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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11월호/360호] 우리들로 살아남기 위하여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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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11-09 15:18 조회1,0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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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로 살아남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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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까지 ‘중2병’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아이들의 사춘기가 극에 달한다고 하여 만들어진 신조어다. 얼마나 거칠고 반항적인지 대한민국 중2들이 몰려있으면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오지도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 사춘기도 일찍 온다 하여 ‘중2병’이 아닌 ‘초4병’으로 수 정(?)되었다. 언젠가 그 나이가 될 아이의 부모로서 요즘 애들을 이해해보자는 각오로 초4들의 학교생활을 그린 영화 <우리들>(2015)을 보았다. 

 주인공 선이의 일상은 학교생활이 아니라 학교 생존기에 가깝다. 한때 친했던 친구 보라의 주도로 왕따가 되어 짝꿍 없이 혼자 앉고 소풍 가서도 혼자 도시락을 먹는다. 가장 괴로운 건 피구 시간이다. 두 대표가 가위바위보로 원하는 팀원을 한 명씩 선택하는 방식에서 선이는 항상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타겟이 된다. 

 처음으로 생긴 친구 지아 덕분에 선이의 여름 방학은 봉숭아 빛으로 물들지만 개학 후 다시 엉망이 된다. 보라의 무리에 끼기 위해 선이와 함께 물들인 봉숭아 손톱 위에 매니큐어를 덧바른 지 아는 자발적으로 선이를 괴롭힌다. 선이 역시 살 아남기 위해 지아와 나눈 비밀을 폭로한다. 왕따에서 벗어나려 서로를 괴롭히던 두 친구는 결국 피구팀 고르기에서 최후의 2인으로 남는 두 왕따가 된다. 

 소외감을 감추려 애써 태연한 척 손톱을 뜯는 두 아이를 보며 나도 같이 손톱을 뜯었다. 요즘 애들 이야기인 줄 알았던 영화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내 학생 시절 기억 속에도 선이, 보라, 지아가 있다. 선이처럼 가난해서, 지아처럼 부모님이 이혼해서, 보라같이 힘이 있는 아이에게 밉 보여서 같은 이유로 누군가는 항상 반에서 혼자였다. 해마다 새로운 아이가 피구 시간 괴롭힘의 대상으로 정해졌지만 누구도 그 아이를 도와주 지 않았다. 어른들을 보고 배운 것인지 본래 인간의 본성이 악한 건지, 어린 아이들조차 우리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배척하는 것에 아주 능숙하다. 그 점에서 영화의 제목인 ‘우리들’은 아프다. 

 아이들은 무사히 ‘우리들’로 살아남기 위해 매일을 고군 분투 하지만 이 고단한 사회생활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공감하는 어른은 드물다. 성적, 진로보다 친구 관계에 더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아이에게는 ‘초4병’이라는 딱지가 붙을 뿐이다. 어 른들은 자신도 한때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던 아이였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애들이 힘들 게 뭐 가 있냐’는 선이 아빠처럼, 피구라는 폭력적인 정치게임에 학생들을 방치하는 학교 선생님처럼 답답한 어른이 되어 아이들의 성장통을 외면한다. “지아 금 안 밟았어. 내가 봤어.” 왕따가 된 지아가 피구경기 중 금 밟았다는 누명을 쓰자 선이가 외쳤다. 나는 한 번도 선이처럼 말하지 못했다. 혼자가 되지 않으려 다른 이를 혼자로 만드는 비겁한 ‘우리들’보다 혼자가 되어도 괜찮은 선이의 용기가 대견하고 미안했다. <우리들>은 용기 내지 못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외친다. 거침없이 비속어를 늘어놓고, 몰려다니며 다른 친구를 험담하는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차기 전에 생각해주길. 그들은 오늘도 혼자가 되지 않으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다. 

조이유 (광주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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