드시면 농사를 좀 줄이시든가요.” 혹은 “고추나 고구마 같은 건 이제 사 먹으면 돼요.” 이런 말이나 해가며 부모님이 일생을 바친 농사를 ‘부질없는 남의 일’처럼 여겨왔다. 철마다 감자며 고구마, 들기름, 김장김치까지 넘죽넘죽 잘도 받아먹었으면서 건성으로 툭툭 내뱉은 말들이란 죄다 철없고 야속한 신경질뿐이라니…. 팔십 중반을 넘기신 부모님은 육체적 정신적 한계 상황에서도 봄만 되면 어김없이 들로 나가신다.
지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자 주말이었다. “이번 어버이날은 다 같이 아버님 농사일을 도와드리면 어떨까요?” 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객지에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흔쾌히 의기투합하여 고추 400 포기, 고구마순 2,000개, 옥수수 모종 800개를 하루에 싹 심어버리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거사가 있는 일요일, 아버님은 새벽 5시 날이 밝기가 무섭게 들에 나갈 채비를 하자 깜짝 놀라 선잠에서 깨어나 허둥지둥 따라나섰다. 그렇게 온 가족이 밭고랑에 엎드려 비닐을 씌우고 물을 주고 온종일 모종을 심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이렇게 고된 농사일은 처음이라면서도 다들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고구마순 2,000개, 옥수수 800개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한낮이 되자 봄볕이 꽤 뜨거워 땀이 나고 갈증도 참아야 했다. 해질 때 까지 꼬박하고서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앉았다 일어서기를 무한 반복하다 보니 무릎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나중에는 근력이 다 빠져서 밭고랑을 기다시피 했더니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처음 신어 보는 작업화가 안 맞았는지 발가락도 부르트고 발바닥도 따끔거리고 여기저기 만신창이다. 온몸에 맨소래담을 도포하고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다리가 뻣뻣하여 걸음이 걸어지지 않는다. 앉고 설 때마다 놀란 근육이 찢어질 듯 아파서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행인 것은 월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것이다. 어제 시들시들 말라가던 고구마 모종과 옥수수 모종이 촉촉하게 단비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하고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뻐근한 다리의 통증을 지그시 누르며 이제서야 책을 편다. 내일은 참학 홍성지회 독서토론 소모임을 하는 날이다. 올해는 홍성교육청에서 학부모 학습동아리사업으로 지원해 주어서 도서와 장소를 제공받고 하반기에는 작가와 만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20년 넘게 한마을에 살면서 참학을 푯대 삼아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동고동락한 벗들과 모처럼 아주 지적이고 우아한 대화를 나누는 날이어서 살짝 설렌다.
나에게 여전히 참학은 생활의 고단함을 다독여주는 그 무언가가 있다.
조성미 (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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